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신이었던 의사, 왜 바이오 창업에선 미아가 되나

A sudden thought(갑자기 든 생각)

by jaha Kim

『 왜 능력자는 창업에 실패하는가?』


08. 바이오 창업의 비극: 최고의 의사이기 때문에 창업에 실패하는 경우



의학 연구실의 신(God)이 마주하는 첫 번째 신기루


바이오 창업 전선에 나선 최고의 의사와 과학자들은 대개 '경로 의존성'이라는 강력한 심리적 관성에 갇혀 있습니다. 병원 진료실이나 대학 연구실에서 그들은 절대적인 권위자입니다. 레지던트와 간호사, 연구원들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 움직이고, 전 세계가 구독하는 <Nature>나 <Lancet> 같은 학술지가 자신의 논문에 ‘진실’이라는 직인을 찍어줍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나는 가장 똑똑하고, 내가 증명한 것은 절대적 진리다"라는 엘리트 의식은 비즈니스 정글로 들어서는 순간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수십 년간 암세포의 특정 기전을 연구해 온 유수의 대학병원 교수님이 창업 후 IR(투자 유치) 자리에 나옵니다. 그는 60분의 발표 시간 중 50분을 단백질 구조와 기전(MoA)의 ‘우아함’을 설명하는 데 할애합니다. 데이터는 완벽하고 논문의 임팩트 팩터(IF)는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하지만 심사역이 "그래서 이 약의 최종 지불자(Payer)는 누구이며, 기존 표준 치료제(SoC) 대비 경제적 이득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순간 분위기는 차갑게 식습니다. 교수님은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며 대답합니다. "이 기전은 세계 최초이고 데이터가 이렇게 완벽한데, 그걸 고민해야 합니까? 약이 나오면 제약사들이 줄을 설 텐데요."


이것이 바로 '만들면 올 것이다(Build it and they will come)'라는 논문의 신화입니다. 학문적 세계에서는 '최초'와 '발견'이 최고의 가치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효용'과 '대체 가능성'이 지상 과제입니다. 예를 들어, 기존 치료제보다 효과가 겨우 5% 좋으면서 가격은 10배 비싼 신약은 과학적으로는 '진보'일지 몰라도 비즈니스적으로는 '재앙'입니다.


최고의 의사들이 겪는 첫 번째 신기루는 'Science(과학)'와 'Business(사업)'를 동일시하는 데서 기인합니다. 과학은 '진리'를 찾는 과정이지만, 사업은 그 진리를 '수익 구조'라는 그릇에 담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설계의 영역입니다. 아무리 우아한 기술이라도 자본 효율성과 시장의 니즈라는 필터를 통과하지 못하면, 그것은 환자를 살리는 약이 아니라 연구실 구석에 박힌 '가장 비싼 논문'으로 남게 될 뿐입니다.




학문의 미덕이 시장의 언어와 충돌할 때 발생하는 비극


학문의 세계에서 칭송받던 고결한 자질들이 비즈니스라는 거친 정글에 들어서는 순간, 회사의 숨통을 조이는 치명적인 독으로 변하는 역설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과학자의 뇌'와 '사업가의 뇌'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라 부릅니다. 이 충돌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위대한 발견이라도 시장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연구실의 서랍 속에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첫 번째 충돌은 '실패를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과학자에게 실패는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소중한 데이터입니다. 99번의 가설이 틀렸음을 입증하더라도 단 한 번의 진실을 찾아낸다면 그는 학계의 추앙을 받는 승리자가 됩니다. 그러나 사업가의 현실은 이보다 훨씬 냉혹합니다. 자본의 효율성을 생명으로 하는 바이오 경영자의 시각은 달라야 합니다. 바이오에서 '빠른 실패'는 결코 '빠른 폐업'이 아닙니다. 오히려 안 될 후보물질을 가장 적은 비용이 들었을 때 가차 없이 솎아내어(Quick Kill) 소중한 자본을 지켜내는 고도의 경영 능력입니다.


두 번째 비극은 '조금 더 나은(Better)' 기술을 '완벽하게(Perfection)' 만드는 데 자원을 탕진한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완벽'에 매몰되어 '압도적 차별화'의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0.001%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다시 1년의 시간을 쏟아붓는 완벽주의는 과학적으로는 숭고할지 모르나,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경쟁사에게 골든타임을 내어주는 치명적인 지연을 초래할 뿐입니다. 특히 이러한 집착이 단순히 기존 기술보다 조금 더 나은 'Better' 수준의 데이터를 다듬는 데 쓰인다면 비극은 더욱 깊어집니다. 보수적인 의료 시장은 20% 더 우수한 '완벽한 아류'에게는 결코 쉽게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원을 집중해야 할 곳은 사소한 수치의 최적화가 아니라, 기존의 치료 패러다임을 완전히 파괴하는 '유일한(Only) 기전'이나 압도적인 경제적 가치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시장은 모든 것이 갖춰진 최후의 완벽한 제품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가장 유일한 솔루션에 먼저 반응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비극을 완성하는 것은 '확증 편향의 늪'입니다. 자신이 발견한 기술을 자식처럼 사랑한 나머지, 시장과 투자자가 보내는 냉정한 경고 신호를 "그들이 내 기술의 깊이를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외면합니다. 기술에 대한 지나친 애정은 객관적인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결국 회사를 '죽음의 계곡' 한복판에서 객사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됩니다.


결국, 학문의 미덕을 시장의 가치로 치환하기 위해서는 이 뼈아픈 충돌을 인정해야 합니다. 과학자의 자부심을 잠시 내려놓고 시장의 결핍을 바라볼 때, 당신의 위대한 진실은 비로소 세상을 치유하는 강력한 비즈니스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제이커브의 환상과 보험 수가(Payer)라는 실체


바이오 창업가들이 가장 많이 속는 지도가 바로 IT 식 '제이커브'입니다. 사용자가 늘면 가치가 우상향 하는 매끄러운 곡선은 바이오에 없습니다. 바이오는 매출 0원의 지루한 수평선을 그리다 임상 성공이나 기술이전(L/O) 같은 결정적 '마일스톤'에서만 가치가 수직 점프하는 '계단식 성장'의 세계입니다. 이 불연속적인 성장 구조를 견디게 하는 힘은 철저한 자본 관리입니다.


더불어 많은 창업가가 간과하는 것이 규제 기관(FDA)의 허가 이후입니다. 식약처나 FDA의 허가는 시장 진입의 '입장권'일 뿐입니다. 진짜 수익은 '누가 돈을 내줄 것인가(Payer)'에 달려 있습니다. 보험사나 심평원이 당신의 약에 '보험 수가(Reimbursement)'를 적절히 매겨주지 않는다면, 당신의 위대한 신약은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쓸모없는 화학 물질이 될 뿐입니다. 허가 로드맵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약가 전략'과 '경제성 데이터'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 생존 나침반: T-R-I-P 전략


연구실의 언어를 비즈니스의 언어로 통역하기 위해, IT 중심의 사업계획서(PSST: Problem Solution Scale-up Team) 방식을 버리고 생존 전략을 더 치밀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저희가 만든 바이오 창업 전용 생존전략인 'T-R-I-P'을 소개합니다.


T (Technology & Target):

단순히 '조금 더 나은(Better)' 데이터는 필요 없습니다. 기존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들을 위한 '유일한(Only)' 기전(MoA)이 무엇인지 증명해야 합니다. 시장이 겪고 있는 의학적 '고통(Unmet Needs)'의 핵심을 찌르는 타겟팅이 기술의 시작입니다.


R (Regulatory & Reimbursement):

규제는 극복할 대상이 아니라 제품의 스펙 그 자체입니다. 인허가 로드맵은 물론이고, 최종적으로 보험 수가를 받을 수 있는 전략을 초기 설계부터 반영해야 합니다. 규제 기관과 보험사는 당신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I (IP & Implementation):

마케팅 비용을 쓰는 대신 그 돈으로 '특허 장벽(IP)'을 높이십시오. 또한 가장 많은 기술이전이 결렬되는 지점인 'CMC(제조 공정)'에 집중해야 합니다. 500ml 비커의 성공이 5,000L 탱크에서도 똑같이 재현될 수 있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당신의 기술은 상품이 될 수 없습니다.


P (Pipeline & Partners):

모든 것을 다 잘하려 하지 마십시오. 내부 인력을 비대하게 키우는 대신, 검증된 CRO와 CDMO를 지휘하는 '가상 바이오텍' 모델이 자원 효율성의 극치입니다. 또한 투자금에만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현금을 벌어 R&D를 지탱하는 자생력을 갖추는 '하이브리드 전략'이 필요합니다.




가운을 벗고 경영자로 '탈피'할 때 환자는 살아난다


결국 바이오 창업의 성패는 리더의 정체성 전환에 달려 있습니다. 현미경을 보며 데이터의 완벽함에 집착하는 '최고의 의사'라는 옷을 과감히 벗으십시오. 대신 망원경을 들고 자원을 배분하며, 규제 기관과 보험사를 설득하고, 글로벌 파트너를 연결하는 '경영자'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리더가 기술이라는 자신의 자식에게 눈이 멀어 시장의 경고를 듣지 못하면, 그 회사는 리더라는 병목(Bottleneck)에 갇혀 질식하게 됩니다.


기술이전(L/O)이나 M&A는 당신의 꿈을 파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기술이 더 큰 자본과 시스템이라는 그릇을 만나 실제로 환자의 생명을 구하게 되는 '영광스러운 졸업'입니다.


바이오 창업가에게 생존은 곧 선(善)입니다. 당신이 경영자로서 살아남아 기술을 증명해 낼 때, 당신을 기다리는 수만 명의 환자에게는 비로소 내일이라는 희망이 생깁니다. 과학은 진실을 밝히지만, 당신의 비즈니스는 그 진실로 세상을 치유합니다. 이제 가운을 벗고, 경영자의 양복을 입고 정글의 법칙을 받아들이십시오.




의학은 생로병사의 진실을 밝히지만,
비즈니스는 그 진실이 세상에 도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듭니다.


당신의 위대한 기술이 연구실의 서랍 속에 갇히지 않게 하려면, 이제 가운을 벗고 경영자의 양복을 입으십시오. 탈피하지 못하는 뱀은 죽고, 진화하지 못하는 천재는 시장에서 도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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