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 언니와 스뎅컵

by 전주영

연휴를 맞이하여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코로나 시대에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며 여행의 선택권이 좁아져서 그럴까. 비행기 표도, 렌터카도 전과 비교하면 값이 많이 올랐다. 그래, 수요가 많으니 가격이 치솟는 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여행을 준비하며 빈정 상했던 건 제주도에 부쩍 노키즈존이 많아졌다는 점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어느 정도 홍보가 되어있고 눈을 잡아당기는 예쁜 식당이나 카페는 예약해볼까 하면 어김없이 ‘노키즈존’이었다. 심지어 출입문에 아이를 받지 않는다는 문구를 써 붙여 놓은 곳도 발견했다. 한글을 읽는 어린이에 대한 배려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렇게 대놓고 혐오를 드러낼 정도로 어린이가 이 세상의 악인 것인가?

다 제쳐 두기로 했다. 제주에서 유명한 맛집은 안 가기로. 비행기 표와 호텔 그리고 렌터카만 예약하고 식사는 그때 떠오르는 것을 검색해 먹기로 했다. 노키즈존, 치사해서 나도 안 간다.

제주에 도착했다. 제주의 첫 번째 끼니를 해결할 곳으로는 해안가에 있는 전복솥밥집을 찾아갔다. 인스타 맛집이었을까. 식당에는 젊은 친구들이 많았고 그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휴대전화가 들려있었다.

통유리창 너머로 애월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아름다운 식당이었는데, 다들 음식 사진 찍느라 바빠 풍경은 뒷전으로 보는 듯했다. 식사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친구들 사이로 금방이라도 비가 내리칠 것 같은, 거센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덧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우리 가족은 남은 음식이 포장 가능하다면, 되도록 아이도 1인 1식으로 주문하는 편이다. 궁금한 메뉴는 한 번에 맛보고 싶은 마음인데, 이럴 때 나는 내 가족이 4인이라 흡족하다. 4명이면 웬만한 대표 메뉴는 다 주문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전복 솥밥과 성게 미역국, 장어구이 덮밥 그리고 옥돔구이를 주문했다. 바야흐로 소셜 미디어 시대라 그럴까, 사진 찍기 좋게 음식이 쟁반에 오밀조밀 예쁘게 담겨 나왔다. 요리는 눈으로 먼저 먹는다고 했던가. 눈앞에 멋지게 차려진 한 상에 내 기대는 한껏 부풀었다.

전복과 톳이 한데 어우러져 맛깔나 보이던 솥밥을 한 숟가락 듬뿍 떠서 입에 넣고 난 후 이내 나는 슬퍼지고 말았다. 전복내장으로 밑간을 했을 거라 예상했던 솥밥은 우엉으로 색을 냈고, 단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나로서는 밥에서 단맛이 강하게 느껴졌다.

우엉조림이 전복과 잘 어울리는 궁합이었나? 이건 제대로 검색을 안 한 내 잘못이다. 첫 번째 식사부터 고달파졌다. 달고 짠 관광지 음식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숙소 근처에서 간이 세지 않은 음식을 찾다 저녁은 귤밭 옆에 있다는 솥뚜껑 돼지 고깃집으로 결정했다. 저녁까지 단 음식을 먹을 수는 없었다. 양념하지 않은 고기라면 실패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다행히도 신선한 고기는 즐거운 식사를 도와주었고, 어린이 손님을 위한 식기와 수저가 준비되어 있어 아이들도 불편함 없이 저녁을 먹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상냥하게 말을 건네주시는 점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친절함에 감동한 나는 '키즈 프렌들리'한 식당은 꼭 성공하길 바라면서 인터넷에 정성 들여 후기까지 남겼다. 텐트를 치고 귤밭을 배경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서울과 다른 차별점이었기도 했고. 해가 질 노을 녘, 공기 좋은 제주에서 가족과 둘러앉아 귤밭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식사할 수 있어 감사했다.

다음 날 아침, 침대에 누워 햇살이 반짝이는 제주의 바다를 바라보며 아침 식사를 고민하던 중 나는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여행 와서도 끼니 걱정을 해야 하다니. 단 음식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미리 식당 선정에 시간과 정성을 들였어야 했는데. 자신의 성향을 알면서도 대책 없이 날아오다니. 미련한 인간이다.

풍성한 먹거리가 가득한 제주에서 귀차니즘으로 인해 룸서비스와 배달 앱으로 끼니를 때우던 중 표선 바다를 구경하러 숙소를 나섰다. 먼 길 나선 김에 성산일출봉 근처에서 갈치조림을 먹기로 했다. 빵과 치킨으로 얼룩진 미끈거리는 목구멍을 고춧가루와 마늘이 잔뜩 들어간 얼큰한 음식으로 씻어내고 싶었다.


갈치조림 식당을 검색하며 우선순위로 두었던 점으론 '1인이 가더라도 판매하는 곳'이었다. 갈치조림은 2인분 이상 주문해야 하는 식당이 많아, 혼자 먹기엔 어려운 음식이다. 갈치 맛이야 비슷할 테니, 소수를 위한 배려를 하는 식당에 가고 싶었다. 이전에 관광지 식당에서 5만 원짜리 통갈치 구이를 시켰더니, 그릇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말라비틀어진 작은 갈치 4조각이 나와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함도 있었고, 노키즈존이 부쩍 늘어난 데에 대한 소심한 복수도 있었다. 차별하지 않는 곳에서 먹는 것으로 조용히 응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수의 입맛을 겨눠야 했던 갈치조림과 밑반찬은 달았고, 맛이 나쁜 건 아니었지만 내게는 만족스럽진 않았다.

나는 떡볶이를 좋아한다. 새로운 떡볶이집을 발견하면 이 집은 어떤 떡을 쓰는지, 양념은 어떤지 직접 맛보고 싶은 욕구가 깊은 뱃속에서부터 꿈틀거린다. 갈치조림 먹으러 가는 길에 조그마한 분식집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 달큰한 갈치조림을 배불리 먹지 않은 데엔 저녁을 만회할 작은 보험 같은 분식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화선이네 분식은 아담했다. 늦은 저녁이어서 그랬을까. 내부엔 손님이 없었는데, 전등은 지나치게 환해서 적막함이 돋보인 작은 분식집이었다. 텅 빈 가게가 주는 고요함은 아쉬움이 남았던 저녁을 떡볶이로 만회하려던 내 마음을 주춤거리게 했다. 고요함도 고요함이지만, 떡볶이가 먹음직스러운 생김새가 아니었다. 어라, 여기 맛없는 집인가?

철판에 담긴 떡볶이는 한눈에 보기에도 만든 지 시간이 좀 되어 보였다. 떡볶이의 떡은 밀가루 떡인데, 쌀 떡볶이처럼 약간 불어있어 내가 좋아하는 떡의 식감이 아닌 것처럼 보였고, 양념은 무엇인가 잔뜩 들어간 모양이었다. 부산의 가래떡 떡볶이처럼 화려한 새빨간 색이 아닌 많은 양념이 섞인 듯한 둔탁한 색감이었다. 그리고 떡에 비해 양념이 지나치게 많았다.

살까 말까 약간 고민했지만, 이미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고, 세상에 똑같은 떡볶이 맛이란 없다. 내게는 새로운 분식집을 접하고 색다른 떡볶이 맛을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니 일단 1인분 주문했다. 작은 가게라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았다. 불안함이 엄습했다. 계좌 이체는 불편하다고 생각했지만 여긴… 작은 섬이니까….

기다리는 동안 어묵 국물을 맛봐야지. 어묵은 떡볶이와 더불어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포장해서 서귀포에 있는 호텔까지 가지고 가기엔 식을 것 같기도 해서, 국물 맛부터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맛있으면 이것도 포장하는 거다. 떡볶이의 실패를 대비해 순대도 살까 고민하며 어묵 국물을 마시려는데, 종이컵이 보이지 않아 여쭸다. 그랬더니 어묵 앞에 놓여있던 작은 스뎅컵을 내어주신다. 간장 종지인 줄 알았는데, 제주에서는 어묵 국물을 이런 컵에 마시는 건가?

나는 앙증맞은 컵과 커트러리를 보면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이다. 앙증맞은 기준이 모호한데, 비싸고 유명한 브랜드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작고 귀여우며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이 끌리는 편이다. 그 스뎅컵이 딱 그랬다. 태어나서 처음 본 생김새의 컵. 나도 모르게 순간 오버했다. 낯선 장소에서 취향에 맞는 앙증맞은 컵을 만나 신났고, 사장님 또한 그 귀여움을 아는 분이라 생각하니 내적 친밀감이 느껴졌으며, 무엇보다 갈치조림 먹으면서 제주 막걸리 한 잔을 했던 터라… 나도 모르게 그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어머!! 컵이 너어어무 귀여워요. 제주에서는 이런 컵을 쓰나 봐요?”

살짝 들뜬 목소리가 부담스러웠을 법도 하지만, 인자한 사장님께선 한 번 쓰고 버리는 종이컵보다 뜨거운 물에 푹푹 삶을 수 있는 스뎅컵의 여러 장점을 설명하며, 이제는 이런 컵을 쉽게 구할 수 없다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뒷모습에 환한 빛이 비치며, 그녀가 내게 말했다.


“하나 가져가요. 그리고 화선이네 분식집 언니가 줬다고 말해요.”

어머나. 세상에. 넘쳐나는 온갖 자랑이 마음을 시끄럽게 하여 비활성화한 인스타그램을 당장이라도 켜고 싶게 만든 한 마디였다. 소비재가 우선이 되는 상황을 왕왕 목도하며 허상일 뿐인 온라인 세상보다 스스로의 내적 에너지를 찾겠다며 인스타그램을 닫아두었건만, 이런 순간에는 어김없이 인스타그램이 제일 먼저 떠오르다니. 나란 사람도 별수 없구나. 아, 인간의 간사함이여.


어떤 이가 보기엔 초라해 보일 이 스뎅컵은 값비싸진 않겠지만, 그 순간 내가 받은 감동은 셈을 매길 수 없었다. 이것이 타지에서 느낄 수 있는 여행의 매력인가? 어째서 낯선 이에게 구하기 힘든 희귀 아이템을 주는 걸까? 나는 겨우 3천 원어치 떡볶이를 산 사람일 뿐인데?

뜻밖의 온정에 감사의 인사를 두 번, 세 번 전하고 떡볶이 값을 치르기 위해 카카오뱅크를 열었다. 계좌번호 입력하고 예금주를 확인하는 순간, ‘전미자’? 예금주 성함이 전미자 님? 맞나요? 여쭙고 나도 모르게 이야기를 덧붙였다.


- 저도 전 씨예요. 전주영.

평소엔 같은 성을 쓰는 사람을 봐도 이런 말을 덧붙이진 않는데. 컵을 선물 받고 들뜨긴 했나 보다. 순간 눈이 동그래진 사장님.


- 전 씨? 나는 온전할 전인데….

- 어머! 저도 그래요. 온전할 전!

- 나는 본관이 천안인데….

- 저도요. 온전할 전에 천안 전 씨예요!

- 동생!


같은 성 씨에 한문도, 본관도 똑같은 사람을 처음 만나봤지만, 이게 손을 덥석 잡을 만큼 놀랄 일일까? 조금 전까지 낯선 손님이었던 나를, 미자 언니는 내 손을 잡으며 반가워 어쩔 줄 몰라했다.

미자 언니는 20년 전에 육지에서 섬으로 건너왔단다. 제주 토박이는 아니셨구나. 그녀는 어쩌다 이 섬까지 그리고 성산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타지에서 만난 핏줄처럼 느껴졌을까. 나는 어느새 미자 언니의 동생이 되었고, 미자 언니는 내가 이체한 떡볶이 값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동생에게 밥 한 끼라도 먹여 보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함이 안타까웠던 그녀는 차마 빈손으로는 보낼 수 없어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하고 가게 뒤편의 창고로 달려갔다. 돌아온 그녀의 양손엔 레드향과 한라봉이 가득 들려있었다.

그녀는 내게 만감류를 건네며 무슨 일이 생기면 화선이네 분식 간판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하면 자신의 휴대전화로 연결이 되니 연락하라고 귀띔해주셨다.

떡볶이 3천 원어치 사고 덤으로 스뎅컵과 제주의 정이 담긴 만감류를 안아 들고 호텔로 돌아오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나는 미자 언니가 준 스뎅컵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관광지 음식에 물렸던 울적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여행지에서의 온정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있던 미끈거림을 단숨에 사라지게 한 것이다. 그 밤엔 한 번 더 언니네 가게에 들러,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서로의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쯤에서 미자 언니네 떡볶이 맛을 궁금할 누군가를 위해 짧게나마 떡볶이 평을 해보자면…. 언니네 떡볶이는 양이 푸짐하다. 떡에 비해 양념이 꽤 많았는데, 자극적이지 않았다. 어린이가 먹을 수 있는 정도의 맵기였다. 엄마표 떡볶이도 아니면서 당근도 들어 있었다. (구좌 당근인가?) 꾸덕꾸덕하지 않고, 입에 착 달라붙는 맵싸한 맛이 없는 대신 이상하게 물리지 않는 맛이었다.

매일 스뎅컵을 뜨거운 물에 삶아 소독해 위생을, 손님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그녀의 푸근한 마음이 떡볶이에도 묻어있는 듯했다. 낯선 섬에서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매일 손님을 기다릴지 문득 궁금해진다. 다음에 만나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미자 언니, 봄이 다가옵니다.

제주는 어떤 모습인가요? 성산의 마을은 오늘도 평안했나요?

오늘 서울은 햇빛 사이로 싸락눈이 흩날렸어요.

거센 싸락눈을 보면 날이 흐릴 법도 한데, 이상하게 햇살이 반짝거리며 환했습니다.

글을 쓰다 창을 바라보면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는데,

잠깐 딴짓을 하면 햇살만 남아있어 눈과 숨바꼭질하는 기분이었지요.


겨울의 끝자락에서 겨울과 봄이 꼬리잡기 하는 걸까요.

차가움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날에는 잘 지내냐고 누군가에게 안부를 물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어색하지만 이렇게 펜을 듭니다.

우리는 아주 잠깐 만났죠. 여행지에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인연이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맞잡은 언니의 손에서는 타지 생활의 외로움이 슬쩍 느껴졌어요.

성과 본이 같은 사람은 수없이 많을테고 우리 역시 아무런 관계가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언젠가는 따뜻한 음식을 서로의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주에, 성산에 가면 꼭 다시 들를게요.

그때까지 부디 건강히, 즐겁게 계시길 바랍니다.


무탈한 봄을 기다리며,

서울에서, 전주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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