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나는 현역시절 문화콘텐츠 융합 전문가로 활약했다.
문화예술 콘텐츠에 IT기술을 접목 시키는 일이다.
이것을 문화기술(CT)이라고 부른다.
요즘은 "아트테크" 또는 "아티언스"라고도 부른다.
2010년 극장에 3D열풍을 이끌었던 영화 ‘아바타’는 대표적 사례다.
문화예술 분야는 현장 경험에서 배웠고,
CT쪽은 공학박사학위를 받았고,
서울의 국립대학에서 강의도 2년 하였다.
융합분야가 힘든 점은 두가지 학문을 잘 알아야하고,
잘 버무려야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비빔밥이 탄생한다.
그런데,
전국의 대학이 화려한 간판의 전시장으로 변모했다.
“실감콘텐츠융복합전공”, “창의발명&지식재산트랙” 같은
이름만으로도 정체성을 알 수 없는 학과들이 난립한다.
교육부의 지원금 유혹에 무릎 꿇은 대학들은 학문의 깊이를 희생하며
알량한 융합의 무대를 연출해낸다.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평가 결과에 따라 대학의 등급을 총 5개로 나누는데
하위 등급일 수록 정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대학들이 상위 등급을 얻기 위해 취업률이 낮은 학과를
앞다투어 폐지하거나 타 학과와 통합했다.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는 한국어문학부로,
사학과와 철학과는 역사문화콘텐츠학과로,
수학과와 물리학과는 수리물리학과로,
미술과 음악을 통합하여 문화예술대학으로...
이외에도 전기전자통신공학부, 생명화학부와 같이 통합되는
기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마치 난초를 그리려 했으나 풀잎에 머무는 그림처럼,
이들은 기교만 번지르르한 ‘엉터리 융합’을 양산했다.
독이 된 맞춤형 교육의 환상
산업계 연계를 명분으로 등장한 골프경영학·항공외식학
같은 학과들은 취업률이라는 현실 앞에 무너진다.
기업의 기술 수요가 순식간에 바뀌는 시대에
“맞춤형 인재” 양성은 허상일 뿐이다.
더욱 위험한 것은 얕은 전문화다.
기존 학과의 세부 과목을 ‘학과’로 포장한 융복합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시야를 오히려 좁힌다.
전문성은 약화되고,
학문적 정체성은 모호해져 졸업생들은 취업 시장에서 방향을 잃는다.
대학이 융합 공장이 되어야 하는가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학과를 나온 것도,
마크 저커버그가 SNS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심리학과 컴퓨터과학 같은
기초 학문의 토대 위에서 혁명을 일궈냈다.
융복합 교육의 핵심은 학문 간 ‘경계 허물기’이지
‘이름 붙이기’가 아님을 증명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대학은 단과대 간 칸막이를 유지한 채,
겉보기만 화려한 학제를 덧씌운다.
이는 교육적 책임을 외면한 무책임한 유혹에 불과하다.
진정한 장벽은 사회 깊숙이에
융합이 절실한 곳은 오히려 산업계와 정부 기관이다.
원자력 현장에 철학 전공자가 배제되고,
금융권이 공학도에게 문을 닫는 현실이 증명하듯,
학연·지연·혈연보다 단단한 ‘마피아적 장벽’이 사회를 가로막는다.
교육 정책을 사범대 출신이 독점하고,
재정을 경제학도가 장악하는 구조에서는 창의성의 싹이 자랄 수 없다.
“부처와 기관, 기업과 부서 사이의 담장이 학문의 경계보다 높다”
는 것이 냉소적 진실이다.
담장을 낮추고 뿌리를 깊게
로버트 프로스트가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고 말했듯,
융합의 본질은 무너트림이 아닌 조화다.
개인은 기초 학문에 집중하여 전문성을 극대화해야 하며,
조직은 불필요한 장벽을 해체해야 한다.
예컨대 ‘창의발명 트랙’에서 산업디자인·경영학·건축학이 참여하듯,
학문 간 교류는 자연스러운 협력으로 이뤄져야 한다.
대학이 해야 할 일은 화려한 학과 창설이 아닌,
철학과 공학이 대화할 수 있는 강의실을 여는 것이다.
무너져야 할 것은 학문의 경계가 아니라,
사회의 아집이 쌓아올린 칸막이다.
진정한 통섭은 기초를 단단히 한 이들이
담장 너머로 손을 내밀 때 시작된다.
융합 시대의 대학은 ‘무엇을 가르칠까’보다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까’를 고민해야 한다.
깊이 없는 교차는 기만이요,
뿌리 없는 혼종은 위선이다.
학문의 담장을 존중하는 이웃이 진정한 융합의 주인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