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아니오'라고 말하는 대화: 조직의 집중력을 지키는 법
이전 챕터(22장)에서 우리는 시장 침체기라는 격변을 맞아 '성장'에서 '생존'으로 회사의 나침반을 재설정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전략은 선언하는 순간부터 사방에서 도전을 받는다. '이 기능만 추가해 달라'는 오랜 고객, '새로운 기회를 검토해 보라'는 투자자, '이 프로젝트만은 살려 달라'는 팀원까지. 창업가는 이제 '모든 것을 하던' 평화시의 리더가 아니라, '단 하나만 지키는' 전시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유일한 방법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회사의 런웨이가 6개월 남은 상황. 당신은 '수익성'에만 집중하기로 전사 선언을 했다. 바로 그때, 가장 오래된 핵심 고객사가 '수익성은 낮지만 리소스가 많이 드는' 신규 기능 개발을 간절히 요청한다. "이것만 해주면 재계약하겠다"는 말에 당신의 머릿속은 하얘진다. 이 중요한 고객을 실망시키고, 안 그래도 불안한 팀에게 'No'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마지막 남은 동아줄을 스스로 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창업가의 본능은 기회를 잡고(Saying Yes),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은 당신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격변기 속에서 팀원들과 고객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좋은 리더'가 되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을 때 따라올 갈등을 피하고 싶은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격변기(Part 4)에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자살행위다. 당신의 그 '인간적인 Yes' 한 번이, [챕터 22. 침체기]에서 애써 확보하려 했던 '런웨이'를 한 달씩 갉아먹는다. 개발팀의 리소스는 다시 분산되고, '생존'이라는 핵심 전략은 공허한 구호가 된다. 이 대화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선택이 아니다. 이것은 회사의 가장 희소한 자원인 '집중력'을 보호하고, 단 하나의 생존 전략을 지켜내기 위한 창업가의 가장 고독하고 중요한 의무다.
"그래도 이 고객은 특별하잖아. 이번 한 번만 예외를 두자.", "우리 팀 사기를 위해 이 프로젝트는 남겨두자." 창업가는 격변기 속에서도 '평화시'의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새로운 전략(생존)과 과거의 약속(성장) 사이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모든 것을 지키려다,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는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전략의 파산이라는 착각은 '수천 번의 작은 Yes로 인한 죽음(Death by a thousand Yes-es)'으로 이어진다. 창업가가 명확히 'No'라고 선언하지 않으면, 조직은 '생존'이라는 새로운 깃발과 '과거의 모든 일'이라는 낡은 깃발 사이에 표류한다. 팀원들은 무엇이 진짜 우선순위인지 몰라 혼란에 빠지고, 리소스는 사방으로 흩어진다. 결국, [챕터 22. 침체기]에서 선언했던 '생존 전략'은 실행되지 못하고 종이 위에서 파산한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치르는 가장 값비싼 대가다. 진짜 비용은 낭비된 개발 시간이 아니다.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우리 리더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명확한 방향을 잃은 조직에서 팀원들의 에너지는 고갈되고, 회사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집중력'은 공기 중으로 증발해 버린다.
이 대화의 목표는 '거절' 자체가 아니다. "회사의 생존이라는,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Yes'를 지키기 위해, 그 외의 모든 것에 'No'라고 말하는 것이다." 격변기의 'No'는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회사의 가장 중요한 약속(생존)을 지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No'는 감정적인 거부가 아닌, 전략적인 '보호'여야 한다.
상대방의 요청을 즉각적으로 거절하지 않는다. 먼저 그 요청이 왜 그들에게 중요한지 진심으로 경청하고 공감한다.
예: "그 기능이 대표님께 얼마나 중요한지, 지난 2년간의 파트너십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챕터 22. 침체기]에서 정렬한 회사의 '유일한 목표(생존)'를 명확히 공유한다.
예: "아시다시피, 저희는 지금 시장 침체 속에서 '런웨이 확보'라는 단 하나의 목표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두 개의 'Yes'(상대의 요청 vs 회사의 생존)가 충돌함을 설명하고, 왜 'Big Yes'를 지키기 위해 상대의 요청을 거절해야 하는지 '전략적'으로 설명한다.
예: "따라서 이 기능을 개발하는 것은, 저희의 생존이라는 'Big Yes'에 반하는 결정입니다. 고통스럽지만 '지금은 아니오'라고 말씀드려야 합니다."
'No'가 감정적인 반응이나 개인적인 변덕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 이것은 회사의 생존 전략을 지키기 위한 논리적이고 의도적인 '전략적 선택'임을 강조한다.
'No의' 목적이 상대방을 실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가장 희소한 자원인 '집중력'을 보호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 집중력이 모두를 살리는 길임을 설득한다.
'영원히 안 된다(No, ever)'는 관계의 단절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No, now)'는 우선순위의 문제임을 설명하여, 미래의 관계 가능성을 열어두는 기술이다.
✓ 피해야 할 표현 (모호함과 책임 전가) :
- "한번... 검토해 보겠습니다." (거절할 용기가 없어 희망 고문하는 최악의 말)
- "제가 하고 싶은데, 투자자들이 반대해서요." (리더십을 포기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말)
-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네요." (공감 없는 즉각적인 묵살)
✓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공감 + 원칙 + 대안) :
+ (고객에게) "대표님의 요청에 깊이 공감합니다(공감). 하지만 저희는 현재 '수익성'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Big Yes). 따라서 이 요청은 '지금은' 수용하기 어렵습니다(No). 대신, 현재 저희가 제공 가능한 A안은 어떠신가요?(대안)"
+(팀에게) "C 프로젝트가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지 압니다(공감). 하지만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런웨이 3개월 확보'입니다(Big Yes). 이 프로젝트는 그 목표에 직접 기여하지 않으므로 '아니오'라고 말해야 합니다(No)."
소프트웨어 회사 베이스캠프(Basecamp)의 창업자 제이슨 프리드(Jason Fried)와 DHH(데이비드 하이네마이어 핸슨)는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그들의 핵심 경영 철학으로 삼았다. 그들은 수십 년간 제품을 운영하며 수많은 고객과 잠재 투자자들로부터 '이 기능만 추가해 달라', '저 기능도 있으면 좋겠다'는 달콤한 유혹과 강력한 압박을 받아왔다. 대부분의 창업가는 고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 '쉬운 Yes'의 함정에 빠진다. 하지만 그들은 이 모든 요청에 의도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아니오'라고 말했다.
그들은 'No'를 거절이나 무시의 언어가 아닌, '핵심 가치를 지키는 보호의 언어'로 재정의했다. 그들의 'Big Yes', 즉 그들이 지켜야 할 단 하나의 가치는 바로 제품의 '단순함(Simplicity)'이었다. 그들은 고객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았다. "우리는 그 기능이 나쁘거나 당신의 의견이 틀려서 'No'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Yes'라고 말함으로써 이 제품을 점점 더 복잡하게 만들고, 결국 당신이 처음에 이 제품을 사랑했던 이유(단순함)를 배신하게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 철학은 특히 [챕터 22]에서 다룬 시장 침체기와 같은 '격변기'에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고객의 모든 요청에 'Yes'라고 답하는 것은 '런웨이 소진'과 '전략의 파산'을 의미한다. 베이스캠프의 'No'는 "우리는 생존과 직결된 이 '단 하나의 Yes(단순함과 효율성)'를 지키기 위해, 그 외의 모든 '좋은 아이디어'를 거절한다"는 '전시 CEO'의 태도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들의 명확한 'No'가 있었기에, 베이스캠프는 수십 년간 집중력을 잃지 않고 강력한 'Yes'(그들의 핵심 제품)를 지켜낼 수 있었다.
"당신의 'No'가 명확할수록, 조직의 'Yes'는 더 강력해진다."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당신의 전략적인 'No'는 조직의 집중력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다.
[ ] 나는 내가 지켜야 할 회사의 가장 중요한 'Big Yes(생존, 런웨이 확보 등)'가 명확한가?
[ ] 나는 상대방의 요청을 거절하기 전에,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경청하고 공감했는가?
[ ] 나는 왜 'No'라고 말해야 하는지, 나의 'Big Yes'와 연결하여 논리적으로 설명했는가?
[ ] 나는 '영원히 안 된다'가 아닌, '지금은 안 된다(Not Now)'는 우선순위의 문제로 설명했는가?
[ ] (가능하다면) 거절과 동시에, 내가 지금 해줄 수 있는 작은 '대안'을 제시했는가?
✓ (해외 도서) 그렉 맥커운(Greg McKeown), 『에센셜리즘 (Essentialism)』: '아니오'라고 말하는 기술과 집중력의 중요성에 대한 최고의 바이블.
✓ (해외 도서) 제이슨 프리드, DHH, 『Rework (리워크)』: 베이스캠프 창업자들이 어떻게 'No'를 통해 제품과 문화를 지키는지 보여준다.
✓ (해외 아티클) "The Art of Saying No" (Harvard Business Review): 전략적으로 '아니오'라고 말하는 다양한 심리적, 언어적 기술을 다룬다.
우리는 시장 침체기에 대응하고(22장), 불필요한 요청에 '아니오'라고 말하며(23장) 조직의 집중력을 지켜냈다. 하지만 이 격변기 속에서 가장 지치는 것은 팀원들이 아니라 창업가 자신이다. 이 모든 고통스러운 대화를 홀로 감당하며 한계에 부딪혔을 때, 당신은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음 챕터에서는 "이그제큐티브 코치 온보딩: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통해, 창업가가 자신의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대화를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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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brunch.co.kr/brunchbook/leader-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