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이론 관점에서 본 가상현실 실감미디어
(전략)
미디어의 효과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사용자의 몰입이다. 충분한 몰입의 달성 여부에 따라 사용자의 긍정적 또는 부정적 호응이 나타나고, 미디어 시장에서 그 성패가 좌우되기도 한다.
미디어는 형식(form)과 내용(content)으로 구성되는데, 형식은 주로 기술의 형태로 이루어지고 그에 담기는 내용은 형식을 통해서 대중에게 전달된다. 이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전달력이 극대화되지만, 모든 사례에서 그런 결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술을 다루는 분야에서는 구현하는 기술 그 자체에 중요성을 지나치게 두기도 하고, 내용을 만드는 분야에서는 새로운 기술의 잠재성과 확장 가능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기도 한다. 미디어는 기술이나 내용 그 자체만으로는 완결된 의미를 갖기 어렵고, 대중에게 전달되었을 때 비로소 그 효과와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몇몇 3D입체영화의 흥행 성공으로 3D입체영상 붐이 전 세계적으로 일었던 시기, 많은 연구와 시장조사분석 보고서들은 향후 3D입체영상 시장의 성장과 확대를 전망했다(이승재 외, 2010; 김기영, 2011; 소요환, 2011; 한국콘텐츠진흥원, 2010).
예를 들어 이경재·정우수(2011)는 3D 실감미디어 산업이 2015년부터 본격화해서 2027년까지 기존 방송서비스 매출액에서 2조 200억 원의 추가 수익이 창출되고, 매년 연평균 24%씩 성장해서 2027년까지 총 14조 7,000억 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불과 약 3년 만에 3D입체영상 시장은 사실상 소멸했고, 그 실패 원인에 대해서는 당초 시장 확대 전망에 관한 연구만큼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수이나마 3D입체영상기술의 시장 실패 원인을 분석한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3D입체 안경의 불편함’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Rotter(2017)는 안경으로부터 야기되는 기술적·생리학적 문제와 더불어 사용자 관점의 분석을 덧붙였다. 그는 (일부 게임 마니아들과 달리) 보통의 대부분 사용자들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로 인해 한시적으로 현실세계로부터 단절되기보다는 현실세계와 공존하는 2D 평면 스크린에서의 사회적 미디어 경험을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정동훈(2016)은 3D입체영상 시장의 생태계가 제대로 구성되지 못함을 이유로 들었다. 3DTV의 보급은 비교적 빠르고 넓게 이루어졌으나, 공급되는 콘텐츠의 양이 부족했고 품질 또한 사용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며, 초기에 몰려들었던 다수의 투자들이 연이어 실패하면서 콘텐츠의 공급이 줄게 되었고 결국 이용자의 수요도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이후 3D입체 안경보다 더 크고 무거운 HMD를 주된 디바이스로 삼는 VR(가상현실) 기술이 등장했고, 초고속 데이터 통신기술과 스마트 디바이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혼합현실(MR; Mixed Reality),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 메타버스(Metaverse) 분야로 논의가 빠르게 확장되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2021b)의 동향분석 보고서에서는 코로나19 팬더믹으로 인해 물리적인 현실세계 기반의 일상생활이 온라인 디지털 기반으로 급속히 이동했고 그에 따라 기술, 콘텐츠 그리고 관련 시장의 경제 규모가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 나아가 기술 영역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 큰 변화의 파급력을 가져올 것이며, 기존 산업분야와 결합하고 국경을 초월해서 물리적인 현실세계까지 상호 운용될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상으로 확장된 더 넓은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상현실 미디어에 관한 최근의 여러 연구와 정책들에서는 관련 분야의 ‘시장과 경제규모의 확장 예측’이 주된 전망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유사한 논리로 전개되었던 3D입체영상산업이 비교적 단기간에 소멸한 결과를 경험한 바 있고, 또 HMD기반의 가상현실(VR) 미디어가 충분한 초기 시장을 형성하지 못했던 최근의 사례를 되돌아봤을 때,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명제에 대한 의문 - ‘과연 지금의 가상현실 실감미디어에 대한 논의도 올바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가?’, ‘실감미디어의 가상환경에서 사용자는 정말로 몰입감과 실재감을 가질 수 있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고, 그것이 본 연구 문제제기의 시작점이었다.
먼저 여러 학술 자료와 정책 보고서, 언론 기사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상현실 실감미디어의 성장성 전망은 여러 시장조사분석기관의 예측 자료와 글로벌 선도 기업들의 투자 규모 등을 근거로 삼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실감콘텐츠 글로벌 동향분석(제11호, 2021년)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AR(증강현실) 헤드셋을 언급하며 기업용 AR 시장에 집중한 전략이 장기적으로 성과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보다 앞선 실감콘텐츠 글로벌 동향분석(제2호, 2021년)에서는 2020년 코로나19 팬더믹을 기점으로 AR기술이 ‘흥미로운 기술’에서 ‘필수적인 기술’로 전환하고 있고, 미디어 및 마케팅 전문지 The Drum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전 세계 AR 시장이 2021~2028년 연평균 43.8%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 전망했다.
또한 평가 시장조사분석기관 ARtillery Intelligence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관련 AR 시장이 2025년에 260억 5천만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보도자료에 따르면, 그러한 전망과는 달리 마이크로소프트는 3세대 홀로렌즈 개발을 보류했고, 아마존 역시 AR헤드셋 개발 프로젝트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HMD를 기반으로 하는 가상현실 실감미디어의 보급과 확산에서는 디바이스 보급률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시장조사업체 IDC(인터내셔널데이터코퍼레이션)의 통계자료를 인용한 또 다른 보도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VR·AR기기 출하량은 2020년에 4백7십만 대, 2021년에는 1천120만 대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숫자로 보면 큰 시장규모로 보일 수 있으나 전 세계 인구를 감안하고 관련 기술이 등장한 지 6~7년 지난 시점임을 고려한다면 크지 않은 숫자로 해석할 수도 있다.
여전히 일반 대중들의 관련 기기 구매는 적극적이지 않으며, 판매량의 상당수는 교육 기관과 관련 공공기관에서의 구매량으로 추정된다. 관련 하드웨어(디바이스) 시장이 기대만큼 커지지 않음으로 인해서 콘텐츠 업체의 위험도 큰 현실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2020년 2월 기준으로 전체 VR·AR 사업체들 중 실제 매출이 발생한 비율은 58.7%에 불과했으며, 폐업률도 15.6%로 일반 ICT벤처기업(9.1%) 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가상현실 미디어 기술과 관련해서, 실제 사람이 아닌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가상의 캐릭터인 ‘가상 인간(Virtual Human or AI Human)’ 역시 주목을 받고 있고, 메타버스의 등장과 함께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최근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비자 연구·데이터 분석기업 밀리유(Milieu)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인간보다 가상 인플루언서를 더 신뢰할 수 없다'는 소비자들의 부정적인 응답이 긍정적인 응답보다 2배 이상 높게 나타났고, 그러한 분석 결과를 이유로 가상인간 모델을 이용한 기업들이 관련 마케팅을 중단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에어아시아 간판女 굴욕, 사고 안쳤는데 2년 만에 잘린 이유’, 중앙일보, 2022년 7월 17일 자.)
메타버스는 가상현실 실감미디어 개념의 세부 분야 중 최근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분야 중 하나로, 현실세계와 융합된 3차원의 가상세계로서 초연결성을 기반으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을 포괄하는 확장현실(XR)이 진화한 개념이다(박현길, 2021). 특히 미디어 콘텐츠에 적극적인 MZ세대의 소비행태와 기존 소셜미디어 및 온라인 광고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분석을 근거로 메타버스의 활성화를 전망한다(오수연, 2021).
이 분야의 성장세 전망 역시 관련 기술시장 규모 예측을 근거로 삼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2021b)은 메타버스 시장 규모가 2019년 464억 달러(약 55조 원)에서 2030년 1조 5,000억 달러(약 1,800조 원)로 약 32배(3,200%) 성장할 것이라는 컨설팅 기업 PwC의 자료를 인용하며 전망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더믹 상황으로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소셜미디어 회사인 페이스북(Facebook)이 2021년 8월 메타 플랫폼(Meta Platforms Inc)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메타버스 전문 기업으로서의 비전을 밝히면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이것이 많은 연구와 정책들의 추진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의 메타버스 관련 산업의 흐름은 당초 전망과는 다소 다르게 전개되고 있기도 하다. 2022년 연초(2월), 메타 플랫폼의 주가가 하루 만에 26%(약 300조 원 규모) 폭락한 사태가 발생했고, 이는 메타가 2012년 주식시장에 상장한 이래 가장 큰 수치이면서 미국 증시 사상 최악의 수치로 기록되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의 시장 분석가 James Clatton은 ‘메타버스라는 것이 아직 명확히 존재하지도 않고 앞으로 몇 년 내로 만들어지기도 어려울 것이며 사람들이 실제로 가상현실에서 살기 원할 것이라는 확증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메타가 수백억 달러를 지출하려 하기 때문에 많은 투자자들이 떠나는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9개월 뒤인 뒤 2022년 11월, 메타 플랫폼의 주가는 년 초 대비 약 70% 하락한 수준이 되었고, 영업이익 46% 감소, 연간 손실 13조 원을 나타내면서 대규모 인원 감축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마크 저커버그는 “팬더믹 기간 동안 늘어난 온라인 활동이 계속될 수 있을 것으로 잘못 판단했다”라고 시인하기도 했다.
또한 2022년 5월 루나 폭락 사태, 11월 FTX 파산 사태와 같이 가상세계와 연동된 가상화폐 시장에 악재가 발생하면서 메타버스를 비롯한 가상현실 분야에 대한 회의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회의론과 관련해서, 송원철·정동훈(2021)은 가상세계가 구체적인 사례로 꼽을 만큼 성공한 사례가 아직까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 장점을 주로 몇 가지 특징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일종의 잠재성으로 미래에 구현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또는 소망을 담고 있는 수준이어서 아직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전 세계 IT산업의 주요 인물들의 회의론도 적지 않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지금 메타버스는 현실이라기보다는 마케팅 유행어에 가깝다’고 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는 ‘앞으로 3년 이내 대부분의 사무실 회의는 메타버스에서 진행될 것’이지만 ‘가상화폐와 NFT는 더 큰 바보이론(greater fool theory)에 기초한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게임 <둠>, <퀘이크>, <울펜슈타인 3D> 개발자였고, 메타 플랫폼에서 메타버스의 핵심 설계자이면서 오큘러스의 자문을 맡고 있는 존 카맥(John Carmack)은 ‘메타버스의 전망을 상당히 비관적이다’고 언급하면서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영미권의 게임 전문지 PCGAMER는 ‘메타버스는 헛소리(The metaverse is bullshit)’라는 제목으로 ‘메타버스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집착하는 것은 우리가 미쳐가고 있는지 계속 자문하게 만들 것’이라는 내용의 칼럼을 싣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관련 기술과 시장은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고, 잠깐의 트렌드가 아니라 패러다임으로 진화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모든 새로운 시도들이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그로 인해 여러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원인으로 분석한다.
첫째, 서로 다른 형태적·내재적 속성을 가진 여러 미디어 영역에서 가상현실 관련 기술이 혼재되어 시도되거나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 가상현실이나 실감미디어에 관한 여러 논의와 시도들이 다분히 기술결정론적 관점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사용자 관점의 논의가 충분치 않다는 점에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
먼저, 디지털 미디어 기술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분류 범주의 미디어 시장과 산업은 새로운 기술에 의해서 그 경계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5개의 범주(문화, 예술, 문화산업, 관광, 스포츠, 종합)의 분류로 나누고 있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는 콘텐츠산업을 11개(출판, 만화, 음악,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방송, 광고, 캐릭터, 지식정보, 콘텐츠솔루션)의 세분류로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과거 어느 정도 영역의 윤곽이 뚜렷했던 문화산업과 콘텐츠 산업의 경계선을 낮추고, 나아가 이종 영역 간의 융합과 통합을 이루어 내게끔 했다.
특히 인터넷 환경과 스마트 디바이스 기술의 고도화는 소셜미디어 같은 새로운 미디어를 사람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 잡게끔 했고 문화와 콘텐츠 산업 전반에 걸쳐 어우러지게 되었다.
전통적인 영화와 방송 영역에서 먼저 접목되기 시작한 고화질·고음질의 시청각적 경험 기술은 HDTV와 디지털 시네마를 걸쳐 3D입체영상 기술이 등장으로 이어졌고 ‘실감(형) 미디어 기술’이라는 용어를 탄생시켰으며, 미디어 사용자들이 가상세계에서도 실제와 같은 경험이 가능하게끔 했다.
이 시기 즈음부터 가상세계에서의 사용자 몰입에 관한 이론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사용자들의 몰입 경험을 높은 수준으로 가능하게끔 한 실감(형) 미디어 기술은 문화와 콘텐츠 산업 전반에서 응용된 형식으로 접목되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더믹이 가져온 사회적 격리(단절) 상황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가상세계에서의 문화와 콘텐츠 소비 및 연결 욕구를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이에 부응할 수 있도록 여러 형태의 기술적 시도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기존의 콘텐츠 산업의 세부 영역들에서는 ‘미디어 경험(소비자) 측면의 단위’ 속성에서 약간씩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충분한 이론적·실증적 검토 없이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무조건적으로 적용해 보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 결과, 기대만큼의 효과가 충분히 나오지 못한 여러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다.
방송과 영화는 메시지가 다수의 대중에게 전파되는 속성으로 대표적인 ‘대중 미디어(Mass Media)’로 꼽히는데, 미디어의 경험(소비) 행위도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HMD를 주요 도구로 삼는 VR(가상현실) 콘텐츠의 경우, 미디어의 경험 행동 측면에서는 시각과 청각이 디바이스로 차단된 채 혼자서 콘텐츠를 감상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개인 미디어(Private Media)’의 속성을 강하게 가진다. 360도 VR 기술이 소개되었던 초창기, 몇몇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에서 시도한 바 있었고, 극장에서 HMD를 쓰고 VR영화 관람을 해보는 시도가 이루어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새로운 방식이 폭넓게 확산되지 못한 이유는 ‘개인 미디어의 속성’을 가진 기술을 ‘대중 미디어의 속성’을 가진 분야에 적용시키려고 했고, 그러한 이종(異種) 미디어 간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불일치 속성을 간과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가상현실 실감미디어 기술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메타버스인데, 대표적인 콘텐츠인 제페토, 호라이즌 월드, 로블록스 등은 주로 게임과 소셜미디어 분야로 국한되는 콘텐츠이고, 방송·영화와는 전혀 다른 미디어 속성을 갖고 있다.
두 번째, 최근의 ‘가상현실 실감미디어 관련 여러 논의와 시도들이 다소 편향된 기술결정론적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이다.
미디어 기술의 발전은 인간 감각의 한계를 극복해 온 역사이고, 미디어는 태생적·본질적으로 기술을 기반으로 해왔다. 특히 최근의 가상현실 실감미디어에서의 경험은 사용자의 감각적 경험을 현실세계와 유사한 수준으로 가능케 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미디어의 기술 그 자체만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새로운 형태로 바꾸고, 동시에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근·현대 문화를 주도해 온 서구문화는 과학적 합리성이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 온 미디어의 변화와 그로 인해 야기된 사회적·경제적 변화도 미디어 기술 발전이 밑받침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 배경으로 새로운 미디어 기술이 개발되고 소개된 뒤 사회적 도입과 확산의 과정을 살펴보는 다수의 논의와 시도들이 그러한 기술결정론적 입장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Chandler(2000)와 같은 기술결정론자들은 기술 그 자체로 결정적인 힘과 추진력을 가지고 있으며 영속적이고 확정적 힘을 갖는다고 했다. 이러한 입장은 기술이 항상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러한 실재성(tangibility) 때문에 설득력을 갖는다고 했다(김명진, 1996).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기술을 신비화할 뿐만 아니라 만능주의화 시키는 경향이 있고, 그 결과로 대중들은 소위 전문가들의 판단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도록 강요당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새로운 기술이 뛰어난 장점을 갖더라도 사회적·경제적·산업적으로 지속되지 못하고 사장된 경우는 비단 3D입체영상의 사례 외에도 많았으며, 그 이유는 기술결정론의 맹점을 충분히 비판적으로 검토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먼저 Marx & Smith(1994)는 ‘기술 그 자체가 주체적인 행위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많은 기술이 실제로는 추상적이며 그 자체로는 사용자의 행위를 주도하거나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기술 그 자체가 어떤 행위와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기술은 물질적 형태를 넘어서 ‘사용자의 수요’와 같은 의식 요소까지 고려해야 하고, 그와 함께 사회적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Smith(1994)는 기술은 사회적·경제적 의사결정권자들에 의해서 선택된 것이지 그 자체로 어떤 변화의 동력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또한 기술이 모든 국가와 사회에서 동일한 영향력을 가질 수 없고 기술에 대한 관심도도 달라지는 ‘기술의 국지성’ 때문에 기술의 영향력도 차등화된다고 보았다(Heilbroner, 1994).
메타버스 소셜미디어의 대표적인 콘텐츠인 ‘제페토(ZEPETO)’는 글로벌 누적가입자가 3억 명이지만 실제 월간활성이용자(MAU; Monthly Active Users)는 2천만 명 수준이고, 그중 80%는 10대 청소년층이며, 일간활성이용자(DAU)는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메타버스 게임 콘텐츠인 ‘로블록스(Roblox)’는 누적가입자수를 밝히지 않고 있는데, 월간활성이용자(MAU) 1억 5천만 명 중 67%가 16세 이하 청소년층이라고 한다.
또한 아바타를 통해 가상세계에서 업무와 쇼핑, 파티 등을 할 수 있는 메타 플랫폼의 소셜미디어 서비스 ‘호라이즌 월드(Horizon Worlds)’의 월간활성이용자(MAU)는 계속 감소하고 있어서 2022년 10월 기준으로 20만 명밖에 되지 않으며, 이에 메타에서도 연말 목표치를 50만 명에서 28만 명으로 축소했다고 한다.
코로나19 팬더믹의 가져온 제한된 대면 접촉 상황에서 가상현실에서의 실감미디어 서비스들이 급부상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대면화 사회로 복귀하면서 대체제로서의 가치가 급감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2022년 5월, 아이지에이웍스의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로블록스의 주간활성이용자 수는 10개월 만의 최저치로 17.8% 감소했고, 3개월 전 수치와 비교해서는 45.5% 하락했다고 한다. 제페토와 이프랜드 등의 국내 메타버스 서비스의 주간 총 사용 시간 역시 최저치를 기록했는데, 4개월 전인 1월과 비교했을 때 절반 이하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2년의 국내 인구의 연령대 구성비는 10대~20대가 전체 인구의 22%이고, 30대 이상이 71%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출생아수 감소의 인구절벽 상황으로 전체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면서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신기술에 대한 친화성이 높은 MZ세대들은 가상세계에 익숙하고 그러한 트렌드가 메타버스를 비롯한 가상현실 실감미디어 산업을 성장시키는 동인이 될 수는 있으나, 한국의 연령대별 인구 구성비 특성은 오히려 가상현실 실감미디어 산업의 확장성을 제한하고 세대별 디지털 격차를 심화시키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첨단 미디어 기술이 접목되는 새로운 미디어 산업을 살펴보는 데 있어서 이러한 사회적·인구통계학적 특수성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오직 기술 그 자체만으로 전망하는 것이 대표적인 기술결정론적 관점의 오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가상현실 실감미디어 콘텐츠를 기획할 때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마지막으로, 최근의 가상현실 실감미디어 산업과 콘텐츠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 사용자 관점의 논의가 충분치 않다는 문제제기다.
앞선 몇몇의 사례에서 살펴봤다시피, 최근의 가상현실 실감미디어 산업에 관한 논의에는 다수의 낙관론과 소수의 회의론이 있다.
회의론에서 주로 지적하는 것이 거품론인데, 시장 분석가 James Clatton은 ‘사람들이 실제로 가상현실에서 살기 원할 것이라는 확증이 부족하다’고 했고, 송원철(2021)은 최근의 실감 미디어에 관한 여러 시도들이 ‘만들었다’와 ‘운용했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했다.
실감 미디어에 관한 다양한 연구와 정책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처럼 산업과 시장에서의 반향이 기대만큼 높지 않은 것은 ‘사용자 관점의 철학과 평가’가 충분히 밑바탕 되지 못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
3D입체영상이 붐이던 시기에는 안전성 여부와 더불어 미디어 사용자들의 몰입성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최근에도 개별 가상현실 실감미디어 콘텐츠에서의 사용자 몰입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다수의 연구와 정책에서는 가상현실 실감미디어 사용자의 몰입이 이미 충분히 확보되었거나 또는 제대로 몰입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가정을 전제로 둔 채로 앞으로의 전망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상황에 발생하는 거품은 미디어 기술의 발전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과정이지만, 다양한 실감 미디어에서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전제인 몰입감, 실재감 등은 과연 충분히 확보되고 있는가? 그러한 몰입은 어떻게 정의하고 측정할 수 있는가?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가상현실의 실감 미디어에서는 ‘불신의 유예’가 충분히 적용되고 유지될 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은 올바른 발전 방향을 모색해 보기 위해서 필요한 질문이다. (후략)
- 연구논문 '가상현실 기술이 접목된 방송 콘텐츠의 몰입에 관한 연구' 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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