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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뒤에 해피엔딩

나는 아직도 이별의 해피엔딩을 바라고 있다

by 흰남방




어쩌다 연말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멀지는 않았지만 파리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이것 또한 결국 거처를 옮기는 일이니 추위 속의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하였다. 아침 이른 시간부터 시작한 이사는 느지막한 오후가 돼서야 겨우 끝이 났다. 영하의 날씨임에도 기꺼이 도와준 친구들에게 따뜻한 국물을 대접하고 싶어 이사를 위해 빌린 차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저녁 메뉴는 뜨끈한 순댓국과 감자탕 그리고 파전. 간촐 해 보일 수도 있지만 파리에서 먹는 한식치곤 꽤나 푸짐한 조합이다. 여태껏 프랑스에서 지내며 한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가지 않은 곳이 한식당이었는데 이사를 핑계 삼아 한 번 더 가게 되었다.


따뜻한 국물로 배를 채우자 긴장이 풀렸다. 집에는 아직 풀지 못한 짐이 한가득 쌓여있었지만 한 겨울의 이사가 이미 끝난 기분이었다. 동시에 파리로 이사 온 뒤 학교 가랴, 일 하러 다니랴 하는 통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친구들과 차가 있을 때 조금 늦은 파리 야경투어를 하기로 하였다.


우리가 향한 곳은 뻔할 수도 있는 에펠탑이었다. 뻔하지만 그러기에 잘 가지 않는 곳. 혹은 가지 못하는 곳 일수도 있었다. 일상에 치이듯 살아가다 보니 에펠탑이 잘 보이는 집이 아니라면 무리하지 않는 이상 쉽게 마주 할 수 없었다. 센 강 옆 한적한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트로카데오 광장에 금방 도착하였다. 오후 내 옅은 비가 흩날렸고 그 탓에 에펠탑 절반 이상이 물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충분하였다. 정시가 되니 파리의 밤하늘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다.


그곳에서 소원을 빌었다. 유치하면서도 간절한 나의 바람을 나지막이 두 손 모아 읊조렸다. 나의 정겨운 친구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놀려댔지만 나는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들어준다 말하며 애써 웃어넘기고 말았다. 지난날 개선문 위에서 에펠탑을 바라보며 빌었던 소원 때문에 여전히 이별의 해피엔딩을 바라고 있었다.




이별 뒤에 해피엔딩이 어디에 있을까.

그 뒤편에 해피엔딩이라는 게 존재나 하는 것일까.


내심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도 굳이 한 번 더 소원을 빌었다. 에펠탑이 정말로 소원을 들어준다는 게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핑계 삼아 그 사람을 한 번 더 떠올려 보려 했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


표현에 아직도 서툴어 용기 내어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문장을 처음으로 소리로 내어 말한 곳이 바로 에펠탑 앞이었다. 왜. 그 순간이 너무나 눈부시고 아름다워 무엇을 해도 괜찮을 것 같은 순간. 그런 순간이 우리 앞에 순식간에 찾아와 버려 떨리는 목소리로나마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별 뒤에 해피엔딩이라는 것은 다시 이곳에 나란히 서 보는 것이다. 그때처럼 비가 많이 온 뒤라도 혹여 지난겨울처럼 눈이 많이 쌓이더라도 그때의 순간을 한번 더 마주하는 것. 그 뒤에는 뻔한 결말이 서 있을 테다. 그래도 이별에 해피엔딩이라는 게 만약 있다면 나에겐 그것이다.


그 엔딩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과 함께 기다리고 있을 테다. 그러한 것은 감정에 대한 호기심을 쉬이 떨치지 못하는 일종의 마음병으로부터 상상되었다. 겪어 보지 못한 감정의 아픔은 비록 '아픔'일지라도 한 번쯤 겪어 봐도 된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이기적인 병. 시간의 겹이 쌓일수록 그것은 무겁게 돌아온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두 손 모아 그 소원을 빌었다.




기나긴 하루가 끝나 갈 때 즈음 적막한 집에 도착 해 불을 켰다. 정리되지 않은 이삿짐을 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상자를 이리저리 치워 겨우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잠시 동안 눈을 감았다. 새 집에서는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면서 안갯속에서 빌었던 소원을 속으로 되뇌었다.


'뻔한 이별 뒤에도 해피엔딩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어스름 속에서 빛나는 에펠탑 앞에서 너에게 나지막이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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