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프랑스 위기가 유럽을 흔든다

독일-프랑스 축 붕괴와 유럽통합의 불안

by 박상훈

7화. 프랑스 위기가 유럽을 흔든다

― 독일-프랑스 축 붕괴와 유럽통합의 불안



2024년 12월 브뤼셀 EU 정상회의.

각국 정상들이 하나둘 회의실에 들어섰다.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가 먼저 앉아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 대표를 기다렸다.

EU의 중요한 결정은 항상 독일과 프랑스가 먼저 합의한 후,

다른 국가들에 제시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프랑스 총리 석은 비어 있었다.

미셸 바르니에 총리는 며칠 전 불신임으로 축출되었고,

새 총리는 아직 임명되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이 혼자 참석했다.

하지만 국내 지지율 23%인 그의 발언에는 무게가 없었다.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프랑스는 일관된 입장을 제시하지 못했다.


숄츠는 한숨을 쉬었다.

"독불 엔진"이 멈춰버린 것이다.


유럽연합은 67년간 독일-프랑스 협력을 축으로 통합을 이어왔다.

하지만 프랑스의 정치적 마비는 EU의 존재 기반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프랑스가 흔들리면 유럽 전체가 흔들린다.


세 번의 전쟁에서 67년 평화로


독일과 프랑스는 20세기에 세 번 전쟁을 했다.

1870년 보불전쟁,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매번 유럽 전체가 전장이 되었고, 수천만 명이 죽었다.


1945년 전쟁이 끝났을 때, 유럽 지도자들은 깨달았다.


독일과 프랑스가 다시 싸우면 유럽 문명 자체가 끝난다.


1950년 5월 9일,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슈만이 역사적 선언을 했다.

"독일과 프랑스의 석탄과 철강 생산을 공동 관리하자.

전쟁 물자를 함께 통제하면 서로 싸울 수 없다."

이것이 유럽 통합의 시작이었다.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가 출범했고,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로 확대됐다.

1993년 유럽연합이 출범했고,

1999년 단일 화폐 유로가 도입됐다.


모든 중요한 결정에서 독일과 프랑스가 먼저 합의하고,

다른 회원국들이 따라오는 구조였다.


드골과 아데나워, 미테랑과 콜, 시라크와 슈뢰더, 메르켈과 사르코지.

독불 정상들의 합의가 곧 EU의 방향이었다.


이것이 "독불 엔진"이다.

67년간 이 엔진은 유럽 평화와 번영을 이끌었다.


격차가 벌어지는 두 나라


하지만 프랑스 위기로 독불 엔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두 나라 사이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력을 보자.

독일 GDP는 4조 3천억 유로, 프랑스는 2조 9천억 유로다.

독일이 1.48배 크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이 격차는 1.2배 정도였다.

독일은 슈뢰더 개혁으로 경쟁력을 강화했고,

프랑스는 복지 지출로 재정이 악화됐다.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재정 건전성은 더 극명하다.

독일 국가부채는 GDP 대비 64%로 안정적이다.

반면 프랑스는 113%로 위험 수준이다.

매년 이자만 740억 유로를 내야 한다.


독일은 재정 흑자를 내고 있고,

프랑스는 5.8% 적자를 내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프랑스를 '추가 강등 검토 대상'으로 분류했다.


정치적 안정성의 차이는 더욱 심각하다.

독일은 연정 정부지만 안정적으로 통치하고 있다.

숄츠 총리는 2021년 취임 이후 4년간 재임 중이다.

반면 프랑스는 마크롱 2기 들어 평균 8개월마다 총리가 바뀌고 있다.

장기 정책 추진이 불가능한 구조다.


마크롱 2기 총리들 (2022년 이후):

엘리자베트 보른 (2022-2024, 20개월)

가브리엘 아탈 (2024년 1-9월, 8개월)

미셸 바르니에 (2024년 9-12월, 3개월) - 불신임으로 축출

프랑수아 바이루 (2024년 12월-2025년 9월, 9개월) - 불신임으로 사임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2025년 9-10월, 27일) - 사임


독일은 점점 강해지는데 프랑스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이제 "독불 축"이 아니라 "독일 주도, 프랑스 추종" 구조가 되고 있다.

평등한 파트너십이 무너진 것이다.


독일이 새로운 파트너를 찾다


프랑스 위기가 EU에 미치는 가장 직접적 영향은 의사결정 마비다.


2024-2025년 EU가 다뤄야 할 주요 현안들을 보자.

우크라이나에 500억 유로를 추가 지원할 것인가?

중국 전기차에 관세를 얼마나 부과할 것인가?

탄소국경세를 어떻게 시행할 것인가?

이민자를 회원국별로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

EU 예산을 확대할 것인가?


이 모든 현안에서 프랑스가 일관된 입장을 내지 못하고 있다.

평균 8개월마다 총리가 바뀌니 장기적 정책 추진이 불가능하다.


바르니에 총리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적극적이었다.

바이루 총리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소극적이었다.

르코르뉘 총리는 27일 만에 사임했다.

다음 총리는 또 다른 입장일 것이다.


EU 회의에서 프랑스 대표가 무슨 말을 하든

"어차피 곧 바뀔 정부"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독일은 프랑스와의 협의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독일은 네덜란드,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등

재정 보수주의 국가들과 새로운 연합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재정 보수주의와 자유무역 옹호다.


프랑스의 보호주의적 정책에 대한 견제 세력이다.

EU 내에서 새로운 권력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과거에는 독일과 프랑스가 합의하면 다른 국가들이 따라왔다.


이제는 독일이 북유럽 국가들과 합의하면

프랑스도 따라올 수밖에 없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유로화에 균열이 생기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유로화 안정성이다.

유로화는 독일의 경제력과 프랑스의 정치적 영향력이 균형을 이루며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프랑스가 정치적으로 불안해지면서,

유로화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국채 금리 차이가 그 증거다.


같은 유로화를 쓰는 국가인데,

국채 금리가 다르다는 것은 시장이 두 나라를 다르게 평가한다는 의미다.


2024년 11월, 이 격차는 90bp(0.9%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는 2012년 유로존 위기 이후 12년 만의 최고치였다.

2025년 12월 현재는 약 70bp 수준으로 다소 완화되었다.


시장이 프랑스를 독일보다 위험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금융 전문가들은 150bp를 경고선으로 본다.

2012년 유로존 위기 당시 이탈리아가 이 수준이었다.


프랑스와 독일의 격차가 150bp를 넘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첫째, 프랑스 국채 금리가 4%를 돌파한다.

현재 이자 지출 740억 유로가 1,000억 유로를 넘는다.


둘째, 이탈리아와 스페인으로 위기가 확산된다.

"프랑스도 위험하면 우리는 더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진다.


셋째, 유럽중앙은행이 개입해 프랑스 국채를 매입해야 한다.


넷째, 독일 내에서 "왜 우리 돈으로 프랑스를 구제하나"는 반발이 일어난다.


다섯째, EU가 분열된다.


2012년 그리스 위기는 GDP 1,890억 유로 규모의 작은 나라 문제였다.

프랑스는 GDP 2조 9천억 유로, 유로존 2위 경제대국이다.

위기가 터지면 그리스 때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다.


동유럽이 "서유럽 모델"을 거부하다


프랑스 위기는 동유럽 국가들의 "서유럽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은 공개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를 보라.

다문화주의와 무분별한 복지가 나라를 망쳤다.

우리는 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폴란드 집권 여당도 비슷한 입장이다.


"프랑스는 이민자를 받아들여 사회가 분열됐다.

폴란드는 단일민족 정체성을 지킬 것이다."


이들은 프랑스 사례를 들며 "서유럽 모델의 실패"를 주장한다.

EU 가치보다 국가 주권을 우선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도 동조하고 있다.

EU 이민자 할당제 표결에서 이들은 공개적으로 반대표를 던진다.

"프랑스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다.


EU 예산 분담 축소도 요구하고 있다.

"서유럽이 자초한 위기를 왜 우리가 부담하나"는 논리다.


동유럽이 서유럽과 가치관에서 완전히 분리되고 있다.

과거에는 "언젠가 프랑스나 독일처럼 되자"는 목표가 있었다.

지금은 "프랑스처럼 되면 안 된다"는 경계심이 퍼지고 있다.


이는 EU의 통합 정신 자체를 근본적으로 위협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파고든다


유럽의 분열은 중국과 러시아에게는 절호의 기회다.


중국은 분할 통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EU 전체와 협상하지 않고, 개별 국가들과 따로 거래한다.

독일과는 자동차와 기계 수출입을 확대한다.

프랑스와는 문화 교류와 럭셔리 브랜드 협력을 강화한다.

동유럽 국가들과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로 연결한다.

그리스 피레우스 항, 이탈리아 제노바 항 등 남유럽 항만에 투자한다.


이 전략의 목표는 명확하다.


EU가 중국에 대해 통합된 입장을 취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독일은 중국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크고,

프랑스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며,

동유럽은 중국 투자에 의존하고,

남유럽은 항만 수익을 포기할 수 없다.

EU가 중국에 공동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러시아도 "유럽 분열" 공작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 극우 국민연합에 자금을 지원한다는 의혹이 계속 제기된다.

독일 내 반미 여론을 조장하고, 동유럽 민족주의 정당들을 지원한다.

프랑스 정치 혼란이 이런 외부 개입을 더욱 쉽게 만들고 있다.


내부가 안정되지 않은 나라는,

외부의 영향력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유럽의 3가지 미래


프랑스가 안정을 회복하지 못하면 EU는 어떻게 될까?

유럽 정치 전문가들은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시나리오 1: 독일 주도 체제

프랑스가 2등 파트너로 격하되고, 독일이 EU 정책을 사실상 단독 결정한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는 남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부를 것이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는 "독일 제국"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 기억도 있고, 자존심도 있다.


시나리오 2: 북유럽 연합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핀란드가 "검약한 유럽"을 만들고,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은 "관대한 유럽"을 유지한다.

사실상 EU가 둘로 쪼개지는 것이다.

유로화는 유지될 수 있지만, 정치적 통합은 끝난다.


시나리오 3: 국가 연합으로의 퇴행

유럽 통합 정신을 포기하고, 각국 이익 우선주의로 돌아간다.

무역과 이동의 자유는 유지하지만, 정치적 공동 결정은 포기한다.

19세기 유럽으로 역행하는 것이다.


어떤 시나리오든 현재의 EU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67년간 이어진 유럽 통합 프로젝트가 프랑스 한 나라의 위기로 근본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


2024-2025년은 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오늘의 교훈


프랑스 위기가 유럽을 흔드는 현상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상호의존적 세계에서는,

한 핵심국가의 위기가 전체 시스템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EU에서 프랑스의 역할은 경제력만으로 측정할 수 없다.

GDP 규모로만 보면 프랑스는 독일의 67% 수준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가치는 정치적 비전과 리더십,

그리고 유럽 통합에 대한 의지에 있었다.


드골, 미테랑, 시라크는 경제 규모와 관계없이 유럽의 방향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에는 그 어떤 것도 없다.

평균 8개월마다 총리가 바뀌는 나라가 어떻게 유럽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 지지율 23%인 지도자의 말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프랑스가 내부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유럽 전체의 미래도 불투명해진다.


우리나라도 동북아시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의 정치적 안정은 지역 전체의 평화와 번영에 직결된다.

국내 문제라고 방치하면 국제적 위기로 번질 수 있다.

프랑스의 사례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다음 화 예고


8화에서는 '거리로 나선 프랑스인들의 분노 – 1,200만 명 시위가 말하는 것'을 다룹니다.

왜 프랑스에서는 정치적 갈등이 항상 거리 시위로 이어지는지,

황조끼 운동부터 연금개혁 반대까지 프랑스 시위 문화의 뿌리를 탐구합니다.


시위가 민주주의인가, 아니면 민주주의의 위기인가?


프랑스 시위 공화국의 문화적 DNA를 분석해봅니다.


[프랑스 : 복지국가는 죽지 않는다]

프랑스가 선택한 잘못된 길

1부 7화. 프랑스 위기가 유럽을 흔든다 – EU 통합의 핵심 축 동요

(이 글은 CNN "French lawmakers vote to oust prime minister"(2024.12.05), BBC "French government collapses in no-confidence vote"(2024.12.04), Le Monde "French government toppled in historic no-confidence vote"(2024.12.04), Le Monde "French Prime Minister Bayrou hands in resignation"(2025.09.09), Politico "Sébastien Lecornu and the world's other shortest political careers"(2025.10.06), Reuters "French risk premium hits 12-year high"(2024.11.27), Bloomberg "Macron's Approval Rating Falls to 23%"(2024.11.10), Trading Economics "France Government Debt to GDP"(2025), CountryEconomy "Germany vs France GDP"(2024), World Government Bonds "France 10 Years vs Germany 10 Years Bond Spread"(2025.12.29), Borsa Italiana "Bond Spread France OAT-BUND 10 years"(2025.12.22)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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