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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감정에 당황했다

3월의 조각글 모음

by 잼인

1.

고백하건대, 평탄한 삶을 살아와서 사회적 목소리를 낼 때 마음 한쪽이 무겁곤 했다. 중산층으로서 좋은 교육을 받아왔고 지금도 그 특권의 안락함을 누리고 있으면서 계급 사회에 반대하는 건, 아무래도 모순적이니까. (아, 이 문장을 쓰면서도 모순적인 스스로가 징그럽고 부끄럽다.)


하지만 더 이상 노동 의제는 나와 먼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정리해고로 농성하는 노동자, 안전사고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 등 사정은 다르더라도 언제든지 조직으로부터 손절당할 수 있는 존재… 라는 점이 그들과의 교차점이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는 차라리 회사가 날 잘라서 실업급여라도 받게 해줘라! 라는 철없는 소망을 가졌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버티고 버티던 회사에서 튕겨 나온 날, 예상하지 못한 패배감과 수치심이 들었고 내 노동관에 있어 아주 큰 획을 그었다. 노동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달까. 커리어는 풍족한 시대를 누리는 사람들의 사치였음을 깨닫게 됐으며, 노동자로서 내 위치를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까지 당사자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모순적이지. 원래의 나라면, “지지합니다.”라는 세련되면서도 거리감 있는 한마디로 끝났을 텐데, 이제는 복잡한 마음이 들어 광장에서 그들의 외침을 듣고 오히려 아무 말도 못 하게 된다. 목이 턱 막힌 듯한 기분으로, 울음을 참는 듯한 기분으로, 고개를 푹 숙이게 된다.



2.

좋아하는 밴드, 다브다의 기타리스트 요셉이 밴드를 나가면서, 고별 공연을 했다. 그의 마지막 무대를 보면서, 이 밴드의 한 시절이 막을 내린다는 기분이 들었고, 안 그래도 요즘 느끼고 있던 감각과 와닿아서 아주 많이 울면서 무대를 봤다.


떼창 포인트도 매번 놓칠 정도로 딥한 팬도 아니었으면서 왜 그렇게 울었나… 고민해 보다가 깨달은 이유. 그 무대에 나를 투영했기 때문. 성장과 커리어라는 것을 얻고 싶어 아등바등, 열심히 살았던 시절이 끝났다고 느끼는 요즘이었다. 그 시간이 후회스럽지는 않으나, 그 시절이 끝났다는 걸 인지했을 때의 공허함과 냉소가 어쩐지 서운했기에 그의 마지막 무대를 보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청춘의 한 페이지가 넘어간다”의 느낌이 이런 걸까?


이런 감정은 처음이라, 당황스럽다만… 모쪼록 그가 잘 지내길 바란다. 물론 조금 달라진 구성의 다브다도 여전히 응원하며,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안녕을 전한다.



3.

앞날을 생각하며 미리 불안해하는 버릇을 없애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60살까지 살 거야’라고 생각하면, 인생의 절반을 넘게 살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적어도 앞으로 남은 시간이 너무 많다고 느껴질 때 드는 막막한 기분은 없앨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내 원 없이 살다가 가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진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가족과 친구들한테 더 마음을 쏟기, 밴드 공연을 부지런히 보러 다니기, 아무튼 신나게 놀기 등. 끝내주게 좋은 공연을 보고 나면 ‘아,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다소 극단적인 감상이 들기도 하는데, 나중에 진짜 죽음을 앞둔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들길.


참, 의사결정의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얼마 전 감사하게도 들어온 제안이 있었지만, 근무시간 외에도 일 같은 일을 하고 싶지 않아 고사했다. 고민의 시간이 길지도 않았고, 아주 명쾌하게 ‘난 그 시간에 더 놀아야 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스스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4.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깔깔 웃으며 했던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하면 바로 모두의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의 프로그램이니, 꼭 한번 따라 해보길.


룰(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은 아주 간단하다. 돌아가면서 칭찬받고 싶은 일 또는 생각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계획 중 칭찬받고 싶은 일을 말하는 거다. 그리고 그 말에 열렬하게 박수 쳐주고 감탄해 주면 된다. 다소 유치할 수 있지만, 효과가 직방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나 요즘 기타 열심히 치고 있다!

ㄴ 이야~ 그래 너 많이 늘었더라!

3월에 일 진짜 많았는데, 그래도 잘 견딤

ㄴ 어우~ 고생했다, 야! 잘 버텼다. 잘했어!

나 다음 달에 수영 등록할 예정이야

ㄴ 호우~ 와!! 대단한데? 운동할 생각을 하다니~


장난스러운 리액션인 걸 알면서도 모두의 광대가 치솟았다. 이렇게 쉽게 다 같이 행복해질 수 있다니, 이러니까 돌고래도 춤추게 하지!



3월엔 감정 기복이 컸습니다. 역시 올해도 난춘을 피해갈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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