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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쇤 May 16. 2020

거짓말로 얻어낸 꿈같은 여행

말라위를 탈출하여 옆 나라 잠비아로

죽을 때까지 가져가고 싶은 나만의 철학이 있다면, 바로 부끄러움 없이 남에게 피해 끼치는 것 없이 정직하게 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나 내 감정에 솔직하며, 어차피 들킬 거짓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쓰레기통 없는 길거리에서 차마 쓰레기를 버릴 수 없어 고이고이 집에 모셔오기도 하고, 자정이 넘은 시각 아무런 차도 없는 도로에서 횡단보도의 빨간 신호가 초록색이 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내가 규율을 어기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적이 있다. 그것도 봉사 활동을 떠났던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파견 단원의 안전을 위하여 봉사 활동에 임하는 일 년 동안은 비자 연장 등의 불가피한 이유를 제외하고 파견된 국가를 벗어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진지한 마음으로 떠났던 여정이었기에, 굳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해외여행을 하며 규율에 위배되는 짓은 당연히 꿈도 꾸지 않았다. 말라위 생활에 완벽 적응을 마치고 동료 단원들이랑 술을 마시면서 '다른 국가에 파견된 단원들은 다 몰래몰래 여행 다녀온다는데, 우리는...' 하는 볼멘소리들이 조금씩 나올 때마다 그래도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나중에 발견되어 내가 파견된 단체 및 후배 단원들에게 누가 될 만한  부스러기는 만들지 말자며 애써 마음을 달랬었다.


그런데 나의 정직함의 균열은 1년이라는 봉사 기간의 끝 무렵, 우리 단체의 지부장님이 2주 동안 한국에 돌아가시며 급작스러운 휴가가 생기면서 시작되었다. 일로 꽉 채워졌던 말라위에서의 생활에서 갑자기 빈칸이 생기자, 나와 친한 단원 둘이서 말라위를 탈출하는 발칙한 계획을 도모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국가로 파견되었던 봉사단원들은 다 암암리에 해외여행을 즐겼다더라. 역시 허락을 구하는 것보다 용서를 구하는 것이 낫다.)


우리의 여행지는 말라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옆 나라 잠비아(Zambia)였다. 옆 나라이기는 하지만, 잠비아의 영토가 워낙 커서 우리가 살던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에서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까지는 무려 차로 10시간 걸리는 거리였다. 정말 친한 동료들에게만 우리의 여행에 대해 알리고, 파견 단체 및 친한 현지 교민에게는 말라위 호숫가에 놀러 간다는 알리바이를 만들어둔 채 2017년 새해가 밝기 하루 전 날 우리는 잠비아로 떠났다.






국경을 넘으니 펼쳐진 더 넓은 세상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의 발칙한(?) 모험은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고, 소지품 하나 잃어버리지 않고, 무사히 잘 다녀왔다. 그리고 여태까지의 여행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엄청난 경험이 되었다. 국립공원에서 사파리 투어를 하면서 사자, 기린, 코끼리 등의 야생 동물을 눈앞에서 관찰하기도 했고, 꽃보다 청춘_아프리카 편에서 나왔던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의 장관을 직접 봤고, 악어가 사는 잠베지 강(Zambezi river)에서 유쾌한 미국인 친구들과 한 배를 타고 6시간 래프팅을 하기도 했다. 화장도 하지 않은 내추럴한 모습을 내내 유지하여 인물 사진을 가장 적게 남겼지만, 그만큼 자연과 가까이하며 깊은 행복감을 느낀 여행이었다.


사우스 르왕과 국립공원 사파리 투어 (South Luangwa National Park)
실제 눈으로 보니 너무 신기했던 영롱한 자태의 지브라
잊을 수 없는 인생 경험이 된 잠베지 강에서의 래프팅



무엇보다 국경을 넘어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한 것이 인상 깊었다. 한국을 탈출하여 아프리카 말라위로 갔을 때만 해도 한국이라는 좁은 우물을 탈출하여 더 넓은 세상에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 년 동안 한 나라에만 머물면서 일하니, 결국 나는 또다시 작은 우물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아프리카 대륙은 정말 넓고도 넓다. (출처: 구글 이미지)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다른 문화와 다른 풍경과
다른 법이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에 발을 디디는 것이다.



말라위와 잠비아는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 Nyasaland(니아살랜드)라는 영국의 보호령으로 묶여 한 국가였고, 음식 문화나, 사람들의 성향 그리고 언어까지 서로 공유하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 익히 들어서 크게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웬걸, 잠비아는 말라위보다 훨씬 선진국이었다. 수도 루사카에는 용산 아이파크몰과 같은 복합몰이 산재했으며, 무려 영화관이 있었고, 세련되고 예쁜 옷을 많이 파는 옷 가게도 많아 눈이 뒤집히는 경험이었다. (심지어 현지 마트에서 진로 소주를 팔기도 했다!) 군데군데 균열이 많았던 말라위의 도로에 비해 지방 도시에서도 아스팔트로 잘 닦여 있는 잠비아의 도로, 최대가 2차선에 불과했던 말라위에 비해, 무려 4차선까지 있는 잠비아의 도로(실제로 잠비아의 GDP는 말라위의 3배에 이른다). 그제야 말라위를 검색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 중의 하나'라는 말이 깊게 와 닿았다.


처음 말라위에 도착했을 때는 상상 속의 열악한 아프리카의 모습보다는 훨씬 정돈되고, 한국에 비해 부족한 것은 당연히 많지만 그래도 먹고 살기에는 부족한 것은 또 없었기에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국가가 말라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국경을 넘어 잠비아에 와서 바로 옆 국가 사이에서도 존재하는 선명한 빈부격차를 경험하고 나니, 이는 말라위를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봉사 단원으로서 본분에 충실하게 말을 잘 들었다면, 이런 엄청난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올곧고, 꽉 채운 삶을 사는 것보다 어느 정도의 유연함과 빈칸을 가지고 살아가야 그 공백에 예상치 못한 다른 경험이 채워져 나의 세계는 더욱 커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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