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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에서 찾은 평안함

한국에서의 긴장감은 내려놓음

by Hey James

말레이시아에서는 긴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고, 바닥이 더러울까 봐 만지지 못하게 하고,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까 봐 추워지면 밖에 나가지 않았고, 어딘가를 갈 때면 길이 막히지 않을까, 주차가 어렵지 않을까를 먼저 걱정하고, 뭔가를 하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부터 따져봤습니다.


체감되는 인구 밀도가 우리나라의 1/10 수준입니다. 큰 상가나 고급 호텔, 브런치 맛집에 가도 사람이 적습니다. 가격도 저렴하고요. 오늘은 결혼기념일이라 아내와 쿠알라룸푸르 소피텔의 런치 뷔페를 먹었는데 인당 3만 원도 안 나왔습니다. 6세 미만은 공짜입니다. 한국 소피텔의 런치 뷔페는 인당 13만 원이라고 하네요.


퀄리티는 한국과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고요. 50개 테이블이 넘는 곳인데 4개 테이블만 채워져 천천히 구경하며 음식을 담았습니다. 음식은 다 못 먹어볼 정도로 종류가 많고 모두 맛있었으며 서비스는 훌륭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두 배 가격이라 해도 인기가 많아 오픈런 대기를 했을 것 같습니다.


종종 가는 야외 브런치 맛집이 있는데, 파스타와 베이커리, 브런치 모두 맛이 있고 서비스도 좋아서 한국에서는 이 정도라면 가격은 두 배에 무조건 대기가 있을 법한데도 항상 테이블은 절반만 차 있습니다. 이렇게 저렴한데 사람이 적어서 이 나라 자영업자나 호텔의 경영을 걱정해야 하나 싶지만, 아마도 저렴한 인건비, 식자재, 기름값, 임대료 등이 이런 환경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길거리든 쇼핑몰이든, 심지어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마주치는 사람이 적습니다. 넓은 길에 우리 가족밖에 없으니 아이들이 좀 시끄럽게 해도, 뛰어다녀도, 킥보드를 타도 적당히 내버려 둬도 됩니다. 건물 바닥은 대부분 대리석이고 매일 청소되어 우리 집 거실만큼 깨끗해 보입니다. 아이들이 반바지를 입고 뛰어다니다 넘어져도 상처 나는 일이 없고, 아들이 땅바닥에서 뒹굴며 브레이크댄스를 춰도 됩니다.


일 년 내내 여름이니 비만 안 오면 항상 야외 활동을 할 수 있고, 아파트마다 수영장과 놀이터, 산책로, 헬스장이 있고 항상 한산한데 무료라서 매일 수영하고 놀이터에 가고 킥보드를 탈 수 있습니다. 특히 저희 단지의 수영장은 호텔 수영장보다 넓고 물이 깨끗하며 키즈풀과 성인풀에 분수가 나오는 물놀이터까지 있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우리 식구뿐일 때도 많습니다. 이쯤 되면 ‘뭐 이런 나라가 있지?’ 이해가 안 되기 시작합니다.


한국의 집보다 좁혀 오긴 했지만, 수영장·헬스장·놀이터·여러 편의시설이 있는 주상복합 단지의 방 4개짜리 집인데 월세가 80만 원이고 관리비는 집주인이 냅니다. 전기료와 기름값이 싸고 난방이 필요 없습니다. 한국에서 마지막에 살았던 보라매타운이 참 살기 좋긴 했지만, 방 4개가 보증금 2억에 월세가 300만 원이었고 여름·겨울 관리비가 100만 원 가까이 되었어요. 가성비 있는 동네와 단지를 고르긴 했지만 고정 지출이 상당히 줄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한국의 겨울이 참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자주 감기에 걸리고, 건조해서 아토피가 심해지고, 찬 공기를 마시면 기침을 하니 밖에 덜 나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육아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습니다. 오늘은 얼마나 추울지, 난방은 몇 도로 할지, 이번 달 난방비는 얼마나 나올지, 내일은 눈이 올지 그런 것들을 신경 썼고요. 우선 추워지면 몸과 마음이 더 긴장했습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여름보다 덜 습하고 아침저녁에는 적당히 선선해서 여름옷 외에는 전부 버리고 왔습니다. 태풍이나 지진이 없고 정치가 안정적이며 전쟁의 위험이 거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라고 불리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기 때문에 하루에 몇 번 모스크 기도 소리가 들리는 것과 술이 비싸고 유흥 문화가 없다는 점 외에는 종교적인 부분이 체감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유치원 보내려면 선택지가 좁거나 대기를 해야 하는데, 쿠알라룸푸르에는 다양한 로컬 학교, 사립학교, 국제학교 유치원 선택지가 있습니다. 인기 있는 몇 곳을 빼면 대기 없이 학기 시작할 때 바로 입학할 수 있고요.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국제학교 유치원도 월 30만 원에서 150만 원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고 각각의 장단점이 있어 고민이 됩니다. 각 학교의 커리큘럼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셔틀이 잘 되어 있는지, 밥이 잘 나오는지, 방학이 얼마나 긴지 이런 것들을 비교하게 됩니다.


로컬 학교를 보내도 되지 않을까도 생각하는데요, 여기는 거의 공짜에 가깝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안 쓰게 되더라고요. 학교 폭력만 없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교육에 대한 긴장감이 낮아졌달까요. 영어학원, 수학학원은 못 봤고 단지 내에 음악, 미술, 베이킹 학원이 있어 가끔 보냅니다.


한국에서는 빠르게 걷는 습관이 있었는데, 여기 와서는 쪼리 신고 터덜터덜 걸어다닙니다. 한국에서는 어르신들과 많이 마주쳤는데, 이곳에서는 청년들과 아이들을 많이 마주칩니다. 한국에서는 테슬라를 타고 다녔는데 헤이딜러에 팔고 와서는 한국 가격의 1/3 수준인 그랩 택시를 타고 다닙니다. 이곳엔 슈퍼카가 없고 벤츠 정도가 고급차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페로두아·프로톤이라고 하는 로컬 브랜드의 오래된 모델을 타고 다닙니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물이 한국보다 덜 깨끗해서 샤워기 필터를 사용하면 며칠이면 누렇게 변합니다. 물갈이를 해서인지 온 식구가 감기와 장염을 한 번씩 앓았습니다. 7~10월은 헤이즈 기간이고, 이때 인도네시아의 숲을 태운 연기가 날아와 공기가 탁한 편입니다. 이틀에 하루꼴로 비가 내리고 꽤 높은 확률로 천둥도 칩니다. 그런데 보통 한 시간 이내로 그치고 해가 뜹니다.


현지인의 영어 문법이나 발음이 독특해서 안 들릴 때가 있습니다. 쿠팡 대신 쇼피를 사용하는데 택배는 보통 3~5일 걸립니다. 다음 날 오는 물건도 있지만 선택지가 좁아요. 횡단보도가 잘 없고 길을 건널 때 보통 무단횡단을 합니다. 운전석이 우측이라 운전하려면 적응이 좀 필요합니다.


그런데 저희 가족에게는 이런 단점들이 아주 사소하게 느껴집니다. 긴장감 없이 살아도 된다는 점은 삶을 정말 평안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인구 밀도, 낮은 물가, 깨끗함, 따뜻한 날씨가 만들어주는 평안함은 정말 큰 가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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