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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키바 문정엽 Feb 06. 2024

인생은 접힌 커튼이다

삶에 숨어 있는 경이로움

글을 익히고 학생으로 살던 어느 시기에(아마 고등학교 2학년쯤으로 기억한다)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추측하건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이어리의 첫 장은 기대와 흥분으로 글을 썼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그랬으니까. 다이어리의 빈 여백을 보며 사각사각 펜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좋은 성적을 얻고, 운동을 꾸준히 하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겠다는 결심을 썼던 기억이 남아 있다.


내가 기대와 흥분을 느낀 이유는 시간과 삶에 대한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시간은 충분했고,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은 넓은 무대였다. 나는 성취와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컸고 어떤 어려움이나 제약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니어가 되면서부터 삶과 시간에 대한 감각이 달라졌다. 아직도 삶은 기회와 가능성이 있는 무대라고 생각하지만 어려움과 제약을 함께 생각하게 된다. "무엇을 얻을까?"라고 말하는 친구 옆에 "무엇을 잃을까"라는 친구가 함께 있다.


삶은 접힌 커튼이다. 내가 마주하는 삶, 경험하는 삶은 내게는 늘 삶 전체지만, 그 전체는 내가 느끼고 인식하고 경험하는 삶으로 해석을 거친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나온 삶의 발자취를 생각하면서 내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삶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접힌 커튼처럼 내 앞에 펼쳐져 있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삶 말이다.  


어린 시절 함께 공부하고 뛰놀던 오랜 친구를 만나면 그에게서 내가 크게 느끼지 못했던 성격과 성향을 발견한다. 그리고 친구가 그의 삶을 살아온 과정에 놀라움을 느끼기도 한다. 돌이켜 보니 그 친구는 그의 삶을 그렇게 살아간 이유가 있었다. 나는 당시에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제 나는 내가 만나고 교제했던 그 친구를 다르게 경험한다.  


접힌 커튼


인생에서 접힌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펼쳐진 부분은 내가 해석하고 경험한 삶이고 접힌 부분은 발견하지 못했던 삶이다.

이 부분은 프로스트가 말하는 가보지 않은 길은 아니다. 내가 걸어가고 마주했던 삶이지만 미처 느끼지 못했고 그러기에 경험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나는 만났던 사람들과 무엇을 나누었던가? 함께 성장하고 배웠던 친구들은 다양한 꿈과 개성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냈던 친구들도 있었고 조용히 우정을 나눴던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모든 친구들이 꿈과 기대가 있었음을, 그리고 소중한 삶의 목표를 생각했었음을 새삼스럽게 발견한다.  


내가 일했던 일터는 나에게 매우 중요한 삶의 영역이었다. 내가 한 사람의 책임 있는 사회인으로서 성장하는 영역이었고, 공동의 노력을 통해 가치를 생산하는 영역이었다. 보람과 지위를 얻는 곳이었고 내 재능을 더해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영역이었다. 일터에서 나는 근로자로, 동료로, 부하사원으로, 관리자로 사람들과 교제했고, 함께 목표를 위해 일하고 분투하고 때로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경험을 했다.

일터에서 나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는가? 내가 성취한 모든 것들은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던가? 나는 무엇을 경험하고 나누었는가? 때로 성취감을 느꼈고 한 조직의 구성원으로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또한 갈등과 어려움도 있었는데 나는 어떻게 이를 받아들이고 해결하려고 했던가?  많은 시간을 보낸 일터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얻었고 또 얻으려고 했던가?


나는 사람들에 대해, 일터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거나 간과했던 여러 부분이 있음을 발견한다. 또한 내가 성장하고 성취하는 경험이 있었음을, 그 과정은 나의 노력만이 아니라 함께 일한 사람들과 함께 한 경험이었음을 깊게 느낀다. 이것은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지만 사업계획서와 성과보고서와 연봉과 성과급으로 일터를 경험했음을 발견한다.


삶에 접힌 부분이 있다는 발견은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느끼게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큰 실망까지는 아니다.

삶에 온전히 몰입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고, 나는 그래도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사람들과 교류하고 또 일터에서 일했으니까.


어쩌면 삶의 전체를 온전하게 경험하는 일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존재했던 시간과 상황 속에서 나는 그때의 나로서 이해하고 판단하고, 가치대로 행동할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삶에 온전하게 몰입하는 것이 좋은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떠한 선입견 없이 그때그때 마주하는 사람과 상황을 그대로 느끼는 몰입말이다.

어린아이는 자주 '와우'라는 말을 한다. 그것은 온전한 몰입을 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자연을 마주했을 때, 푸른 하늘과 밝게 빛나는 풀과,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가는 새를 보며 '우와'하고 말할 수 있는 경이로움 말이다.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능력면에서 어린아이는 어른을 뛰어넘는다.


나는 다가오는 삶에서 이 경이로움을 다시 느끼고 싶다.

어른에게는 점점 더 삶이 주는 경이로움을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너무 익숙해졌고 너무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빛과 함께 그림자가 있는 삶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결국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도록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접힌 커튼 뒤에 무엇이 있을까


나는 삶의 무대에서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싶다.

그러려면 보다 넓고 깊게 내게 남은 삶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지금 가진 생각과 감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삶과 함께

내가 못 보고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접힌 부분을 생각한다.

그리고 접힌 삶의 어떤 부분에서 경이로움이 있을까를 상상해 본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오래 교제한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

새로운 이해를 얻는 지식, 이전에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진리와 믿음을 바꾸는 지식

해 보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는 기술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느끼는 문화와 교양.


내가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영역은 아직 남아 있다.


삶을 무엇으로 채울까?

나는 하루하루 경이로움과 자부심을 느끼는 발견을 하고 싶다.

딱딱해진 믿음과 가치가 규정하는 삶이 아니라, 삶은 언제나 진행하고 움직이는 것임을 발견하고 싶다.

내가 보고 있는 삶에서 접힌 부분을 발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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