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판지로 빚어낸 생명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버려진 택배 상자가 실물 크기의 고릴라로 변신한다면 어떨까.

1975년 마르세유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아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올리비에 베르트랑(1975~)은 이런 놀라운 변신을 현실로 만드는 예술가다.

어린 시절부터 종이접기에 매료되었던 그는


"간단한 종이 한 장이 몇 번의 접기로 생명을 얻고 감동을

일으키는 변신에 항상 사로잡혀 있었다"고 회상한다.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고 15년간 웹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던 베르트랑의 인생은

2019년 예기치 않은 전환점을 맞는다.

무릎 부상으로 집에 머물게 되면서 그는 골판지 조각들을 붙이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고릴라의 얼굴만 만들 생각이었으나

결국 거실을 가득 채운 실물 크기의 동물을 완성했다.

6개월간 공들여 만든 이 고릴라 작품은 2019년 아트캐피탈 전시회에서

처음 출품하는 작가에게는 매우 드문 영예인 동메달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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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랑이 골판지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골판지는 구하기 쉽고 가벼워서

대형 작품에 완벽하게 적합하며, 사람들이 버리는 일상적인 물건에서 가치를

창조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는 다양한 두께의 골판지 상자를 수집하여 프레임에는 두꺼운 골판지를,

나머지 부분에는 얇은 골판지를 사용하며, 작은 조각들을 연결해 조각상을 만든다.

내구성을 위해 특수 수지를 사용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의 작품 철학은 명확하다.


"힘을 발산하는 동물들을 조각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는 사용하는 골판지의 연약함과 언뜻 보기에 모순적이다.

주제와 재료 사이의 이러한 이중성을 통해 나는 내 방식대로

동물 종의 위태로움에 대해 경종을 울리려 한다".


환경 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은 단순히 재활용 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작품의 메시지 자체가 된다.

베르트랑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움직임이다.


"나는 정적인 조각상을 만들지만,

그것들이 살아있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동물, 신화적 존재, 전사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는 언제나 생명력 있는 표현에 집중한다.

관람객이 골판지 조각들이 살아있는 존재로 변신하는 것을 목격할 때,

베르트랑은 자신의 작업이 성공했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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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예술이 엘리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믿는다.

"내 작품이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걸고, 대중이 그것에 접근하여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이러한 철학은 그가 선택한 재료인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골판지와도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를 넘어 세계 각지의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버려진 골판지가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재료의 가치, 환경의 소중함,

그리고 예술의 민주화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올리비에 베르트랑은 현대 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발견하는 예술가의 시선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https://youtu.be/QIRiLI_CP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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