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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벗는 것은 자연의 일부다.

아침에 일어나 온천을 들락이며 호젓한 시간을 보내었고 토노파 마을로 떠나려고 길을 나섰으며 광야를 달렸다.

 



아침에 여러 마리 말이 어디론지 달려갔는데 오면서 보니 들판에 아무도 없어서 의아했는데 그새 약 삼십 리 정도를 달려서 이곳에 모두 모여있었다. 사슴, 말, 노새, 당나귀 이렇게 네 종류였는데 서로 해치지 않는 초식동물끼리 모두 이곳에 모여서 자유롭게 살고 있었으며 차를 멈추니 의심스러운 눈으로 경계를 하기에 손을 흔들며 떠났다.




토노파 인근은 모두 광산이며 지금은 비활성화되어 침체된 곳이지만 1800 년대 중후반에 시작된 광산업으로 1900 년대 한국의 일제시대 중기까지 활황이었던 곳이다. 지금은 다양한 광물이 도처에서 밀려 들어오고 넘치는 품목이 많기 때문에 잠잠하지만 아무 때라도 다시 잠에서 깨어 활기를 띄울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곳이다.




2년 전 왔던 마을 박물관에 찾아왔고 이곳은 옛날에 광산에서 사용하던 건물과 기계를 전시해 놓았는데 1980년대에 개관하였다.




1880년대 광산의 숙소와 사무실로 쓰이던 건물도 있으며...




이 판자 건물은 1800 년대 후반부터 1910 년까지 Saloon 술집으로 사용하던 곳이며 안에는 바텐더가 술을 따라주는 작은 스탠드 테이블이 가운데 있고 한편에는 포커를 하는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런 곳을 Saloon "술집"으로 부르는 것이고 Salon "가게"와는 별개의 명칭이다.


지난번 한국서 온 원정대에게 호텔과 모텔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였고 Inn, Suite, Tavern 등 각기 다른 명칭을 구분하여 말해주었으며 미국에서 사용하는 명칭과 한국서 사용하는 변질된 명칭의 차이를 설명해주었다. 오래전 쓴 글에서 호텔과 모텔의 차이를 설명한 것이 있는데 명칭의 다른 점은 한국서는 모텔이 숙소라기보다는 주로 변질된 장소로 불린다는 것이다.


한국에만 건너가면 영어의 호칭과 용도가 변질되고 더욱이 변하지 말아야 할 종교도 변질되는 특이함이 있는데 지금은 신세대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가 주류라서 상황은 많이 좋아졌을 것이다.


오래전 뉴욕의 작은 교회에서 친교를 나누던 시간에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예배를 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그들 애미쉬와 메노나이트 정통 개신교인이 이단이며 그들을 이단종파라고 해서 놀랐다.


보스턴 인근 바닷가에 있는 1620 년에 유럽서 종교전쟁과 캐톨릭에 의한 박해를 피해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신대륙으로 온 청교도 도래지 프리머스 포구를 청교도 성지라며 뉴욕의 여러 교회에서 단체로 가지만 그들의 후손이 지금의 애미쉬와 메노나이트 인 것을 모르고 이단 취급을 하기에 종교전쟁과 청교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준 적이 있었다.


교회가 커지면 먹사들이 예수의 머리를 밟고 올라가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야 한다며 교회건물을 호사롭게 짓기를 서슴지 않지만 청교도는 그들 조상이 예배하던 것을 답습하여 전기도 없고 마이크도 없고 음향기기도 없는 텅 빈 교회에서 오로지 예배를 목적으로 하는 겸손하고 선한 정통 기독교인이다.


하나님을 팔아서 재물을 긁어 제 주머니 채우기 급급하고 가난하고 병든 자는 외면하고 부유한 자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교회 안에서 기득권을 행사하고 온전한 기독교 정신은 버려지고 무당으로 변질된 것들의 복채가 오가는 곳이 되었다. 어려울 때는 예수를 팔고 교회가 커지면 가난한 예수를 내쫓고 왕 노릇 하는 사이비가 넘치는 곳이 근래 한국 개신교의 보편적 모습이다.   




옛날의 뒷간이며 내부는 지금의 화장실 변기의 조상으로 나무의자 좌식변기로 만들어졌다.




굴에서 광물을 실은 광차를 끓어 올리던 발동기...




전기모터를 돌려서 피대 줄로 움직이던 기계인데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지만 무척 큰 기계였고 골격은 나무로 제작되었다.




1927년 광산에서 사용하던 포클레인에 앉아보았다.




십여 년 전 중장비를 운전해서 먹고 산 때가 있어서 이런 것의 구조를 잘 아는데 지금 것과 다른 것은 구조가 복잡하고 안락하지 않지만 전체적 기능은 거의 같으며 효율성이 좋은 이런 것을 대량으로 생산해서 사용한 이들이다.




1960 년대 한국의 거의 모든 트럭과 버스는 이렇게 손으로 쇠막대를 돌려 시동을 걸었는데 이후에 스타터 모터가 일반화되었다. 옛날에는 시동을 거는 문제 때문에 꼭 조수가 옆자리에 타고 다녔고 엔진이 멈추면 조수가 막대를 끼워 돌려서 시동을 걸었다.  




2차 대전에 개발한 나르는 폭탄이며 무게는 약 900 kg이고 나무 골격으로 만든 날개가 있어서 라디오 (무선조종)으로 유도하여 적진을 공격한 신형 무기였다. 인근 8 마일 거리에 미국서 생산된 전투기 시제기를 시험 비행하는 공군기지가 있는데 완벽하지 않은 비행기는 사고가 많고 잔해는 이곳에 전시해 놓은 것이 많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는 쿠거 또는 퓨마로 불리는 (아메리카 사자) 가 박제로 있었는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먹이사슬의 최 상부에 있는 사나운 동물이며 갈색의 털로 덮인 표범으로 보면 되겠다. 성장하면 체중은 약 70 kg 정도 되는데 대륙의 숲에는 어디든지 표범이 살고 있어서 교만하지 말고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이곳 박물관에는 1달러에 판매하는 고액권 모형이 종류별로 있는데 오천 달러 고액권은 2차 대전 직후 사용이 폐지되었고 가운데 인물은 제 4대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이며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1882년에 발행된 500 달러이며 링컨 대통령이 사진의 인물이고 이것을 주면 같은 금액의 금으로 바꿔주는 증서 역할을 하였다. 훗날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달러의 사용처가 많아지고 지폐 발행의 남용으로 인플레이션이 치솟고 닉슨 대통령 재임기간 때 금본위를 폐지하여 지폐를 금과 바꿔주지 않는다고 발표하여 세계경제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그 배경에는 닉슨을 워터 게이트 사건의 의도적으로 궁지에 몰아넣은 U 민족이 탐욕을 채우느라 닉슨을 조종하여 금본위를 폐지하고 자신들이 보유한 모든 금을 대가 없이 차지하였으며 이후 금을 독식한 그들의 농간으로 금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은 내 개인의 의견에 불과하지만 추론해보면 재선에 출마하여 당선된 닉슨을 자신들이 조작한 워터 게이트 사건을 터트려 언론에서 개망신을 주고 특별검사가 조사하는 허수아비로 만들고 그의 약점을 협박하여 골수 유태인 키신저를 앞세워 중국을 드나들게 하여 핑퐁외교로 중국을 개방하여 지금의 중국의 경제를 키워놓은 것도 U 민족이고 닉슨을 이용한 후 끝내 사지로 내쫓은 것도 U 민족이다.


닉슨이 뭐 할 짓이 없어서 상대방 선거본부를 도청하겠으며 재선에 성공하여 연임하는 중에 느닷없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터트려 제들 마음대로 닉슨을 이용해 먹더니 결국 내쫓아 불명예스러운 대통령으로 만들었는데 그의 약점을 쥐고 조종하여 현금을 금으로 내주지 않는다는 정책 발표를 끝으로 닉슨은 대통령에서 쫓겨나고 최 상위의 화폐는 100 달러 지폐로 고정시켰다.


여행기록을 쓰면서도 언듯 언 듯 떠오르는 것이 있으면 글로 옮겨서 기록하는데 세상에 없는 이야기지만 나의 추론이 틀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그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대통령도 암살하고 음모를 꾸면서 쫓아내는 흉악한 자들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에서 쫓겨난 저능아 보톡스 비아그라 부통령 마마는 희한한 별종으로서 미국의 대통령과 근본적으로 품격이 다르므로 오해가 없어야 한다.




1906년 Tonapah 마을 사진이며 지금도 예전의 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서부시대 마을이며 옛날의 신작로가 아스팔트로 바뀐 것이 다를 뿐이다.




윗 사진보다는 더 오래된 사진이며 서부로 광물을 찾아 정착한 개척자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마을이 토노파 마을이다.




겉으로는 깨끗해졌지만 거리도 그대로이며 건물 대다수도 예전의 것 그대로 있는 토노파 마을...




마을 한편에는 넓은 빈 땅이 있으며 이곳에 RV 와 트럭이 쉬었다 가도록 개방해 놓은 곳이라서 이곳서 지냈는데 전과 달라진 것은 현판을 새로 만들고 땅을 다듬어 놓은 것이었다.




6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렸으며 ...




광업의 퇴조로 통행량이 적어지면서 모든 업종이 문을 닫고 떠난 마을이 토노파 인근에 폐허로 남아있다. 옛날에는 모텔과 주유소 상점 등 다양했던 곳이 이렇게 되었으며 이곳도 언젠가는 다시 회복될 것이란 생각이다.




캘리포니아 주 경계에 도달하였고 이곳은 모든 차량을 조사하여 외부에서 농산물이 캘리포니아로 영입되지 못하게 하는 검문소이며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 제일의 청정 농산물 재배지역이라서 오염 또는 전염병을 염려해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길에서 철저히 막는다.  




120 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갔으며 곧이어 Wild Willy's Hot Spring 으로 가는 샛길로 들어갔다.




산을 넘으니 이런 고갯길이 나왔으며 작지만 꽤 괜찮은 곳이라서 잠시 멈추었다.





태고부터 씻겨 내려간 토양은 산 아래에서 저지대 평야가 되었고 그중에 단단한 암석이 남아 지금의 모습이 된 곳이다.




이리로 백리가 넘게 들어가면 오웬스 강이 흐르고 더 가면 온천이 나온다.




구비도는 산길을 따라 내려가니 강과 호수가 보였고 먼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는 산불이 붙어 연기가 심했다.




평야가 산에 맞물려 아름다운 곳이 계속되는 이곳...




초원에는 수백 마리 소떼가 풀을 뜯으면서 넓게 퍼져 있었는데 지천에 남아도는 풀은 없어지지 않을 듯했다.




비포장 길로 한참을 들어가니 저편에 주차장이 보이고 차량이 많았는데 자리를 잡고 밤을 지새울 생각이었다. 


주차장에서 온천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 살펴보니 방문객이 가득하기에 다시 차로 되돌아왔으며 다음날 가기로 했다. 날이 매우 추웠는데 차에서 소고기를 넣고 떡국을 끓여서 먹고 잤는데 아침에 바깥이 시끄러워 일어났다.  




프로판 가스가 한 개 남아 음식 조리용으로 써야 해서 난로를 피우지 않고 추위에 덜덜 떨면서 자느라 선잠을 잤으며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일어나 밖으로 나갔더니 엄마 아빠와 차에서 잔 아이가 추위에 따듯한 물을 마시고 있었고 부모는 물을 끓이고 있었다.  




갑자기 겨울이 된 것처럼 강추위가 몰려와서 모두 겨울옷을 꺼내 입었고 천막이 있기에 누가 저기서 잤냐고 물으니 무늬 바지를 입은 젊은 여인이 잤다며 웃는다.




수염이 더부룩히 자란 남자는 알래스카까지 가서 내려와 캐나다를 횡단해서 토론토에서 뉴욕주 애디론댁 산맥을 거쳐 애팔라치안 산맥을 따라 노스 캐롤라이나 주 스모키 마운틴까지 갔다가 옐로스톤으로 갔고 거기서 이곳으로 왔다고 하였다.


며칠 전 옐로스톤 남쪽 문이 폐쇄되어 테톤 국립공원에서 쉐인의 촬영지를 둘러보고 서남쪽으로 떠나서 이곳에 온 이야기를 하니 그때 옐로스톤에 있었고 대륙에서 지금까지 30 개 주를 다녔다기에 49 개 주를 다닌 이야기를 들려주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갑자기 경악하였다.


이 친구가 다닌 곳은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여서 대화가 재밌었는데 글래시어 국립공원에 갔던 이야기를 하기에 그곳에 다섯 번째 방문하고 이번에 한 달을 지낸 이야기도 하고 여우의 비디오와 곰과 마주쳐서 싸우려던 비디오를 보여주니 놀라지 않는 이가 없었다.


작은 자동차에 짐을 싣고 다니는 이들 부부가 대단한 사람이었으며 캘리포니아 북부 Chico 마을에서 형제가 이곳에서 모인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말하는 치코에는 이번 3월 이틀을 머물던 곳이고 Yuba에서 머물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대륙이 크다해도 동서남북으로 다닌 길 또 다니는 것이니 대화에 거침이 없다.




이들이 끓인 물 한 컵을 얻어서 원정대원들이 주고 간 물 건너 온 막대형 다방커피를 넣어 마셨는데 추운 때 몸을 따듯하게 하는 용도로 커피를 마시고 그 외에는 거의 마시지 않는다. 이들이 먼저 온천으로 갔고 옷을 챙겨서 이곳으로 떠났는데 주차장에서 오륙백 미터 걸어가야 한다.





내 옆 차에서 나온 커플이 끓이는 물을 얻어 커피를 마시고 그들이 이곳으로 먼저 왔는데 지나면서 보니 모두 홀딱 벗고서 목욕을 하고 있었고 그들의 쉐퍼드는 곁에 앉아있기에 옆에 있는 큰 온천으로 갔다. 의도를 갖고 찍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모습이고 함께 물속에 있기 거북해서 바로 옆으로 간 것이다.




바로 곁에 물속에는 나와 이야기하는 부부와 아이가 있는데 전혀 거리낌 없이 걸어왔고 이어서 여인도 아무렇지 않게 걸어와 수건으로 몸을 감쌌다.


바지를 벗고 팬티를 입은 채 배낭에 카메라를 올려놓는데 갑자기 벗은 몸으로 이편으로 건너왔기에 갑자기 셔터를 누르고 내려놓았는데 뒤이어 여인도 완전히 벗은 몸으로 와서 수건으로 감싸서 물기를 닦고 옷을 입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기에 카메라를 집어 들지 못한 아쉬움이 있으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해서는 안되므로 달리 방법이 없었다.




검은 배낭에 올려둔 카메라와 삼각대를 이곳에 세우고 작은 물줄기에 앉아서 기념사진을 찍었으며...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과 온천이 큰 곳으로 옮겨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의 부인이 말하기를 자신도 때때로 옷을 벗고 목욕을 한다며 웃는다. 이 친구도 긍정의 몸짓을 하는데 그게 자연인 모습이기는 하겠지만 아직도 내 뱃속에는 (빠다)가 부족하여서 그런지 하여간 이해는 하면서도 100 % 공감은 되지 않았다.




참으로 천연덕스럽고 해맑은 커플이었으며 이들에게 왜 나체로 목욕하는지 물으니 자연스럽고 좋다며 웃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 앞에서 옷을 벗은 채 있어도 그것이 의도된 것도 아니고 자연이 좋아서 그러는 것이니 문제 될 것이 없다며 또 웃는다.


헤어스타일은 히피처럼 만들어 틀었고 너희들 사진을 하나 찍겠다고 하니 서슴이 없었는데 옷을 벗었을 때 찎었어도 문제를 삼지 않을 정도의 커플이었다. 서양인은 금전의 문제만 결부되지 않으면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고 너그럽고 포용력이 큰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만약에 한국 여인이었다면 이런 곳에서 벗을리도 없지만 만약에 타인이 봤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고 어쩌면 살던 동네에서 이사를 간다고 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들에게 내숭이란 없다.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편한 삶이 되는 미국이다.




그들은 주차장으로 떠났고 여느 때 같으면 온천에서 나와 차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을 텐데 나도 전염이 슬슬 되는지 아예 밖에서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벗는 것이 흉이 되는 사람들이면 그리할 리 없었지만 모두가 벗고 목욕하는 사람들에게 나 혼자 가릴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대중 앞에서 벗고 목욕을 하지는 못하지만 갈아입는 정도는 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이들을 다시 만나서 작별인사를 하고 그들이 먼저 떠났고 나는 인근의 다른 곳 작은 온천으로 떠났다.




한참을 헤맨 끝에 이곳에 왔는데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깨끗한 작은 곳이었고 승용차를 한편에 세운 남녀가 비키니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이곳으로 오기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은 아직 나이가 20대 중반의 남녀라서 세상살이에 오픈마인드가 되지 않았는지 낯을 가리는 표정이어서 떠났다.


크기가 충분하면 이곳에 들어가려 했는데 두 명이 알맞은 장소라서 아쉽지만 길을 떠났다. 이곳을 혼자 점령했다면 하루 더 지내려고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았고 방향은 요세미티로 정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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