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텐슈타인의 만화 세계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장담하는데 아빠는 저렇게 잘 그리지 못할거예요, 그렇죠, 아빠?"

아들이 미키 마우스 만화책을 가리키며 던진 한마디에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의 인생이 바뀌었다.

1961년 그는 아들을 위해 미키 마우스를 그려주었고,

예술로서의 회화보다 만화가 더 강렬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탄생한 '이것 좀 봐 미키'는 앤디 워홀과 함께 팝아트의 양대 거장으로

불리게 될 화가의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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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특징은 명확하다.

선명한 검은색 테두리와 형태를 메우고 있는 점들,

즉 벤데이 점은 구멍이 뚫린 판을 사용하여 색점들을

만들어내는 매우 기계적인 작업의 산물이다.


그는 만화책에서 전쟁 장면, 로맨스 장면을 그대로 확대해 거대한 캔버스에 옮겼다.

굵은 윤곽선, 과감한 삼원색, 말풍선 속 대사까지.

영화 한 장면을 정지시켜 놓은 듯한 그의 그림은

미국 대중문화의 클리셰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꽝!', '익사하는 여자', '오, 제프...나도 사랑해요, 하지만...'은

모두 만화에서 차용한 이미지들이다.

특히 두 대의 전투기가 격돌하는 장면을 그린 '꽝!'은

전쟁의 현실성을 지우고 만화적 과장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폭발하는 순간의 긴장감과 의성어가 결합된 이 그림은

전쟁을 마치 오락처럼 소비하는 미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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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광의 뒤편에는 논란도 있었다.

다큐멘터리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도용의 예술'에서는

원작 만화가들의 삶이 고단하고 궁핍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은 수천만 달러에 팔렸지만 원작을 통해 작가들이

얻는 수익은 고작 몇 달러에 불과했다.

만화가 하이 아이즈먼은 자신의 그림이 도용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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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그의 작품 '걸작'은 1억 6500만 달러(약 1970억 원)에 판매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히텐슈타인의 예술적 가치는 부정할 수 없다.

그는 만화를 이용하여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독특한 영역을 추구했으며,

만화가 가지고 있는 일상성을 예술적인 맥락으로 재평가함으로써 회화의 영역을 확대시켰다.

그가 그린 것은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

대량 복제 사회에서 표준화된 기호로 작용하는 이미지의 본질이었다.


"오늘날 예술은 우리 주위에 있다"고 선언했던 리히텐슈타인.

그는 영화관 스크린처럼 거대한 캔버스 위에 만화 한 컷을 확대함으로써,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대중문화의 이미지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벤데이 점으로 가득 찬 그의 캔버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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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xKNzDwGCt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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