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역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겁니다. 생각보다 감정이 앞서고, 머뭇거림보다 표현이 먼저였던, 조금 서툴렀지만 그래서 보석처럼 반짝이던 때. 감정을 다 담지 못해 엉뚱한 방식으로 쏟아내던 마음, 상처받는 두려움보다 진심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더 컸던 철부지.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분명 더 많이 알고, 더 잘 판단하고, 더 조심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된 나, 그때보다 성숙하다고 느끼는 지금의 나는 왜 그 시절의 내가 자꾸만 그리워질까요?
나이를 먹고, 관계를 겪으며 우리는 세상을 조금씩 알아갑니다. 그런데 그 경험을 통해 마음이 굳어지고, 차가워지고, 방어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경우도 많죠. 상처와 이별, 그리고 실패를 통해 우리는 조심하는 법을 배우지만, 이는 한편으론 두려움이 많아지고 가능성이 좁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겁쟁이가 돼버린 어른은 진심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은 진지해야 하고, 조심스럽게 말할수록 더 깊고, 어른스러운 감정이라고 믿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종종 형식을 진심의 깊이로 오해합니다. 솔직한 감정은 너무 취약해 보이고, 쉽게 상처받을 수 있으니까요. 격식은 그런 불안을 감추는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죠. 하지만 점점 정교해지는 형식과 달리, 그 안의 감정은 갈수록 엷어집니다. 그리고 의례적인 말과 행동을 우리는 성숙함이라 믿으며 살아가죠. 어쩌면 어른들은 식어버린 마음을 감추기 위해 격식이라는 가림막을 사용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아이들이 던지는 가벼운 한마디, 순수한 시선, 엉뚱한 질문 속에서 우리는 때로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어른들이 복잡하게 돌려 말할 때도 꺼내지 못한 진심을 아이는 단 한 문장으로도 건넬 수 있죠. 아이들의 마법 같은 이 능력의 비밀은 가벼움에 있습니다. 가벼움은 단순하고 담백하게 깊이를 담아내는 방식이죠. 때론 깊은 말보다 자연스러운 말에서 진심은 더 잘 드러나기도 합니다.
생화는 시들지만, 조화는 시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화를 선택하곤 하죠. 하지만 이는 살아 있는 감정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식어버린 마음으로 어른이 된다는 건, 조화를 생화라 믿으며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보기엔 말끔하고 흐트러짐이 없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향기도 없고, 온기도 없죠. 겉은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무감각하고, 삶은 점점 더 무기력해집니다.
진짜 성숙함은 세상을 많이 알아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잘 알기에 다시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아픔에도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심스럽지만 차갑지 않을 수 있고, 담백하게 진심을 담아내기 위해 마음을 가볍게 비워낼 수 있는 담대함을 지키려 애쓰는 것. 그것이 진짜 어른의 마음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한때 솔직했고, 다정했고, 가볍게 웃고, 쉽게 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들어도 다시 피어나는 생화처럼 지금 우리 안에도 아직 숨 쉬는 감정들이 살아있음을 믿습니다. 노을빛에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그때의 나를 그리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