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점령하는 힘

언어의 식민성

by 김지혜

25회 Cultural Talk For Diversity는 탈식민화(Decolonization)를 주제로 진행되었다. Pavle Luger는 식민 통제의 진화 과정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다양한 식민 통제의 형태를 깨닫게 해 주었다. 이 논의는 단순히 과거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식민성이 오늘날 어떤 방식으로 개인의 사고와 습관 속에 남아 있는지를 성찰하는 자리였다.

과거 식민 지배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는 군사력이었다면,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언어와 종교였다. 군사력은 영토를 점령하는 힘이지만, 언어와 종교는 인간의 세계 인식 체계를 재구성하는 힘이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세상을 어떻게 구분하며, 무엇을 ‘정상’으로 간주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고의 틀이다. 언어가 사라질 때 우리는 단어 몇 개를 잃는 것이 아니라, 그 공동체가 축적해 온 적응의 지식과 기억의 집합을 잃는 것이다. 구전 역사, 세대의 계보, 세대를 통해 전해지던 지식들, 번역될 수 없는 의례와 공동체의 의미들이 함께 사라진다. 이를 TEK(Traditional Ecological Knowledge)라 하며, 이는 지역 어휘 속에만 저장된 생태적 데이터이기도 하다.

식민 통치에서 지배 언어의 강제는 기존 세계관을 약화시키는 전략이다. 기존의 역사 해석과 정체성 이해가 흔들리고, 지배자의 가치가 ‘표준’이 된다. 프랑스는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프랑스어를 문명화의 언어로 설정하였으며, 영국은 인도에서 영어 교육을 통해 식민 행정 엘리트를 양성하였다. 행정, 법률, 교육, 고급 직업이 지배자의 언어로 운영될 때 그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권력 접근의 열쇠가 된다. 그 결과 기존 토착 엘리트 구조는 붕괴되고, 새로운 식민 엘리트 계층이 형성되며, 내부 분열이 발생한다. 아이들이 식민 언어로 교육받을수록 부모 세대와의 문화적 거리는 벌어지고, 구전 전통과 토착 지식 체계는 점차 약화된다. 이는 언어 교체를 넘어 문화적 기억의 재편을 의미한다.

종교 역시 강력한 통제 장치로 작동하였다. 종교는 무엇이 선과 악인지, 어떤 삶이 올바른지, 권위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규정한다. 식민 권력이 새로운 종교를 도입할 때 기존 신앙은 ‘미신’으로 전락하며 전통 지도자의 권위는 약화된다.

오늘날 영어는 새로운 제국의 언어로 기능한다. 영어는 군대와 함께 우리를 지배하기 위해 오는 것은 아니지만 고등 교육, 글로벌 기업 취업, 디지털 접근, 학술 연구의 관문으로 작동한다. 영어는 현대 세계를 향한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영어 능력은 곧 경쟁력으로 인식된다. 많은 부모가 막대한 비용을 영어 교육에 투자한다. 영어를 잘하면 더 많은 기회에 접근할 수 있다는 믿음은 단순한 개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현실을 반영한다.

이민 1세대의 경험은 이러한 구조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현지어 발음 때문에 무시를 당하거나 억양만으로 이방인임이 드러나는 경험은 깊은 상처로 남는다. 그 결과 많은 부모는 자녀에게 차별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국어를 가르치지 않기로 선택한다. 그렇게 한 세대 만에 부모의 고향 언어는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중언어와 다중언어 구사는 강력한 자산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문제는 언어 학습 그 자체가 아니라, 특정 언어만이 ‘상위’로 인식되는 위계 구조이다. 지역 억양은 조롱의 대상이 되고 미국식 억양은 선망의 대상이 되는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내면화된 문화 위계의 표현이다.

2020년 제77회 골든 글로브 시장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감독은 “자막이라는 1인치 정도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자막이라는 작은 장벽을 넘으면 더 넓은 세계가 열린다는 뜻이다. 한국어에는 통역이나 번역으로 완전히 옮겨지지 않는 단어들이 존재한다. 정, 눈치, 애교, 반찬과 같은 단어는 그 언어와 문화 안에서만 온전히 이해되는 맥락을 지닌다. 이는 한국어만이 아닐 것이다. 그 국가, 그 지역에서만 존재하며 다른 언어로 해석되기 어려운 단어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단어의 존재는 언어가 곧 또 다른 세계임을 보여준다.

또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표현 수단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을 확장하는 일이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정체성을 기반으로 세계를 넓혀가는 과정이다. 탈식민화는 영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를 어떤 가치로 인식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무엇을 선망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하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이번 세션을 통해 식민지는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는 다양한 형태의 지배방식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탈식민화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의식에 대한 질문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무엇을 보편화하고 싶어 하는지 돌아보는 순간, 우리는 나의 정체성과 또 다른 형태의 식민성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자각이야 말로 무엇으로부터 나는 탈식민화를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출발점이다.


김지혜 (Jane Jihye Kim)

글로벌 역량 강화/문화간 이해/외국인 한국 사회,비즈니스 문화 이해(영어진행)

퍼실리테이터/DEI trainer /영어 통역사/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한 문화 토크 커뮤니티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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