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창업가 필독서_실패에 대한 처절한 복기
횃불같은 책이다. 주말에 읽은 텍스트가 식지 않아 아직도 어딘가에서 활활 타고 있다. 오전에는 그래비티의 공동창업자들에게 이 글을 공유했고, 오후에는 내가 가장 아끼는 동생과 지인들, 그리고 창업자들에게 공유했다.
이 책은 처절한 복기노트이다. 이세돌이 알파고를 대적한 그 시간, 1패, 2패, 3패가 계속되어도 끝도 없이 동료들과 복기했듯, 이 책은 퍼블리의 수장 박소령대표가 자신이 둔 10년간의 바둑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그리고 치열하게 복기한 책이다. 담담한 문체에도 절절한 상황이 묻어난다. 현장성이 느껴지고, 감정개입이 심하게 된다. 그래서 단번에 읽기 힘들었다. 너무 뜨거워서.
2016년 성수동 인생공간에서 퍼블리 박소령대표를 만났고, 콘텐츠를 리드하고 있던 소리님의 도움으로 협상 바이블의 뼈대가 되는 디지털 리포트를 퍼블리에서 발간하였다.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를 사랑한 많은 이들이 퍼블리가 만들어갔던 꿈의 한 스푼 씩을 공유한 그런 보이지 않는 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퍼블리 매각 이메일을 소령님에게 받던 날 아침, 짧은 탄식이 새어 나왔었다. 그렇게 모두에게 퍼블리의 시도는 새로웠고 혁신적이었으며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 그런 서비스였다. 그는 이를 '실패'로 규정했지만, 그 규정이 적절한지는 조금 더 시간이 흘러야 평가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래는 #실패를통과하는일 에서 찾은 15가지 문장들.
1. 밖으로는 화려한 공작새처럼 깃털을 추켜세우고 있지만, 실제로는 몸을 보호해줄 등껍질 조차 없는 민달팽이 같은 존재야말로 대표가 아닐까. (68P)
2. 나는 소위 시리즈 B함정(지출을 늘렸지만 그만큼 성장하지 못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고, 격동의 2022년을 보냄. 바로 얼마 전에 성공적인 펀드레이징을 해놓고서도, 순식간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음. (24P)
3. 나는 '이 일을 왜 하고 있지?'라는 간단한 질문에도 아무 답변을 할 수 없었음. 부끄러웠고, 화도 났고, 눈물이 쏟아졌음. (30P)
4.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느낀 유일한 후회는 2023년 6월에 상의했던 조언자 그룹이 좀 더 넓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점이다. (46P) (중략) Confidant(비밀이나 사적인 일을 믿고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를 꼭 만들라는 것.
5. 큰 성공을 거두는 사업일수록 인간의 본성에 기반해야 한다. (중략) 인간의 본성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업과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사업은 시장의 크기도, 도달 가능한 사업 규모도 다르다. 사업을 크게 키우고 싶다면 인간의 본성에 올라타는 것이 합리적이다. (50P)
6. 고객과 트래픽을 모으는 역량과 돈을 버는 역량을 다른 DNA이기에, 조직 차원에서 돈을 벌기 위한 준비는 일찍부터 할수록 좋은 것 같다 (52P)
7. 결국 창업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정직하게 매일매일 답을 내야 하는 일이라고. 그렇기에 지난 10년을 보내며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이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해낸 '나 자신'이다. (76P)
8. 신체적 조건이 비슷한 두 선수가 경쟁할 땐 순전히 심리 싸움이 돼요. 고통을 더 오래 견디는 사람이 이겨요. (40P, 넷플릭스 투르 드 프랑스: 언체인지드 레이스)
9. 록펠러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사업가였습니다. 록펠러의 일은 유정을 뚫거나 기차에 원유를 싣거나 옮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혼자서 조용히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건 하우절, 게으른 일, 좋은 일). 워런 버핏 역시 월스트리트의 소음에 휩쓸리지 않고자 스스로를 오마하에 가두었다. (220P)
10. 지금 돌이켜보면 프리A 펀드레이징이 힘들었던 것과 현금이 없어서 겪었던 고통의 근원, 둘 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는 펀드레이징 준비가 늦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자금 관리가 되지 않아 돈이 언제 바닥날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90P)
11. 지금 되돌아보면, 투자자는 내가 '잘 보이고 싶었던 사람'이었음. 존경하는 만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고, 못하는 것은 감추고 싶었음. 그렇기에 중요한 문제도 어려운 이슈도 터놓고 상의한 적이 없었음. 이 시기에 나에게 주주란 중요하고 어려운 존재, 내 약한 부분을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상대였음. (230P) 나는 두 가지 문장을 말하는 데 매우 인색했다. 하나는 "무엇을 원하시나요? 저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나요?"이고, 다른 하나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도와주세요."다. (246P)
12. 내가 만약 다시 투자받을 일이 있다면, 그때는 투자한 회사 중 잘 안된 곳 대표를 소개해달라고 할 것 같다. 그 대표와 이야기를 하면 이 VC가 어떤 곳인지 가장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318P)
13. 이 시기, 윤자영 대표님(스타일쉐어 창업자)으로부터 귀중한 조언을 얻음. 매각은 내가 팔고 싶다고 파는 게 아니라 '팔려야 한다'는 것이었음. 누군가가 사고 싶은 매력적인 대상이 되어야만 팔리는 것이라고. (38P)
14. 동업자의 조건은 무엇인가. 첫째, 고통을 함께 견딜 수 있는가. 둘째 내가 존경하는 사람인가.
15. 당신만이 결승선을 정할 수 있다. 혹시라도 당신이 달리는 행위로 기쁨을 얻더라도, 마음으로만 얻을 뿐이다. 당신을 달리기를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당신 자신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슈독의 서문, 필 나이트) (99P)
덧. 아낌없이 기록을 공유해준 박소령 님 , 늘 특별한 책을 엮는 북스톤 김연희 님에게 감사를 전한다.
류재언변호사의 유튜브 [협상가 류재언]의 북리뷰는 아래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aPFxGJvmRQ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