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세상의 모든 빛이 잦아들고,
하늘의 별 하나가 유난히 빛나는 밤이 있다.
시간이 고요히 멈춘 듯한 그 밤,
크리스마스 이브는 고요한 기다림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이 신성한 밤의 정수를 붓끝과 색채로 담아내려 했던 화가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그들이 포착한 것은 단순한 장면이 아니라 ‘기다림’ 그 자체의 감동이다.
어둠이 가장 깊을 때, 가장 찬란한 빛이 시작된다는 것을
노르웨이 화가 니콜라이 아스트루프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목판화 <산달스트란드의 크리스마스 이브>에서는
장식된 나무와 전통 장식품 사이에서 지친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잠든 모습이 담겨 있다.
하루 종일의 분주한 준비를 마친 후 찾아오는 침묵,
그 피로와 평화가 공존하는 순간이 바로 축제 전야의 진짜 모습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덴마크의 비고 요한센은 자신의 가족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둘러싼 모습을 그리며,
추운 북유럽의 겨울밤을 따뜻한 실내의 등불과 가족의 웃음으로 채웠다.
이들은 성스러운 이야기보다 일상의, 그러나 특별한 기다림을 화폭에 담았다.
이러한 세속적 정경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경이로움은,
종교화에서 빛의 기적으로 구현된다.
네덜란드의 게르트헨 토트 신트 얀스는 <밤의 예수 탄생 >에서
모든 빛의 근원을 아기 예수 자신에게서 찾았다.
검은 어둠을 갈라내듯 강렬하게 뻗어나가는 그 빛은,
단순한 물리적 빛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한 세기 후, 이탈리아의 바로크 거장 카라바조는 <목동의 경배>(1609)에서
강렬한 명암법으로 이 기적의 순간을 극적으로 연출했다.
등불 하나로 겨우 밝혀지는 마굿간,
그 안에서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성가족.
그의 그림은 신성함이 인간의 눈높이로,
우리 곁에 다가오는 그 감격을 생생히 전한다.
이 모든 전통과 감성을 20세기 현대미술의 언어로 단 한 점에 압축한 이가 있다.
앙리 마티스,
그가 생을 마감하기 두 해 전인 1952년에 완성한 색유리 작품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그는 만년에 이르러 화려한 색채보다 단순함과 조화의 미학을 추구했고,
병마로 붓을 들 수 없게 되자 가위로 오려 붙이는 ‘컷 아웃’ 기법으로 새로운 예술을 창조했다.
이 작품은 붉은 땅 위에 푸르른 식물이 자라나,
하얀 별들로 점점이 수놓인 밤하늘을 거쳐,
정점에 이르러 가장 크고 밝은 별 하나와 만난다.
고딕 성당의 장엄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 단순한 형상은,
고대부터 이어져 온 구세주 탄생에 대한 인류의 간절한 염원을 환하게 비춘다.
마티스는 이 작품이 “악보와 같다”고 말했다.
같은 악보라도 날씨와 빛에 따라 다른 연주가 되듯,
이 색유리 창을 통과하는 빛의 세기와 각도에 따라 관람자의 마음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감동도 매일 새롭다는 뜻일 것이다.
북유럽의 따뜻한 가정, 르네상스의 극적 신성함,
그리고 마티스의 추상적 환희.
시대와 양식을 초월한 이 다양한 화가들은
모두 크리스마스 이브가 지닌 두 가지 본질을 향해 나아갔다.
바로 ‘어둠 속의 빛’과 ‘기다림의 종료’이다.
세상의 소란과 근심이 잠시 물러나고,
깊은 어둠이 지배하는 이 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한 점 빛을 바라보며 내일을 기다린다.
그것이 비단 종교적 믿음이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이든,
평화에 대한 희망이든,
새로움을 향한 마음의 준비이든 말이다.
화가들의 캔버스는 바로 그 고요한 마음의 빈 공간에 스민,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기쁨의 색채이다.
별빛이 스민 이 고요한 밤,
그림 속에서 영원히 반짝이는 빛들은 우리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가장 깊은 어둠 다음에 오는 빛은, 가장 따뜻하다고...
상업화가 덜했던 과거에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만찬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는 날이기도 했다. 유럽의 부유한 가정에서는 칠면조를 요리할 준비를 마친 채로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소피 겐젬브르 앤더슨은 날짜가 명시되지 않은 작품 < 크리스마스 타임 - 여기 칠면조가 있다!> 에서 마지못해 희생양이 된 칠면조의 모습을 포착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밤이 잔치와 축하의 절정을 맞이하는 날이다. 칼 라르손의 1904년 크리스마스 이브 그림은 커다란 칠면조,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그리고 식탁 밑에서 파티에 끼어들려는 고양이와 함께 대가족이 성대하게 모인 모습을 보여준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런 방식으로 명절을 기념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1915년, 유럽 전역이 제1차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을 때, 보이치에흐 코사크는 이 그림, '병사들의 크리스마스'를 그렸다. 전경에 있는 작은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은 회색빛 군복을 연상시킨다. 하늘에는 포탄이 터지면서 동방박사들을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에게 인도했던 길잡이 별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 천상의 빛 아래에서 보병들은 묵묵히 전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