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원장실을 찾아온 ‘작은 아씨들’

<정재호 원장의 수술 일기>




며칠 전에는 아주 즐거운 가족 다섯 분이 상담을 위해 한꺼번에 원장실을 찾아오셨다.

그중 막내 분은 미국에서 오셨는데 사각턱 수술, 이마 지방 이식과 눈매교정술을 동시에 했다. 눈은 서로 다른 쌍꺼풀 라인을 맞춰 대칭을 바로 잡고, 늘어진 눈썹의 피부를 제거하여 산뜻해 보이게 하는 수술이었다.


환자는 지금보다 좀 더 동안으로 보이기를 희망했다. 그를 위해 턱의 선을 좀 더 위로 올리는 안면 윤곽 수술을 원했다. 나는 원래 턱선이 날렵하고, 약간 옆얼굴이 길어 보이긴 하지만, 안젤리나 졸리 같은 턱선을 굳이 절골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환자가 원하는 수술을 무조건 해주기에 앞서 자신의 얼굴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성형외과 전문의의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로 의견을 나누느라 환자와의 상담은 제법 시간을 끌었다. 긴 상담 후에 적당한 정도의 절골로 턱 끝의 날카롭게 튀어나온 부분을 부드럽게 보이는 형태로 교정하는 것으로 수술은 결정되었다.  


수술은 감염의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우리 병원 4층의 무균 마취실에서 진행되었다. 안전한 수술을 위해서는 마취 시작부터 수술을 위한 소독제 도포, 장비의 위치와 배열 등을 가장 단순화시켜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술 팀의 위치와 협조, 조화이다. 수술방에서 함께 수술을 진행하는 집도의와 마취과 전문의, 간호사들은 마치 현악사중주의 연주자들 같다. 제1 바이올린 주자가 수술하는 의사, 마취 기계의 단조로운 ‘뚜뚜뚜···’ 소리를 유지시켜 주고 수술방의 안정감을 주는 마취과 선생님은 첼로 연주자인 셈이다. 수술할 때 제1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교대로 리드해 주는 수석 간호사는 제2 바이올린이고, 수술 기구와 재료를 박자에 어긋나지 않게 공급해 주고 적조함을 메꾸는 보조 간호사는 비올라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수술장 밖의 스태프도 약간의 긴장과 리듬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줘야 한다.


수술은 만족스럽게 끝났고, 함께 온 가족들이 전부 간단한 시술이나 수술을 받으셨다. 자매, 모녀, 사촌들의 화목함이 딱딱한 진료실에 무척이나 기분 좋은 공기를 가져다주었기에 즐겁고 고마웠다.
그분들을 보며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의 네 자매와 어머니가 떠올랐다.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마르셀이 바닷가에서 알베르텐 소녀 일행들이 흥겨워하는 모습들을 멀리 내다보던 장면이 소환되기도 했다. 나에게 진료와 수술은 문학이고 미술이고 음악이다. 내가 수술을 하는 것은 자연과학으로 문학을 하는 것이고, 이과적으로 미술을 구상하는 것이고, 과학적으로 음악의 하모니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술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의 심정으로 수술실로 들어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