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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한자몽커피 Oct 08. 2024

나는 어쩌다 컴공을 전공했는가 (통합 5편)

대학원 준비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험난했다. 다시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그렇게 3학년이 잘 끝나나 싶었는데, 변수는 3학년 겨울방학 때 발생했다. 조기졸업할 학점은 다 만들어 놨는데... 지금 상태론 대학원 지원해도 합격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겨울방학 때 입시를 준비하려고 보니 탑3 학교의 입시가 모두 끝나서 지원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가문제였다. 대학원을 가야지 해놓고, 가려는 학교들의 입시요강도 들여다보지 않다니.. 나는 너무 안일했다.

  그렇다고 3년만에 조기졸업을 강행하면 난 백수 상태로 반년~1년을 대학원 준비를 해야 됐다. 돌아보면 '조기졸업을 해야지'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지, '조기졸업한 다음 대학원은 어찌 준비할건지'에 대한 계획은 없었다. 충분한 계획이 없는 끈기와 투지는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쓰고, 시간은 시간대로 날라가는 악수가 되었다. 결국 나는 조기졸업을 포기하고 4학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1년은 왜 달린거지 하는 허무함과 함께)


  그런데 3학년 때 4학년 과목을 땡겨들었더니, 4학년 때는 할 게 없었다. 어지간한 전공과목은 다 들은 상황. 그래서... 교양 재수강하면서 대학원 준비를 했다. 어찌 보면 이렇게 공부할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문제는 대학원의 문턱이 엄청 높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내가 있던 학부는 보통 수준인데, 내가 가려고 노린 대학원은 국내 탑3 공대였으니까... 더 문제는 이걸 일찍 깨닫지 못하고,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깨지고 나서 몸소 깨달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다들 어디서 정보를 보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다음에 대학원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큰 카페가 있었다. 각 학교 별로 면접 때 어떤 문제가 나왔는지 대략적인 경향이 있었는데... 난 그 때 자신감이 하늘을 찔러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이 정도 문제면 합격은 무난하겠구만' 했다.

  사실 문제만 보면 크게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검색할 수 없는 환경에서, 교수님들 앞에서 긴장한 상태가 되면 어지간히 침착하지 않고선 생각도 안 나고, 대답도 어려워진다는 것이었다. 이 교훈을 나는 여름방학 때 면접들을 진행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 A: 두 과목 정도에서 대답을 잘 못했는데, 탈락 통보 받음

  - B: 이전 편에서 말한 컴퓨터 구조 과목과 다른 과목에서 교수가 "이 것도 공부 안하고 뭐했나" 소리를 듣고, 탈락 통보 받음

  - C: 점수가 애매하다고 통합과정 대신 석사과정으로 합격


   A/B가 탑3 중 두 군데였는데 탑학교는 둘 다 떨어졌고, C도 석사과정으로 붙으니 마음이 붕 떠버렸다. 그래서 C는 합격하지 않은 걸로 생각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2학기 때 다시 대학원 입시에 올인했다.

  나의 새로운 대학원 입시 전략은 다음과 같았다.

  - 전공책 전체를 읽으면서 내용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것

  - 여름에 공부 안했다고 혼난 과목을 친구의 도움으로 독학할 것


  그 전에는 솔직히 시험 대비로 PPT 같은 강의 자료만 달달 외우는 정도로 요행이 통했던 것이다. 내가 대학교만 졸업하고 회사를 갈 요령이었으면 이게 요행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는데, 탑 학교들에서 대학원 면접을 보고 벽을 느끼고 오니 '요행은 통하지 않는구나' 하고 깨달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게, 교수 입장에서는 얘가 얼만큼 아는지 비틀어서 질문하는게 용이했다는 것이다. 나는 여러 과목을 다 알아야 하지만, 교수님들은 보통 자기가 담당한 과목에 대해서만 질문하면 되는 입장이다 보니 학생은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대답에 따라서 교수님의 관심 분야가 됐든, weak point로 의심되는 포인트가 됐든 기본적인 개념 뒤에 따라오는 후속 질문은 무궁무진해질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컴퓨터구조에서 pipeline hazard를 물어보면, 'pipeline hazard는 instruction이 매 clock마다 채워지지 않아서 효율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와 같은 답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 개념이니까. 하지만 교수는 후속 질문을 얼마든지 비틀 수 있다. hazard의 종류를 묻든, hazard의 예시를 묻든, hazard가 일어나는 이유를 묻든, hazard를 mitigation하는 방법을 묻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식을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도움이 안됐다. 일단 어떻게 비틀지 예측이 쉽지 않고 (물론 경우에 따라 학부 수준에서 다루는 수준이 한정적일 때는 있지만), PPT 강의 자료 정도만 읽었다면 후속 질문을 받았을 때 갑자기 머리가 굳어버릴 가능성도 생기는 것이다.

  여름방학 때 한 번 경험이 있었으니, 2학기 때는 원서를 팠다. 연습 문제는 못 풀어도, 적어도 개념을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처음에는 책의 텍스트를 일일이 읽으려니 지루해서 쉽지 않았지만, '여름방학 때처럼 또 면접 가서 털리고 올래?' 라는 마음의 소리 덕분에 어떻게든 원서를 읽어나갔다.


  원서를 읽는 방법은 아주 효과가 있었다. A라는 개념이 있으면 A의 의미, A가 생기는 이유, A의 파생 개념 등등을 폭넓게 이해하고 있으니.. 2학기에 본 면접들은 결과가 좋았다.

  - D (여름 때 A or B): 일단 날 힘들게 했던 교수님이 면접에 없었고, 대답도 무난하고 추가 질문도 잘 대비했다. 이 학교는 공식적인 발표일은 면접 후 몇 주 뒤이지만, 학생에게 1차적으로 합격통보를 하는 건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월요일날 면접을 봤으면 그 주 금요일 쯤 연락을 주는)

  발표 당일 저녁이 되도록 연락이 안 와서 매우 쫄려하고 있었다. (보통 합격 연락이 없으면 불합격이었음). 기분을 추스리고 학과사무실에 직접 전화하니 "결정이 늦게 나서 연락을 아직 못 돌었다. 당신은 합격이다" 해서 매우 신났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조금 기다리니 메일로 합격 메일이 왔다.)

  - E (Rising star로 떠오른 특수대학원): 전공 내용을 별로 물어보지 않았다. 여긴 별 걱정을 하지 않았고, 합

격했다.


  D는 탑3중 하나였고 등록금 및 기숙사비, 그리고 생활비는 학교에서 전부 지원되는 조건이었다. 반면 E는 기숙사는 필요없지만 사립이라 등록금이 비쌌다 (어찌저찌 등록금 일부 지원이 되는 조건이기는 했지만.) 하지만 뉴스에서도 유망한 분야로 떠오르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고민이 많았다.

  길게 고민했지만, 나는 결국 D를 선택했다. 생활비 문제도 있긴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에서 취업 시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건 학교의 네임벨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크게 틀리진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D를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선택은 후회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대학교 4년과 대학원 입시는 끝이 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학원 생활은 찬란할 줄 알았다. 연구 주제를 선정하면서 방황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스레드에서 작성한 나는 어쩌다 컴공을 전공했는가 13-16편을 내용 추가하고 다듬어서 게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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