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현실로 돌아오는 소리.
나는 이야기거리를 가진 사람을 좋아한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눈빛과 제스쳐와 목소리와 표정과 그 모든걸 생생하게 보고 듣고 있노라면 무언가 전달되는게 있는데. 아무래도 그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세상에 타고난 이야기꾼이 있다면, 나는 들어주는데 타고난 재능이 있다. 각양각색으로 사람이 저마다의 색깔을 드러내고자 하면 그것을 알아보고 즐기는게 나의 즐거움이다.
나의 재능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잘 말하지 않는 나와 진심을 나누며 대화해본 이만이 나의 매력을 알아본다. 나는 아무에게나 관심을 쏟지도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매력을 알아봐주는 이들은 내가 그들에게 귀 귀울이기로 선택한 이들이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분명 그들이 나에게 말을 하고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들어주기를 선택하고있다는 것을 민감한 어떤이들은 알아챌지도 모른다. 그렇게 은밀하게 선택적으로 나는 매력을 풍긴다. 알아봐주는 것은 상대방의 몫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그렇게 글을 써서 자기의 마음을 온세상에, 만천하에 드러내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음악으로 그렇게 마음을 들려준다. 숨길수없는 속내. 감출수없는 마음들이 흘러나온다. 아무리 예쁘게 포장해도. 결국은 드러나고야 만다. 네가 어딜 가겠어. 가까이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것만 같다. 어떤 형태로든 뿜어져 나오는 그 에너지는 살아있어서 멈출 수없는 본능이다.
그렇게 허술하게 자신을 드러내야하는 일임에도 어떤날은 참지 못하고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다. 유명해질 수록 , 자신을 출판하고 드러낼 수록, 못나고 침잠하는 자신까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보듬어가며.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걸까.너는.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라고 생각하는 나자신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고. 무엇에 안심한걸까. 시를 읽으면 가슴이 뛴다. 여전히. 시인의 화법은 감정선의 추상화 같아서, 듣기위해서는 에너지를 써야한다. 그래서 멀리하는 나의 중독.
띠띠띠띠- 번호키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엄마, 다녀왔습니다-” 하는 내 사랑이 돌아오는 소리와 함께
퍼뜩 - 이세계로 후르륵 내 영혼이 돌아왔다.
이제 아이는 말랑말랑한 아기의 살냄새가 아니라
어느덧 땀냄새를 풍기는데도,
내 온 사랑이 거기에 머물러 나의 온 더듬이가 너의 말을 듣기위해 멈춘다.
“놀이터에서 놀다 오는거야?”
내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