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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윤 Nov 20. 2022

테라는 왜 망했을까? (7. 에필로그)

헤리티지가 암호화폐의 가치를 결정한다.

테라는 death spiral을 막지 못하고 결국 무너져 내렸다. 루나의 가격이 폭락함에 따라 네트워크의 보안성이 취약해지자 테라의 벨리데이터들은 테라의 블록 생성을 잠시 중단하고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렸다. 테라 측은 기존의 루나 및 테라를 루나 클래식(LUNC)과 UST 클래식(USTC)으로 바꾸고 테라 2라는 새로운 메인넷을 포크하여 운영하기로 결정했지만 아직까지 소생할 기미는 크게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루나의 가격이 폭락하고 트랜잭션 트래픽이 폭증하는 와중에도 테라의 메인넷은 정상적으로 동작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메인넷이 그 트래픽을 모두 소화했기 때문에 루나가 장애 없이 무한 발행되어 자산 가격의 하락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테라의 증명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왜 대다수의 사람들은 더 이상 테라의 미래를 믿지 않게 된 것일까?


대표적인 메인넷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만약 누군가가 UST가 다시 1달러에 페깅이 맞춰질 것을 믿는다면 당장 전 재산을 털고 빚을 내서 UST를 사는 것이 합리적이겠지만 이제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에 비트코인은 여전히 그 가치가 유지되거나 더 올라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많다. 비트코인은 2009년에 첫 번째 블록이 만들어졌고 꾸준히 업그레이드 되었지만 여전히 사용하기에 느리고 불편하다. 하지만 그런 비트코인의 시가 총액이 그 어떤 코인보다 높다. 심지어 비트코인과 코드베이스가 같은 비트코인 캐시, 비트코인 SV, 비트코인 골드, 비트코인 플래티넘, 비트코인 다이아몬드, 라이트코인과 도지코인 등 수많은 비트코인의 아류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은 오리지널 비트코인이다.


최초로 튜링-완전한 언어를 사용하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도입한 이더리움은 비탈릭 뷰테린이 2013년에 제안하여 2015년에 첫 번째 블록이 만들어졌다. 이더리움은 2017년 말, "크립토키티"라는 디앱의 선풍적인 인기로 인해 트랜잭션 처리 성능이 트래픽을 따라가지 못하는 확장성 문제를 겪게 되었다. 그 뒤로 상승장이 올 때마다 높은 수수료와 느린 속도로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지만 비트코인 다음으로 시가 총액이 높은 블록체인이다. 이더리움 클래식(ETC)을 비롯해서 폴리곤(Polygon), 바이낸스 스마트 체인(BNB), 팬텀(FTM), 아발란체(AVAX), 하모니(ONE), 클레이튼(Klay) 등 이더리움을 변형하고 발전시킨 수많은 메인넷들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은 비싸고 느린 오리지널 이더리움이다. 어째서 기술력이 아닌 오리지널리티가 화폐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일까?


내재 가치가 없는 화폐


화폐는 기본적으로 내재 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쓸모가 없어서 상대방이 그 화폐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거래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화폐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 즉 커뮤니티의 크기가 커질수록 화폐의 가치가 상승하고 또 굳건해진다. 고대 로마에서는 새로 만든 은화인 데나리온을 유통시키기 위해 군인들의 월급을 데나리온으로 지급하고 시민들이 세금을 데나리온으로 내도록 했다. 즉, 로마는 공권력을 이용해서 사람들이 강제로 데나리온을 보유하고 사용하도록 하여 커뮤니티의 크기를 빠르게 키웠던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협정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석유를 달러로 거래하도록 함으로써 달러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국가가 아닌 전 세계로 확장시켰다. 즉,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특정 화폐로만 거래하도록 강제함으로써 그 화폐의 가치를 인정하는 커뮤니티의 크기를 빠르게 키울 수 있다.


헤리티지가 암호화폐의 가치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강제력을 사용하지 않는 탈중앙화된 블록체인은 어떻게 화폐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정답은 커뮤니티가 블록체인을 발전시키고 함께 위기를 극복하며 끈끈하게 이어져 온 역사인 '헤리티지(heritage)'의 축적이다. 즉, 기술은 복제할 수 있어도 그 헤리티지까지 복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블록체인의 가치가 그것을 모방한 블록체인보다 더 큰 것이다. 헤리티지를 쌓기 위해서는 1) 기술적인 우월성, 2) 사람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네러티브, 3) 세상에 주고자 하는 선한 의지가 필요한데, 테라는 1,2를 만족시켰지만 3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테라는 왜 망했을까? (5)에서도 설명했듯이 앵커의 설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았고, 창업자인 도권은 이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무례한 태도를 보이며 감추고자 했다. 심지어 다른 블록체인과 프로젝트들을 무너트리고 왕좌를 차지하려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에 동조한 커뮤니티는 테라/루나에 투자하지 않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고 앵커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던 사람들을 무시하고 배척했다. 결국 탐욕에 사로잡힌 커뮤니티는 루나의 가격 하락과 함께 붕괴했다.


앵커의 일드 리저브가 어디서 나오냐는 질문에 패드립을 시전한 도권


현재 많은 메인넷들이 테라의 몰락을 목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헤리티지를 쌓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던 테라의 방정식이 문제를 푸는 정답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연한 얘기이지만) 메인넷의 성장은 커뮤니티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야 한다. 메인넷은 팬이 되어 준 커뮤니티를 기만하지 않아야 하며,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비전 통일(align)을 통해 건강한 커뮤니티가 조성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커뮤니티 또한 탐욕에 사로잡히기보다 메인넷의 비전을 지지 및 지원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감시하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렇듯 새로운 메인넷과 커뮤니티가 건강한 관계를 지속하여 헤리티지를 쌓아 나간다면 우리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세상을 바꿀 또 하나의 메인넷을 탄생시키는데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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