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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이 Nov 28. 2023

70시간의 단식일기

5화 진정한 위너들

진정한 위너들은 아마 예상했겠지만 그녀와 단식을 함께했던 S와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녀는 3일 동안 2.3킬로 정도를 감량했고, 보식 이후 2킬로 정도 빠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운동과 1일 1식, 그리고 당(과당, 액상 과당 등 설탕 첨가물)을 끊은 남편은 일주일 만에 4.5킬로가 빠지는 기염을 토하며 급속도로 들어가는 뱃살에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살이 빠지는 속도가 나고 배가 들어가는 게 눈에 보이니 신이 나는지 연신 그녀 앞에서 결혼 전에 입던 앞 자크가 채워지지도 않았던 바지가 이제 들어간다며 자랑을 했다.

또 한 명의 위너는 S였다. S는… 독한 여자였다. 아버지 생신 때도 그 많은 음식을 두고 버텼으니 말이다. 소고기 야채죽 하나에 무너진 나와는 차원이 다른 단단함을 보여준 그녀는 5일 만에 단식을 끝냈고, 순서대로 차근히 보식을 끝마쳐 7-8킬로를 감량하며 목표를 달성했다고 했다. 한 술 더 떠 S는 보식을 끝낸 뒤 개인 트레이너에게 PT등록까지 해서 운동을 몸에 습관화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은 보식이 거의 없다시피 일상식으로 빠르게 돌아왔지만 그래도 잘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아주 큰 한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건 ‘술’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녀와 그녀의 남편 둘 다 2주 이상 술을 입에도 안 댄 건 오랜만이었는데 그것도 다이어트에 한몫을 한 게 분명했다. 그녀의 남동생의 말에 의하면 맥주는 ‘마시는 빵’이었고 소주도 칼로리가 상당하다고 했다. 문제는 술 자체보다 술을 먹기 시작하면 시작되는 안주의 패턴이었다. 닭발, 쭈꾸미 볶음, 치킨, 피자… 술과 궁합이 맞는 안주들은 넘쳐났고 회 같이 그나마 건강한 안주?로 시작해도 끝은 꼭 라면이나 아이스크림으로 끝내게 하는 것이 바로 알코올의 힘이었으니까.

사실, 먹는 게 낙이고 저녁에 술 한잔 하며 담소를 나누던 것이 남편과 그녀의 유일한? 취미이자 대화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데이트를 시작했고, 그렇게 신혼의 밤들을 보냈고, 그렇게 육아에 지친 날들을 의지하며 버텼고.. 그랬다. 그것은 일상이었고 끊을 수없는 패턴이었고 유일한 비상구였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사실 그녀의 건강을 조금씩 좀먹고 있었다.

그렇게 연애하며 4년간 10킬로가 쪘고 임신하고 20킬로가 쪄서 도합 30킬로가 불었었던 그녀의 몸이었다. 출산 이후 10킬로가 빠졌지만 아직도 예전에 신랑을 막 만났던 때에 비하면 20킬로가 불어있었기에, 어딜 가도 왠지 자신이 없고 움츠러들던 그녀였다. 간헐적 단식을 통해 4-5킬로 정도를 추가로 감량하긴 했지만, 그 이상은 뭘 해도 요지부동이었던 몸무게였다.

“불행 가운데

혹 습관이 만들어낸 불행은 없을까요?

제 인생엔 타자와 외부로부터 온 불행도 있지만

분명 나 스스로 만들어낸 나쁜 습관으로 인한 불행도

많았습니다. 무심히 쌓은 좋은 습관이 행운과 성공을

불러온다는 것을 사람들은 압니다. 마찬가지로

그저 대수롭지 않은 습관일 뿐이라 변명해 왔던

나쁜 버릇이 계속 쌓이면 결국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초래합니다. “

- 한동일의《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중에서 -

문득, 어쩌면 그렇게 그녀는 좋은 습관의 문을 여는 것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내 몸뚱이밖에 없어서 시작했던 단식은, 사실 그렇게 내 몸부터 한 발짝 시작했었어야 했던 것일지도. 그녀가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소처럼 입을 우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이제 시작이야.

조금 뿌듯해진 마음에 기지개를 쭈욱 켜며 웃음을 씩 짓는 그녀의 앞에 S의 톡이 무심한 듯 울렸다.

“언니, 언니 이번 단식은 아무래도 너무 아쉽게 끝난 것 같아. 담에는 보식까지 제대로 해보자고~! ”

이런, 진짜 제대로 걸린 것 같은데.라고 하는 그녀의 머릿속에 다음번 단식은 왠지 저만치 열 걸음 더 멀어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