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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윤 Aug 13. 2022

다르지만 비슷한 스타트업과 대학원

문제를 찾고 해결하고 어필하라!

대학원을 나와 창업을 한지 벌써 1년이 지났다. 박사과정 학생으로서의 삶과 스타트업 대표로서의 삶은 정말 180도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비슷한 측면도 있다. 그게 무엇이냐면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란 거다.

이걸 모르고 시작한 덕분에 인고의 시간을 견뎌 내년 2월 박사 졸업을 앞두고 있고, 이제 스타트업이라는 멈출 수 없는 열차에 올라타서 또다시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려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스타트업 업계에 처음 들어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스타트업이 문제를 찾고 해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어..? 그거 내가 대학원에서 하던 건데?


그 이후로 여러 경로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게 되었고, 스타트업과 대학원에서 하는 일이 서로 결이 다를 뿐이지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원에서는

1) 문제(연구 주제)를 찾고

2) 해결(구현 및 실험)하고

3) 어필(논문 출판)하는 일을 반복한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이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1) 문제를 찾는 것이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문제는 너무 사소해서 해결할 가치가 없거나, 너무 어려워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해결할 수 있으면서 중요한 문제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결하고자 하는 분야의 논문들을 반복해서 찾아 읽는 것이다. 보통 연구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기존 연구의 단점을 파악했다면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드디어 문제를 찾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들뜨지만 불행하게도 누군가 먼저 생각해서 해결한 뒤 이미 논문까지 출판해 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면 그다음 논문을 읽고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분야의 지식이 축적되고, 결국 아무도 해결하지 않은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스타트업 역시 비슷하다.

1) 문제(pain point)를 찾고

2) 해결(서비스 출시)하고

3) 어필(IR 혹은 PR)하는 일을 반복하게 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에서는 문제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 대학원에서는 출판되어 있는 논문들을 찾아 읽으면 되지만 사람들의 pain point는 누가 친절하게 써놓지 않는다. 직접 경험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역시 쉽게 찾을 수 있는 문제는 너무 사소해서 해결할 가치가 없거나 너무 어려워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pain point를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경험해보고 깊이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문제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대학원이든 스타트업이든 2)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험난하긴 하지만 비교적 쉽다. 1) 문제를 찾는 과정은 기약이 없지만 2)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비용을 들이는 만큼 진척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이제 3) 어필을 해야 한다.


대학원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1) 문제를 찾는 것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3) 어필하는 것이었다. 좋은 문제를 찾고 잘 해결하였지만 논문을 잘 쓰지 못해서 출판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웃기게도 논문을 완성해서 출판하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내가 무슨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논문을 씀으로써 내가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가 명확히 정의되는 것이다.




나는 대학원에서 이더리움의 용량과 동기화 시간을 최적화하는 연구를 했고, 굉장히 좋은 실험 결과를 도출해 냈다. 하지만 2년 동안 논문이 통과되지 못했다. 물론 논문의 퀄리티가 낮은 게 원인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리뷰어들이 내 논문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관심이 없으니 논문을 제대로 읽지 않고 계속해서 틀린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블록체인이 중요하지 않은데 네 논문의 실험 결과가 좋은 게 무슨 소용이냐? 면서 블록체인의 중요성을 더 어필하라는 의견이 많았다. 논문을 제출하던 시기가 혹독한 크립토 윈터였던 2019~2020년이었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지는 않았지만 정말 서러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컴파운드(Compound)가 $COMP 토큰을 출시하고 스시스왑(SushiSwap)을 비롯한 각종 디파이(Decentralized Finance; DeFi) 서비스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가격이 하늘로 치솟던 2021년 봄에는 리뷰어들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What an important Problem!


크립토 썸머가 시작되자 리뷰어들의 호평을 받고 Top-Tier 학회에 논문이 억셉(accept)되었다. 크립토 썸머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연구실의 망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보통 논문을 처음 쓰면 자신의 논문에 대한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이 정도면 억셉 되겠지!" 하는 마음에 Top-Tier 학회에 논문을 제출하고 무수한 리젝(reject)을 받은 뒤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 나도 무수한 리젝을 받았지만 아직도 리젝을 받는 건 너무 쓰라리고 적응이 안 된다. 하지만 Top-Tier 학회에 논문을 제출하면 높은 퀄리티의 리뷰를 받을 수 있고, 그것들을 반영하여 다른 학회에 논문을 제출하면 이전보다는 좋은 리뷰를 받게 된다.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논문이 통과되는 것 같다.


나는 올해 투자자들 앞에서 피칭을 하는 IR(Investor Relations)만 수십 번을 하였는데, IR을 하는 과정은 리뷰어들에게 논문을 리뷰받는 과정과 정말 비슷했다. 관심이 없는 투자자는 엉뚱한 질문을 하였으며, 관심이 많은 투자자는 비록 투자가 성사되지 못하더라도 좋은 피드백들을 남겨주었다. 또한, 소위 Top-Tier VC라고 일컬어지는 곳에서 IR을 하면 높은 퀄리티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으며, 때로는 투심 보고서를 공유해줘서 다음 IR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VC로부터 거절을 당하는 경험도 여러 번 하게 되었는데, 논문이 리젝 되는 것처럼 매번 속이 쓰라리고 적응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Top-Tier 학회에는 누구나 논문을 제출할 수 있지만, Top-Tier VC는 아무나 만나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스타트업이 대학원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우리의 IR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시장 변화에 따라 급격한 피드백의 변화를 겪고 있다. 적응이 안 되고 속은 쓰리지만 다행히(?)도 익숙한 향기가 나는 것 같다. 전혀 다를 거라고 생각했던 박사과정과 스타트업이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기술 이외에 대학원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스타트업에서 써먹을 수 있어 인생을 헛살진 않았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견디고 버티다 보면 내 논문처럼 세상이 우리를 알아줄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이 땅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든 창업자들과 대학원생들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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