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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열 Jul 03. 2024

인어공주, 인종다양성과 노스탤지어

생각

인어공주 (2023) - 출처: imdb

작년 디즈니 인어공주 실사화 영화가 개봉을 하고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인어공주가 무섭게 생겼다느니, 프레데터를 연상시킨다느니, 영화가 일관성이 하나도 없다느니, PC사상에 절었다느니, 원작을 무시했다느니 등등...


개인적으로 디즈니 만화는 내 취향이 아닌지라 1989년작 만화영화 인어공주를 본 적이 없다. 난 로봇 나오는 만화만 본다. 따라서 실사 영화로 재구성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 누구보다도 관심이 없었다.


당시 내 유튜브 페이지에는 영화에 대한 신랄한 비판, 특히 지나친 PC사상 강요를 비난하는 내용들이 내 피드에 줄지어 올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별 관심이 없었다. 인어공주건 붕어공주건 다들 열을 올리지만 내 관심 밖의 일이니까.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얼마 전 유튜브 피드라고 쓰고 블랙홀이라 읽는다를 보다가 인어공주를 가지고 유투버와 시청자가 감정 섞여 싸우는 영상이 올라왔다. 호기심에 저 사람들은 무슨 얘기를 하려나 하고 보니, 인어공주 영화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고 영화를 싫어하면 생각이 부족한 사람, 좋아하면 PC사상에 찌든 사람… 그냥 두 사람이 서로 이상한 놈이라며 싸우는 영상이었다. 서로에 대한 인신공격도 곁들여 가면서.


이때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영화를 욕하는 글과 영상은 참 많이 봤는데 칭찬하는 글은 하나도 못 본 것 같다. 이게 가능한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 돈도 많이 벌었더만. 옹호하는 입장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그냥 '안 좋아하면 나쁜 놈!' 이런 게 아니라 정말 비평가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 옹호하는 사람은 없을까?


그래서 한번 유튜브를 검색해 봤다.



소셜 미디어 - 당신의 시야를 확실하게 좁혀줄 수 있는 매체.

요즘 동료 교수들 사이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닌 AI다. 어떤 과제도 chatGPT에 집어넣으면 즉각 그럴 듯 한 답을 만들어주고, 때로는 출제자가 생각하지도 못 한 아이디어를 가져와 감탄하게 만들 때도 있다. 나도 직접 사용해 본 입장에서 아이디어를 정리하거나 쓴 글에 불필요하게 반복적인 문장이 있는지 찾아볼 때 굉장히 유용하다고 느낀다. 왠지 강의도 나보다 더 잘할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업을 평가하는 입장에서는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AI를 사용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발전시키는 학습 도우미로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지난 1년 동안 과제를 채점한 경험에 따르면 학생들은 AI가 내뱉는 답을 베끼기에 급급했다. AI가 제공해 준 정보를 절대적으로 믿어버리는 것이다. 가끔 실수도 하고 오답을 주는 엉터리 계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학생이 얼마만큼 배우는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지 가늠하는 기준, 과제나 시험의 효용성이 떨어졌다. 수업을 나와 강의를 듣고 본인의 노력으로 완성한 과제와 ChatGPT에 문제를 통째로 집어넣고 뽑아낸 과제의 질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그 과제가 어떻게 학생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결과적으로 학생들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의 변화도 시급한 상태다.


갑자기 인어공주, 유튜브를 이야기하다가 왜 AI 얘기를 꺼내냐고? 유튜브와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나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에서 뽑아내는 정보를 아무런 필터링 없이 받아들이는 행동은 결과적으로 학문을 익히는 데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인 '비판적 사고'를 퇴화시킨다.


유튜브 존재의 가장 큰 목적은 수익 창출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용자를 최대한 많은 시간을 웹사이트에서 보내게 해야 한다. 고로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내게 '필요한' 정보보다는 내가 좋아할 것 같은 편파적인 정보, 때로는 조금 자극적이고 과장을 섞은 내용을 지속적으로 유입시켜야 한다. 정확하고 공정한 정보 전달보다는 '쩐($)'이 목적인 플랫폼에서 이러한 편파적 내용들에 노출되게 되면, 내가 믿는 주장이나 의견을 뒷받침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그에 상반되는 의견 또는 지식에 대해서는 점점 무지해진다. 사람은 항상 공감대를 갈구한다. 따라서 내가 듣고 수긍할 만한 내용을 찾아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굳이 내 시간을 할애애 가며 듣기 불편한, 또는 내 생각에 반하는 의견을 듣고 싶지는 않으니까. 편파적인 생각은 즐겁다.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한다, 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 배제된 것이다.


사실 이런 유튜브 알고리즘의 문제는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내가 유튜브의 편파적인 피드 제공 문제를 처음 제대로 느낀 것은 COVID19 팬데믹 때였다. 북미에서는 COVID19에 대한 음모론이 제법 컸는데, 내담자 중에서도 정부가 우리를 조종하기 위해서 가짜 병을 만들어냈다고 믿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리고 호기심에 "COVID19 is hoax!"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기다!)라는 내용을 며칠 검색했더니 그 이후로는 한동안 유튜브에 COVID19 음모론에 대한 내용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후에 유튜브가 COVID19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을 막았지만 오히려 음모론을 믿던 사람들은 정부가 개입하여 진실을 막으려고 한다고 믿는 바람에 오히려 음모론만 더 커지는 현상을 초래했다.


알고리즘은 우리를 고립되게 만든다.


적이 있으면 동지애가 강해진다는 말처럼,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이 생성하는 콘텐츠는 결과적으로 두 가지 문제를 가져온다. 하나는 서로의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없앤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를 단편적인 생각으로 남도록 꽁꽁 묶어둔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편파적으로 굳혀질수록, 상대방에게 손가락질하면서 자신과 생각이 같은 소셜미디어 콘텐츠에 더 매달리고 집착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영화 인어공주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것은 바로 인어공주역으로 유색인종 핼리 베일리가 캐스팅되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특수효과나 배우들의 연기력 평가는 보는 사람들마다 평가가 엇갈렸지만, 인어공주에 인종다양성을 부여하는 것이 괜찮은가 아닌가에는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그리고 '인어공주'라는 만화/영화에 전혀 관심이 없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이 두 그룹이 영화를 통해 찾는 것 또한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 인어공주의 인종다양성을 옹호하는 입장이 찾는 것은 인어공주라는 가상의 캐릭터에 정해진 인종의 틀, '주인공 = 백인'이라는 공식을 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 영화를 통해 인어공주라는 메인스트림 영화의 주인공이 유색인종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반긴 것 같다. '인종과 상관없이 모두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 말이다. 외국에서 사는 유색인종의 내 입장에서도 와닿는 말이다. 


그러면, 캐스팅에 불만을 가지면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일까? 


실제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난 대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핼리 베일리의 캐스팅에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은 인종다양성과는 별개인 유년 시절에 보았던 만화영화 인어공주를 향한 향수, 즉 '노스탤지어' 때문이다. 인어공주 캐릭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고,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빨간 머리의 백인 여성이다. 영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캐스팅에 특히나 불만을 가진 것은, 영화가 자신이 가진 인어 공주 이야기의 향수를 저버린 채 멋대로 각색해 버린 것에 대한 제작사를 향한 불만일 것이다. 단, 단순히 배우 외모를 가지고 인신공격을 하는 건 결국 본인 얼굴에 침 뱉는 행동이다. (이게 싸움을 부추기는데 한몫을 했다고 본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던 적이 있다. 바로 2016년작 고스트 버스터즈 리메이크다. 익숙했던 등장인물들은 전부 다 사라졌고 여성 캐릭터들로 바뀌었다. 그리고 캐스팅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은 여성혐오라고 비난을 들었다. 난 그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종다양성, 성다양성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향수를 찾는 사람들의 대립. 이건 대립이라고 보기보다는 그냥 서로 영화를 통해 찾으려는 것이 다른 게 아닐까? 


나는 인종다양성에 대해 알리는 것과 전파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특히나 유년 시절에 아이들의 보고 듣는 이야기는 그 사람의 인격,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모든 이야기의 중심이 백인을 위주로 돌아가는 대중매체에 패러다임 변화를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인종다양성을 알리는데 많은 사람들의 향수가 깃든 유명한 프랜차이즈를 가져와 몇 가지만 각색하고 만들었다는 점은 좀 안일한 생각이었다고 본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이 두 토끼가 싸움이 난 판국이다. 만약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로 이 인종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어땠을까?


오해는 쉽고 재미있다. 이해는 어렵고 불편하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그냥 쉽게 오해하고 넘기려고 한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로 좁아진 우리의 시야가 이러한 갈등을 더 부추기는 것 같다고 느낀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상반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려는 것보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는 것을 어떨까?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 내 생각의 맹점을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보는 것이 비판적인 사고의 시작일 것이다. 




자투리


내가 인어공주를 본 적이 없다 보니 뭔가 비교할 만한 예시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영화 Pacific Rim 퍼시픽 림이다. 나는 로봇이 나오는 에반게리온 팬이다. 중학생 시절 세기말적 분위기가 덕지덕치 칠해진 에바와 사도의 전투를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만약 가이낙스 (에반게리온 제작사)가 에반게리온을 실사화하려고 했다면? 그리고 내용은 그대로인데 주인공을 백인, 또는 여성 캐릭터로 리메이크한다면? 뭐 분노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냥 안 봤을 것 같다. (아니면 욕하면서 봤을 것이다.) 

Pacific Rim (2013) - 출처: Fandom

그리고 2013년 퍼시픽 림이 개봉했다. 누가 봐도 에반게리온 오마주인 것이 티가 나지만 전혀 다른, 할리우드 영화. 영화를 보고 나는 흥분했다. 흥분해서 부모님도 모시고 또 보러 갔다가 영화 끝나고 집에 가는 길 내내 왜 이딴 영화를 골랐냐고 혼나야 했다. DVD까지 샀다. 내가 퍼시픽 림은 좋아했던 이유는 충분히 내 향수를 자극하는 오마주지만 그 향수를 파괴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만약 작년에 나온 인어공주 영화도 이런 노선을 탔으면 어땠을까? 뭐 더 폭망 했을지도 모른다. 


2018년작 퍼시픽 림: 업라이징은 정말 대. 실. 망.이었다. 차라리 만들지를 말지.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분노할 것 같아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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