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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실섹시 Oct 06. 2024

30대의 삶 - 26

셀프 리워드에 관하여

저번주는 퐁당퐁당 휴무가 있는 주간이었다. 그러나 자영업자에게 빨간 날은 무의미하다.

공휴일이었던 저번주 화요일, 목요일은 이상하게 평상시의 빨간 날 보다 더 많은 스케줄이 몰렸다. 타이트한 스케줄을 쳐내고, 밀렸던 사무 업무를 보느라 업장 마감 시간을 한참 지나서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뿌듯한 기분과 동시에 보상받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보상심리는 주로 먹고 마시는 것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그때그때 섭취 욕구가 치솟는 메뉴를 탐하는데 그날은 하필 삼겹살이 먹고 싶었다.


혼자서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떠오르면 시켜 먹으면 그만이지만, 삼겹살은 시켜 먹어서는 도저히 내가 인지하는 그 맛이 나질 않는다. 또, 혼자 산지 몇 년이 지나니 이제는 배달 음식이라면 넌더리가 난다. 다 먹어도 남아돌아 처치곤란인 각종 잔반부터 무더기처럼 쌓이는 일회용기들, 배달음식 특유의 혀를 코팅시키는 싸구려 조미료 맛, 무엇보다 요즘 종류를 막론하고 최저 배달 금액은 혼밥 가용범주를 넘어도 한참 넘으니 선뜻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왜 둘이서 6만원 나오면 잘 먹었다 싶은데 왜 혼자서 2만원이 넘는 음식을 먹는 건 사치스럽게 느껴질까. 그렇다고 삼겹살을 혼자 먹으러 가자니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 집 앞은 그 유명한 핫플 방이 먹자골목인데 혼자서 삼겹살 집에 간다? 가더라도 문전박대를 당하겠지.

바야흐로 아이스크림값이 만원인 시대. 기본 메뉴값이 만원. 최소주문은 13000원. 뭐 좀 추가하면 2만원. 배달비 합치면 3만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지극히 계획적인 편이지만 놀 때는 급 약속을 추구하는 편이다. 뭔가 노는 스케줄을 미리 잡아두면 붙잡히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계획적으로 노는 것은 묘한 죄책감이 드는데 이것은 아마 한도 끝도 없이 자생하는 자영업자의 업무들이 늘 마음에 짐처럼 여겨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웬만해서 노는 약속을 미리 잡지 않고 그때그때 연락이 오거나 했을 때 시간이 맞는 친구들과 노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7시가 넘은 시간에 집에 와서 다짜고짜 몇몇의 친구들에게 삼겹살을 먹자며 전화를 돌렸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7시가 넘은 공휴일에 대부분은 이미 식사를 마쳤거나 한참 먹고 있을 시간이니까 말이다.


약 10번 정도를 거절당하고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더 예민해지기 전에 찬장과 냉장고를 뒤져서 라면을 끓이려 물을 올렸다. 멍하니 물이 끓기를 기다리다가 문득 울화가 치밀었다. 남들 놀고, 먹고, 마시고, 잘 시간에 일찍부터 전쟁같이 일하다가 집에 왔는데 내가 원하는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처절한 기분이 들었다. 난 무엇을 위해 일하나 싶은 기분이랄까.


대충 끓인 라면에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대충 별로 보고 싶지도 않은 유튜브를 켜놓고 음식을 입에 구겨 넣었다. 유튜브를 보면서 음식을 먹으면 음식 자체의 맛을 별로 음미하지 않게 되는데 이렇게 대충 때우는 식의 식사를 할 때만큼은 좋은 방법이 되고는 한다. 배고프면 예민해지지만, 적절한 포만감이 들면 사람은 이성적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충의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통에 식기를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안락의자에 털썩하며 몸을 던졌다. 그리고 천장을 보며 우울한 기분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우울할 때마다 채택하는 방식. 셀프 인터뷰를 시작했다.


- 나는 왜 우울한가.


문득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던 짤이 떠올랐다. 예전에 흥행했던 드라마의 일부가 편집된 내용이었는데, 약 7~80년대의 지극히 평범한 부부가 다투는 모습이었는데 싸움의 물꼬가 여자가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냐며 묻는 질문에, 남자가 고기 먹는 날이라고 대답했다가 트였다.


나는 소위 말하는 '헬창'이기도 하지만, 운동을 하기 한참 전인부터도 나는 고기나 생선이 없는 식사를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러나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고기 먹는 날은 월례 행사로 여겨질 만큼 특별한 날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떠오르니 현재 나의 보상심리 체계가 잘못됐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 나의 보상체계는 무엇인가.


나는 평일에 눈코 뜰 새 없이 일한다. 새벽부터 일하러 나가고 느지막이 집에 들어오는데 그 와중에 도시락을 싼다. 내 도시락은 주로 닭가슴살과 밥, 그리고 김치이다. 그렇게 한주를 보내고 주말에 먹고 싶은 것과 술을 마시며 한주의 해후를 푸는 것이 나의 셀프 리워드이다. 그리고 한 번씩 필요한 것들을 큰 고민 없이 구매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후하게 베푸는 것, 비교적 좋은 집에 사는 것, 등 나의 보상체계는 주로 '소비'였다.


이러한 셀프 모니터링 끝에 닿은 삶의 의문.

왜 나의 보상체제는 소비밖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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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아니 평생을 자본주의의 환경에서 노출되어 있다 보니 늘 삶의 기쁨은 소비로 직결되어왔다.

소비를 위한 재화, 즉 돈은 곧 기쁨과 직결되는 것으로 학습한 것.

인간에게 집단(무리)은 삶의 필수 요소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집단의 규모는 곧 힘으로 규정되곤 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원하는 누구와도 집단(무리)을 형성할 수 있는 매체들이 발달되었다. (그것이 일방적이던 양방이든 간에) 재화가 곧 기쁨으로 직결되도록 학습된 사회에서 도래한 첨단 사회. 우리는 그 사회 내에서 형성하게 된 불특정 다수와의 관계를 더욱 수평적으로 만들고 싶은 욕구와 부딪히곤 한다. 나도 모르는 새에 학습하게 되는 궁금하지도 않던 타인의 삶에 대한 정보들 덕분에 나는 현재에 누리던 삶의 real luxury들 혹은 내 삶의 풍족함들의 가치를 퇴색시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릇되게 학습한 보상체제, 그리고 손바닥만 한 첨단기기가 방출하는 도파민과 정보에 좌절하여 현생과 존재하지 않는 가상 세계를 비교하며 낙담한다. 실타래처럼 얽힌 여러 관계 소통 플랫폼 속 숫자로 나타내는 개인의 가치는, 현실 세계의 내 삶에서 얼마나 실질적으로 유의미하게 작용하는지를 헤아려 볼수록 더 처참해질 뿐이다.


내 삶의 진정 기쁨이 소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real luxury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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