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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Oct 11. 2021

착한 팀장의 비극

피드백의 기준은 상대방의 기분이 아니라 선의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인생 나이 서른 살, 살면서 꾸준히 가져온 나의 단점은 남에게 쓴소리를 잘 못한다는 것이다. 운전할 때 이런 특성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신호등 불이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었는데도 출발하지 않는 앞차, 바로 앞에서 무리하게 차선을 변경하는 차가 있어도 클락션에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내가 조금 기다리면 되는데, 내가 브레이크 밟고 속도를 줄이면 되는 건데, 저들도 저들만의 사정이 있겠지.'  


그런데 나의 배려심으로 클락션을 울리지 않았다고 칭찬받는 건 결코 아니다. 출발하지 않는 앞차를 계속 기다리다가는 뒤에 있는 다른 차들에게 피해가 가고, 만일 사고라도 난다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빵빵 울린 클락션으로 상대방을 놀라게 하고, 잠깐 기분을 나쁘게 할 수는 있어도 적절한 때 울리는 클락션은 더 큰 사고로 번질 수 있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불필요하게 넘쳐나는 배려심으로 쓴소리를 잘하지 못하는 나의 특성은 일터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팀원이 작업한 결과물이 기획안과 다르고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최대한 팀원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부드럽게 에둘러서 표현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음 ~ 잘 만들어주신 것 같네요! 전체적으로 크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데 타겟 고객들에게는 조금 임팩트가 약할 것 같아서요. 몇 군데만 좀 수정하면 나아질 것 같은데, 다시 작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일단 처음에는 상대방의 수고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칭찬을 깔고, 그 후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들을 조금씩 살을 붙여서 하는 식이다. 다른 팀이랑 협업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싫은 소리를 잘 못하고 뭐든 긍정적으로 받아쳐서 넘기다 보니 내가 호구처럼 느껴져서 답답할 때가 있다. 이런 나의 수용적인 태도 때문인지 다른 팀에서 우리 팀이 하는 일의 중요성 및 전문성을 낮게 보고 애매한 일은 던지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쁠 때도 있었다.


내가 갓 들어온 신입이라면 몰라도, 팀장으로서 쓴소리를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 단점일 수 있다. 단순히 팀원들의 작업에 대한 피드백 수준이라면 괜찮을 수는 있어도 외부 파트너와의 계약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에서 회사를 대변하여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회사의 이익 및 팀원들의 업무에도 큰 피해를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착한 팀장의 딱지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주재하던 팀 회의에서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다. 마케팅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특정 주제를 바탕으로 각자 조사한 사례를 돌아가면서 발표하던 자리였는데, 기발하고 좋은 사례였지만 실행 가능성이 떨어지고, 우리 회사의 브랜드와 현재의 상황에 맞지 않는 사례를 주로 조사해온 팀원이 있었다. 배가 바다가 아니라 산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에 피드백을 그 자리에서 바로 전달했다. 적절한 상황에서 필요한 말을 한 것 같은데, 굳어가던 팀원의 표정이 내내 신경 쓰였다. '아 내가 너무 꼰대스럽게 말을 했나?' 자문하며 괴로웠다.  


팀원들에게 일일이 캐묻고, 피드백을 바로바로 전달하는 것은 마이크로 매니징 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뭐든 오케이 하며 딱히 터치를 안 하자니 방임하는 것 같고. 호구와 꼰대 양극단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점을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이러한 고질병을 앓고 있는 내게 넷플릭스의 기업 문화를 담은 '규칙 없음' 책은 피드백에 대한 나의 생각 자체를 바꿔줬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잘못을 지적해주는 피드백이 긍정적 피드백보다 그들의 성과를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밝힌 이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3배나 많았다고 한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우선 기운이 빠지고 불쾌해진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해당 피드백이 정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을 고친다. - '규칙 없음' 중-


넷플릭스는 불필요한 규칙을  없애고, 정말 중요한  가지 원칙만 남겼는데 그중에  가지 원칙이 '항상 정직하라'이다. 들어온  얼마   직원이라도 CEO  매니저에게 가감 없는 피드백을 먼저 전달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피드백을 주고받는 목적이 개인과 조직의 성장과 발전이기 때문이다. 피드백을 전달함으로써  나은 결과를 가져올  있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솔직하지 않았다면 이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어 넷플릭스에서는 일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칭찬이 아니라 잘못된 지적할 때 이 자체를 꼰대라고 여겼던 내 생각부터 틀렸던 것 같다. 피드백은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하여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조직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선의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들었을 당시에는 충격적이고 괴로웠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던 피드백 하나가 떠오른다.


7년 전, 한 비영리 재단에서 인턴으로 첫 사회생활을 경험할 때였다. 당시의 나는 23살 정말 멋 모르던 대학생이었다. 함께 일하는 팀장님, 사수 모두 좋은 분들이셨고, 다른 직원 분들도 친절하게 나를 대해주셨다. 대학생 인턴이라면 모름지기 싹싹해야 한다고 생각이 박혀 특유의 친화력으로 다른 직원들에게 먼저 잘 다가갔고, 다들 잘 받아주셨다. 그런데 이런 직원들의 호의에 취한 나머지 인턴으로서 지켜야 했을 선을 종종 넘었나 보다. 토요일 외근을 끝내고, 우리 팀을 지원하기 위해 나와준 주임 H와 같이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손잡이를 잡고 나란히 서서 가는데 H가 "재쇤씨가 제 친동생이랑 나이도 같아서 그런지 동생같이 느껴져서 그러는데, 솔직하게 뭐 좀 말해도 될까요?"라고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 부적절했던 지난날의 나의 말과 행동들을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지적했다. H 주임이 내 사수 J에게 한 농담에 내가 엄청 크게 웃었던 일,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선임들에게 휴가 계획을 물어보면서 나도 휴가를 가고 싶다고 말한 것들 등.

 

지적을 당했을 때 정말 심장이 멈춘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내가 과거에 저런 말과 행동을 했던 것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이 분은 하나하나 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구나.'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이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했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충격받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한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H 주임이 내게 지적했던 것들은 지금 보면 사실 업무에 관련된 피드백이기보다는 꼰대스러운 피드백에 가깝긴 하다. 하지만 그날 버스에서 들었던 피드백은 대학생활과 사회생활이 크게 다른지 모르고 멋모르게 행동했던 어린 나의 도를 반성하고, 나의 말과 행동을 바뀌게    전환점이었다. H 피드백 덕분일까, 이후 다른 회사에서 인턴십을 했을 때는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다는 칭찬을 선임으로부터 종종 받았다.  


그때 가감 없는 쓴소리를 내게 해 준 H 주임에게 참으로 감사하다. 그때 버스에서 쓴소리를 듣지 않았더라면,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쓴소리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편하고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한다는 핑계로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H 주임이 되어야 한다.


Photo by GRA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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