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협상테이블에서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의 무기_(주)센트랄

협상의 기술_당신만의BATNA를준비하라_협상교육_협상전문가_류재언변호사

최선의 대안, BATNA


스타트업 대표 A는 기회가 닿아 벤처캐피탈(이하 VC)을 만나더라도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드는 느낌이다. 기껏 준비한 IR자료를 설명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들이 우리의 서비스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먼저 시무룩해져서 IR자료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 채 돌아오고 만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IR자료들을 검토하는 VC를 본인의 회사에 투자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반면 스타트업 대표 B는 요즘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새로 출시한 서비스가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데, 서비스가 출시되자마자 여러 VC들이 접촉해오기 시작하더니 한 달 동안 무려 5개의 VC들과 미팅이 예정되었다. B는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업계에서 어떤 VC의 평판이 좋은지, 그리고 자신들의 사업 영역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VC는 어디인지 알아보고 있다. 일단 몇 차례 미팅을 가진 후,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서 '시리즈 A' 투자*를 받을 생각이다.

* 프로토 타입 또는 베타 버전에서 정식 제품 또는 서비스로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받는 투자 


상대방에 따라 협상이 아주 힘들 때도 있고 상대적으로 수월할 때도 있다. 


이렇듯 협상테이블에서 상대방과 당신이 가진 협상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협상력이 자신의 경제력이나 정치력, 인맥, 외모 등의 요인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지만, 해당 거래가 결렬되었을 때 각자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대안이 있는지가 협상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 요인이다. 


다시 위의 예로 돌아가보자. 스타트업에 종사하는 A와 B 모두 VC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자 한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다르다. A는 VC에게 쩔쩔매고 있는 반면, B는 오히려 VC 중 마음에 드는 VC를 선택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협상력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핵심개념이 바로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이다. 


BATNA는 '이번 협상이 결렬되었을 경우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의미한다. 


위 사례에서 A는 BATNA를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 즉, 해당 VC와의 거래가 결렬되었을 때 취할 수 있는 대안이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A는 상대방에게 끌려다닐 수 밖에 없다. 반면 B는 다수의 매력적인 BATNA를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B는 굳이 특정 VC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해당 VC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상호 간의 협상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BATNA인 것이다.


협상 인사이트

BATNA의 관점에서 볼 때, 자신의 협상력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은 단순하다.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 매력적인 BATNA를 확보하라.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대체할 수 있는 BATNA를 찾기 힘들게 하라.


위의 예에서 스타트업 대표 B는 위의 두 가지 요건들을 모두 충족하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협상력으로 VC를 압박할 수 있다. 상대방을 대체할 수 있는 BATNA를 많이 확보하고 있고, 상대방이 본인을 대체할 수 있는 BATNA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B는 아쉬울 것이 없는 포지션에서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 반대로 A는 위 두 가지 요건들 중 어느 하나도 갖추지 못한 상황이다. 이 경우 A는 굴욕적인 경험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에서 협상을 시작하게 된다. 


우리는 비즈니스 상황이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도 BATNA의 유무에 따라 결정되는 협상력의 차이를 수도 없이 겪고 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대학가에는 '불친절한 맛집'들이 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닐 때에도 대학로 주위에 기가 막힌 닭볶음탕집이 있었는데, 이 닭볶음탕집을 운영하는 할머니는 학생들이 들어와도 본체만체하고, 뭘 주문할 건지 묻지도 않으며, 본인 마음대로 적당한 양의 닭볶음탕을 요리해주신다. 물론 물, 반찬 등은 모두 셀프이고, 할머니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 가면 경상도 특유의 걸쭉한 욕지거리도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꾸역꾸역 그 집에 가서 닭볶음탕을 먹는다. 할머니 눈치를 살피며 불편하게 닭볶음탕을 먹어야 하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학생들이 이 집에 가는 이유. 그것은 맛에 있어서 만큼은 이 닭볶음탕집보다 더 나은 대안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대체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것들, 잘 팔리는 것들의 공통점은 바로 대체불가능성에 있다. 

협상학적으로 설명하자면 'BATNA를 찾기 힘든 존재'들은 필연적으로 갑이 될 수 밖에 없다.




경남 지역에 대단한 기업이 있다. 3대째 자동차 부품을 제조하는 ㈜센트랄 그룹(이하 센트랄). 

그들은 오랫동안 국내 완성차 업체에 자동차 부품을 공급해왔지만 구조적인 한계에 도달했음을 절감했다. 

한국의 절대 갑의 포지션에 있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생산하다보니, 그들에게 늘 끌려다닐 수 밖에 없고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경쟁력도 점점 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BATNA를 찾기 위한 10년 간의 노력,그리고 놀라운 결과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이번 협상이 결렬되었을 경우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


그래서 센트랄은 1996년부터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R&D 투자를 대폭 늘리고 국내시장을 벗어나기 위해 북미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R&D 투자를 통해 '대체불가능한 부품'을 생산하기 위해 노력함과 동시에, 국내시장을 벗어나 매력적인 완성차 브랜드(BATNA)들이 몰려 있는 북미시장과 유럽시장을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지속적인 R&D 투자와 시장 다각화 노력은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2017년 현재 센트랄은 북미 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시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GM·크라이슬러·포드 등 북미 빅 3사는 물론이고, 벤츠, BMW, 아우디 등 유럽의 고급 완성차 브랜드에도 제품을 공급함과 동시에 전 세계 전기자동차 브랜드의 대세인 테슬라도 센트랄의 클라이언트가 되었다. 

국내시장에 국한해 부품을 제조, 판매하며 국내 완성차 업체에 쩔쩔 매던 기업은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되기 위해 대규모 R&D 투자를 통해 매력적인 BATNA를 마련했다. 지금은 전 세계 113개 업체(고객)에 3천여 종의 부품을 공급하며 전체 매출액 중 수출 비중이 70%가 넘는 알짜기업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센트랄은 더 이상 국내 완성차 업체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경쟁력과 협상력을 갖추게 되었다. 

(주)센트랄 미래기획실 강상우 부사장과 함께

이에 따라 센트랄의 기업경쟁력도 강화되었고, 매출도 무섭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2007년 기준 매출액 3,088억에서, 지난 10년 간 평균 15%대의 고성장을 계속하며, 2016년에는 매출액이 무려 1조1,100억 원을 기록했다. 2021년에는 매출액 2조 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센트랄의 사례는,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기업경쟁력 재고 및 협상 전략의 핵심이 BATNA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협상인사이트

당신의 협상력은 BATNA의 유무에 따라 결정된다.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 매력적인 BATNA를 확보하라. 그리고 상대방이 나를 대체할 수 있는 BATNA를 찾기 힘들게 하라.
매거진의 이전글 프랜차이즈 본사 갑질 대처하는 5가지 행동강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