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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필 May 28. 2018

재필씨는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재필 씨는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어왔던 사람으로서 나도 그 점에 대해선 참 할 말이 많다. 불과 며칠 전에도 어떤 술자리 모임에 있다가 테이블 건너편 무리 중 한 명이 불쑥 “재필 씨는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라는 말을 갖다가 나를 향해 던졌는데, 그게 하필 나의 자존감 근처 어디쯤을 찔렀던 것이다.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이런 생각이다. ‘지금 내가 말이 없어 당신이 불편하다는 말인가?’ 아니면, ‘재필 씨는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인가 하는 재필 씨에 대한 순수한 탐구 또는 단순한 호기심인가?’ 아무튼 나는 내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만나면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겠고 어떤 답을 돌려주어야 할지 난처하다. 간혹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그런 질문을 고운 포장지에 싸듯 다정히 건네는 고마운 사람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개는 무리 중에 꼭 한 명쯤 있는, 분위기를 자기 손에 꼬옥 움켜쥐고 싶어 안달인 치가 술상 위의 수질 검사를 하듯 예의주시하다가 나를 지목한다. 마치 지금 술자리에서 무리들의 분위기 속에 스며들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제멋대로 나를 벌하려 드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리들 사이에서 모난 돌처럼 특별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다. 예컨대 모두가 술 마시는 중에 혼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콧노래를 흥얼거린다거나, 혼자서 술을 따라 마신다거나, 뭐 그런 별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던 중에 말이다. 


다만 그 순간이 아쉬운 점은 “재필씨는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그 술자리를 나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결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해 힘을 쏟는 타입 형의 인간이다. (머릿속이 산만하고 딴생각을 하다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의 맥락을 종종 놓칠 때도 많지만) 적당히 맞장구도 칠 줄 알고, 이야기의 흐름을 주시하다 테이블 위로 침묵이 깔리면 먼저 나서 머릿속에서 준비하고 있던 적당한 이야깃거리를 슬며시 차려낼 줄 아는 친절한 재필 씨다. 

그러니 그런 중에 나에게 왜 말이 없냐고 난데없이 물으면 나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 나로서는 ‘저 사람이 나에게 왜 이러지?’하고 다소 불쾌하게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세상 모든 말이 없는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보통 말이 없는 사람들은 고의로 입을 다문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로 불쾌한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누구를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도 아니고, 분위기를 망치려는 의도도 아니다. 다만 말하는 게 조금 서툴 뿐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이 있는 반면 들어주는 것에 발달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어딜 가나 이야기꾼이 환영받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과묵하게 눈에 잘 띄지는 않으나 열심히 들어주는 것으로 말하는 이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과묵함을 밟고 이야기를 펼칠 수 있도록 말하는 이에게 무대를 제공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술자리에서 별로 말없이 심심하게 앉아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만약 그런 심심한 사람이 없다면 술자리 또한 그리 알차지도 유쾌해지지 못할 거로 생각한다. 무릇 기분 좋은 술자리로 유쾌해지기 위해선 말하는 쪽으로 발달한 사람들끼리만 모여서도 곤란한 법이다. 어쩐지 이야기의 끄트머리에서 결국 준비했던 깔때기를 꽂고 나의 변명으로 귀결하는 이야기였나 모르겠다. 어쨌든 나같이 심심하게 생겨먹은 사람도 술자리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 맛있는 술 너희들끼리만 마시지 말고 불러달라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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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소심한 사람>,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요?> 의 저자이며 서점 '오혜'를 운영하는 유재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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