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느리게 벽을 허문다
청산도로 여행을 갔다. 청산도에 가기 위해서는 완도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그 완도까지 가는 것도 꽤 고역이다. 서울에서 완도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지만, 무려 5시간이 걸린다. 다른 곳을 들르는 것도 아니고 바로 가는데도 5시간이 걸린다. 부산까지도 5시간이 안 걸리는 시대에 완도는 여전히 너무 먼 곳이다. 당연히 식사 한 끼는 굶어야 하니 휴게소에서 뭘 먹을까 고민하며 버스에 올라탔다.
완도로 가는 날은 구름 한 점 없는 햇빛 쨍한 날씨였다. 커튼을 치고 가장 편안한 각도로 등받이를 쭉 내린다. 완도행 버스는 매진되는 일이 없어서 내 뒷자리에 사람이 있을 확률도 낮다. 의외로 끝까지 내리면 불편하기 때문에 적당히 내리고 기사님과 같은 창을 바라본다. 나는 버스로 서울을 빠져나가면서 맞은 편 차로에서 오는 버스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저 버스는 광주에서 오는구나… 저거는 천안에서… 혹은 경기도 신도시에서 오는 빨간색 버스까지. 그 안에 탄 승객들의 표정과 장거리를 몰고 온 기사의 피곤함, 그리고 그들이 출발할 때를 상상하곤 한다. 얼마나 부지런히 일어나 움직였을까? 그들이 본 하늘은 무슨 색이었을까? 여명은 매일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성립할 수 있는 질문. 그러나 언제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잠든다. 눈 뜨면 이미 경기도를 벗어난 어딘가.
휴게소에 도착해 호두과자를 먹으며 사람들을 구경했다. 휴게소의 사람들은 모두 표정이 밝다. 나는 휴게소에서 우울하거나, 표정이 없는 이를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모두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모두 낯선 곳으로 여행가는 이들일까? 업무의 이유로 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들조차도 원래 살던 도시에서 모습과 다르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건, 이유가 뭐든 상관없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도 휴게소에서는 얼굴 찌푸리는 주름이 가려진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일지도.
버스는 다시 출발하고 이제 지루함이 몰려온다. 잠은 이미 다 잤고, 아직도 3시간은 넘게 가야 하고, 호두과자로 배는 찰 리 없고, 배고픔과 지루함을 안고 조금이라도 더 편한 자세를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부모님께서 부산에서 서울로 오실 때 버스를 이용하신 적이 있다. 주말이라 차가 좀 막혀 5시간보다 좀 더 걸렸는데 버스 타고 부산은 안 되겠다고 하셨다. 그들이 참기 힘들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지루함? 배고픔? 불편함? 아니면 KTX나 비행기를 타지 못했던 사실에서 나오는 패배감과 열등감? 실제로 KTX 개통 후 버스로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이들의 비중이 폭락했다고 한다. 저비용 항공사가 늘어난 지금은 살아날 확률이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완도까지는 기차도 없고 비행기도 없어서 무조건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패배감과 열등감은 쑤시는 엉덩이 밑으로 꼬깃꼬깃 구겨진다. 어쩔 수 없으니까. 멀고 또 배 타고 가야 하는 여행지를 고른 건 나니까. 자세를 수십 번 고치는 동안 풍경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살면서 가장 길게 버스를 타본 기록은 17시간이었다. 당시 나는 콜롬비아에 막 입국해 국경도시인 이피알레스(Ipiales)에서 대도시인 칼리(Cali)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고 있었다. 직선거리로는 비행기를 타기 애매한 거리고 실제로 항공편은 경비행기로 일주일에 한 번 다녔다. 다시 장거리 버스를 타야 함에 벌써 피곤했다. 전날 키토(Quito)에서 국경까지 7시간이 걸려 왔기에 그냥 하루 쉬었다 갈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피알레스는 정말 시골 마을이었다. 근처에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성당이 하나 있긴 했지만 그런 쪽으로는 관심이 전혀 없었기에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버스 티켓을 끊으면서 물어봤다. 칼리까지 얼마나 걸릴까? 판매원은 자신 있게 10시간! 이라고 답했다. 지금이 아침 9시니까 도착하면 저녁 7시, 그러면 숙소에 짐 놓고 저녁 간단히 먹고 씻고 자면 딱이겠군. 생각만 해도 편안한 일정이다. 버스는 한국의 그것과 비교하면 굴러가는 누더기 수준이었지만 불평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여행지에서의 불평은 곧 나를 이루던 세계를 깨부수고 알 밖으로 나올 힘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겁쟁이 같은 행위다. 불평은 껍질 안에서만 울리는 메아리 같은 것.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부수고 나와야만 뭐든 할 수 있다. 배낭을 짐칸에 싣고 버스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국경이라 그런지 보따리 가득 싼 상인들이 많았고 정신없었다. 시골은 원래 그런 건가? 아니면 국경이라 그런 건가? 우리나라 시골 터미널도 이렇게 정신없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들의 검게 탄 얼굴과 그 속에 핀 주름을 바라보다 버스가 움직인다.
첫 번째 경유지까지는 편안하게 정시에 도착했지만, 그다음부터가 진짜 이동이었다. 파스토(Pasto)에서 포파얀(Popayán)까지 거리는 멀지 않지만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느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속도를 내지 않은 것 같다. 모든 구간에서 도로는 목적을 잃은 듯했다. 단순히 길이 안 좋아서 속도를 못 내는 게 아닌, 일부러 천천히 달리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왜? 모처럼 외국인 승객이 있으니 구불구불한 콜롬비아의 산속 시골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나만을 위한 특급 관광 서비스. 그런 것도 나쁘진 않지만 내 인내심은 길어야 1시간이지, 10시간은 아니었다. 후회했다. 차라리 칼리로 가지 말고 그나마 비행기가 자주 다니는 보고타(Bogotá)로 갈걸. 아예 육로로 오지 말고 처음부터 키토에서 비행기로 올걸. 구불구불한 산길은 다시 벽을 두르고 있었고 그걸 부수기 위한 망치질은 점점 졸렬해져갔다. 어쩔 수 없었는데. 그걸 스스로 골랐으면서도.
그러는 동안 해는 져서 어두워졌고, 휴게소에 도착했다. 물론 우리나라 휴게소를 생각하면 안 되고, 길가에 매점과 간단한 노점상들이 있는 게 다였다. 그러니까 그냥 도로변의 마을을 생각하면 된다. 콜롬비아에 입국해 한 끼도 먹지 않았지만 식욕은 들지 않았고 낯선 나라의 산속 시골에 있는 이들은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했다. 간이 식당 옆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기타를 칠 줄 아는 섹시한 중년 남자가 공연하고 있었고 그 앞으로 열 명 정도가 앉아 있었다. 그는 분명 나를 못 봤을 것이다. 나를 봤으면 일 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든 동양인이 신기해 흐름을 잃었을 것이다. 그는 마치 그곳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하기 위해 있는 사람 같았다. 그는 뭐 하는 사람일까? 산에서 가축을 기르는 사람일까? 아니면 마을의 만능 일꾼일까? 그러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거북이처럼 기어갔던 버스가 우연히 이곳에 도착한 덕분에 그의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뿐이다. 한때 ‘느린 여행’이라는 게 주목받았다. 정형화된 일정에 맞춰, 귀국 날짜에 쫓겨 다니는 게 아닌, 걷고 싶은 대로 걷고, 보고 싶은 걸 보고, 쉬고 싶으면 세상 편하게 쉬는 여행이 떴다. 나는 한때 그게 더 우월한 여행이라고 믿으며 기존의 여행을 업신여기곤 했다. 이제 난 시간이 많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으니까. 느려도 되니까. 버스가 빠르게 달려 지금 이 시각에 이곳을 지나치거나, 혹은 너무 느려 오늘 오지 못하더라도 그는 나와 상관없이 이곳에서 노래했을 것이다. 결국 나는 그들의 삶 앞에서 언제나 배경이자 관객. 비겁한 신념을 가진 깨어있는 여행자인 척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매 순간 놓인 것에 최선을 다해 보고 훔치는 것. 답답했던 내 신념은 중년 남자의 노래 선율에 흩어져 사라진다.
한국의 쾌적한 우등버스는 두 번째 휴게소에 도착했다. 우연의 일치로 이곳 역시 보통의 휴게소가 아닌, 편의점과 화장실만 있는 졸음쉼터 느낌의 휴식 공간이었다. 그만큼 사람도 더 적다. 좀전의 간식을 든 들뜬 이들은 없고 화장실이 급해서, 잠깐 눈 붙이기 위해 온 이들뿐이다. 한국에서 휴게소를 두 번이나 들르는 버스를 이용해본 건 처음이다. 남쪽으로 내려와도 여전히 추웠지만 굳은 몸을 움직이고 싶어서 스트레칭을 했다. 아직 한 시간 반이 더 남았다. 그리고 청산도까지는 완도 도착 후 항구까지 걸어가서 한 시간짜리 배를 더 타야 도착이다. 분명 나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여행하고 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 일부러 내가 느리게 여행하는 건가 착각이 들기도 했다. 느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답변은 비슷하다. 아무것도 안 해도 돼서요… 생각할 시간이 생겨서요… 하루에 생각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봤다. 사실 나도 읽고 쓸 때나 잠깐 생각하지, 평상시엔 생각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이 많다. 내게 무언가를 읽고 쓰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되겠나? 출퇴근길 꽉 차는 지하철에서 무언갈 생각하는 이를 본 적이 있나? 점심시간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 이를 본 적이 있나?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면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 우리에겐 그런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세상에 대해서는 많이 아는데, 그걸 바라보는 눈은, 듣는 귀는, 생각하는 나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러니까, 이것은 느리게 살겠다고 다짐해온 나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다. 속도가 빨랐던 게 아니고 사유의 부족이다. 지나친 걸 아쉬워하는 게 아니고, 보고서도 흘려버린 걸 후회하는 것이다. 지루한 버스 안에서 생각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릇이 내가 아니면, 아무리 보고 듣고 훔쳐도 의미가 없다는걸.
5시간이 걸려 완도에 도착했다. 더 어릴 적엔 이보다 훨씬 긴 이동도 거뜬했는데, 한국이라 그런 건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이제는 5시간도 힘들다. 분명 빠르게 왔지만 그래도 느린 여행. 빠르게 가도 충분히 느린 여행. 청산도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나를 둘러싸던 벽은 이미 한 층 벗겨졌다. 한국에서는 쉽게 겪기 힘든 경험. 햇빛은 바다에 부딪혀 윤슬이 되었고 나는 그 앞에서 관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