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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Oct 05. 2024

자잘스토리 8 - 039 - 고구마 값으로 한 장  






1


오늘 어머니가 외출하셨다가 사촌 언니와 함께 들어오셨다.

작년에 언니가 가져다준 고구마가 맛있어서

어머니가 다시 구할 수 없느냐고 물어보셨나 보다.

언니가 그 고구마 10kg를 싣고 왔다.




2


아무리 친인척이라도, 단돈 10원이라도 정확해야 하는 걸

피차에 잘 아는 분들이다.

마침 아버지와 나는 거실에 있다가 두 분을 맞닥뜨렸는데

언니가 그 10kg 상자를 싣고 와서 계단까지 올라와 주시니

고맙고 미안하고 그러더라.

아무튼 어머니는 들어오시자 값을 치르셨다.

1상자에 3만 5천 원이라고 한다.

어머니 성정 상, 당장 주셔야 했기에 

작은 지갑에서 하도 여러 번 접어서

꼬깃꼬깃해진 지폐를 8장 펼쳐 겹쳐서 정리해

언니에게 건네주려니, 아버지가 농담으로,


"뭐 그리 여러 장 주오, 그냥 5만 원짜리 한 장 건네주소."


어머니는 정말 언니가 고마워서 그러고 싶으셨을지도.

하지만 언니와 나는 빵 터졌다.

집안 내력이 셈이 올바른 걸 좋아하는 걸 아는데,

1만 5천 원을 거저 얹어 준다고? 

농담이신 거였다. 아버지의 어조도 명백히 농담조 셨다.


어머니는 내년에도 부탁한다고 하셨었는데,

언니는 그 말씀에 착안하셔서,


"내년에는 이모부한테 5만 원 '한 장' 달라고 해야겠다."


...라고 하셨는데 역시 명백한 농담조.

아버지가 받으셨다.


"나는 주로 카드 결제를 하지."


그러자 언니가 또 받으셨다. 작게 읊조리셨는데,


"카드 단말기 가져올게요."


이쯤 되니 나는 언니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흥미진진했지만 농담 릴레이는 거기서 끊겼다.

나중에 어머니, 아버지께 여쭤보니 '단말기' 이야기는 못 들으셨다고 한다.

TV 소리를 좀 크게 해놨더니 

언니의 읊조리는 말소리가 잘 안 들리셨나 보다.

나만 웃었다.




3


아무튼 나는 언니를 그냥 보낼 수 없어서 

'필살의 간식' 판나코타를 언니에게 내어드렸는데,

언니의 입맛에 맞는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나는 뭔가 드렸다는 사실에 마음이 좀 편했다.

언니가 부모님에게 잘 해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4


언니와 나이차도 좀 있고,

나는 약간의 어른 공포증이 있어서, 

언니처럼 성숙한 어른이 좀 어렵다.

부모님에게 잘 해주시면,

그게 나에게 친절하신 거나 진배없지 않나.

일단 받으며 살겠다.

언젠가 내가 드릴 수 있는 날도 오길 바라본다.




5


근데, 원두를 모카팟에 '찐'하게 내려서 

뜨. 아를 만들어 무려 800ml를 마시는데도,

자꾸 잠이 잘 온다.

아직 겨울잠을 자기엔 이른데..., 왜지?




6


아침에 커피 마시고 잠들어서

일어난 뒤 다시 또 아메리카노 만들어서

지금 마시고 있는 상황이다.

이거 마시고 또 잠들면,

난... 언제 깨어 있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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