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 읽기
옛날 어느 나라에 딸 셋을 둔 왕이 살고 있었다… 그중 막내딸인 프시케는 이 세상의 언어로는 도무지 표현해 낼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났다… 누구든 그녀를 한 번 만나본 사람은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 아니고는 받을 수 없는 찬사를 보내곤 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공주에게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아프로디테 신전을 찾는 사람의 숫자도 줄었다. 아프로디테는 프쉬케때문에 자신의 신전이 명성을 잃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이 아프로디테의 영예가 저 인간의 계집 하나에 빛을 잃었구나…저 계집에게 내 기어이 앙갚음을 할 것이다. 네메시스 (앙갚음의 신)의 눈이 어떻게 그녀를 바라보는지 알려주리라.”
이윤기. 그리스 로마 신화. p.119
얼마 전 아내와 “이프푸”에 관해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고요? 요즘 아이들이 르 세라핌의 노래, “이브, 프시케, 푸른 수염의 아내”라는 곡을 줄여 부르는 말이라네요. 노래가 궁금했던 터라 들어봤습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더라고요. 가사를 읽어봤습니다만,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이 쯤되면 저도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프시케에 대해 썼던 예전 글이 생각났어요. 당시에는 정성을 다해 썼는데 그냥 저렇게 잊히는 게 싫었어요. 아내가 프시케에 대해서 묻기도 했고요. 프시케는 그리스어로 영혼, 정신, 생명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그리스신화에는 프시케가 매우 아름다웠다고 하네요.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를 불러들였다. 아프로디테는 프시케를 가리키며 아들에게 말했다.
“저 계집아이 때문에 이 어미가 상처를 입었으니 네가 이 어미의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 저 계집아이가 받을 고통과 입을 상처가 크면 클수록 이 어미의 기쁨 또한 클 것이다. 네 화살로 깊은 고통을 안겨주어야 한다.”
에로스는 프시케를 찾아 나섰다. 에로스는 마침 잠들어있는 프시케의 입술에 쓴 물 두어 방울을 떨어뜨렸다. 이로써 프시케의 입술은 어떤 사내의 얼굴도 붉히게 할 수 없었다. 프시케는 이어 어깨에 금화살촉을 빼내어 프시케의 심장에 살며시 갖다 대었다. 두 사람의 거리는 너무 가까워 활시위를 당길 필요도 없었다. 에로스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프시케는 잠에서 갑자기 깨어났다. 프시케의 눈에 에로스가 보일 턱이 없었다. 그러나 프시케의 미모에 사로잡힌 에로스는 너무 황홀하여 무심결에 프시케를 찌르지 못한 화살촉을 치운다는 것이 자신의 손을 찌르고 말았다. 에로스는 자신의 금화살에 찔린 상처로 프시케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이윤기. 그리스 로마 신화. p.127
에로스(로마신화에선 큐피드)는 우리가 잘 알듯이 사랑의 신입니다. 에로틱하다는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죠. 에로스는 화살을 가지고 다닙니다. 그리스 사람들 역시 첫눈에 사랑에 빠지거나 아니면 첫인상으로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경험을 했나 봅니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면 에로스의 금화살을 맞아서 그런 것이며, 첫인상만으로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되면 에로스의 납화살을 맞아서라고 재미있게 표현합니다.
프시케에게 금화살을 쏘고 그녀를 싫어하게 될 누군가에게 납화살을 쏘아 그녀가 상사병의 고통을 겪게 할 에로스의 계획은 이렇게 물 건너갑니다. 잠에서 깬 프시케에 미모에 반한 에로스 자신이 금화살에 찔리게 되었으니까요. 사랑의 신이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아름다움은 보통 얼굴을 통해서입니다. 보통 사랑에 빠지게 되면 첫인상 (잘 생기거나 이쁘거나 등)을 보고 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영혼이 육체 이상의 어떤 의미를 말하고 싶었나 봅니다. 인간의 영혼, 프시케가 그 누구보다 아름답다고 하니까요.
우리가 영혼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의 언어와 행동을 통해서 그 사람의 영혼이 어떤지를 미루어 짐작합니다. 단순함, 명료함, 자신감, 유머, 배려, 존중, 미소 등은 사람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영혼을 빛나게 합니다.
인간의 영혼이 사랑의 신을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우며, 인간의 영혼이 얼마나 사랑을 갈망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