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문과생이 기술 회의에서 살아남는 방법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 나의 전략이 되기까지

by 우주문과

입사 후 몇 달이 지나자, 회의가 점점 늘어났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였는데, 어느새 거의 매일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회의 때마다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X밴드 SAR 영상 처리가 메인이니까, 기하보정 알고리즘부터 최적화하고 정사보정은 그다음에 붙이죠.”

“다중분광 스펙트럼 분석은 밴드 조합을 어떻게 가져갈 건가요? NDVI 계산 방식도 다시 검토해야 할 것 같은데요.”

“위성 영상 전처리를 자동화하려면 대기보정부터 정규화까지 워크플로우를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또 시작이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입사 초반에 멘붕이 왔던 그 상태가,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회의에 들어가면 노트북을 펴고, 펜을 들고, 뭔가 적는 척은 하는데 정작 적을 게 없었다. X밴드가 뭔지, 기하보정이 뭔지 검색해 봐도 이해가 안 됐고, 회의 내용은 앞뒤가 연결되지 않았다.


투명인간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항상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 여기 있었나? 없었나?’


다들 열심히 이야기하고, 결정하고, 다음 액션을 정하는데 나만 그 과정에서 완전히 빠져 있는 느낌이었다. 누가 나한테 “오늘 회의에서 뭐 결정됐어요?”라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단순했다.

‘아, 이러다 진짜 회의에서 투명인간 되겠구나.’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언젠가는

“너는 회의 안 와도 될 것 같은데?”라는 말을 들을 것만 같았다.

무섭다기보다는, 그냥 억울했다. 나도 일은 하고 싶은데,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엔지니어처럼 이해하려는 걸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당장은 무리였다. 대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을 그대로 드러내기로 했다.


공학적인 질문이 아니라, 문과생의 눈으로 걸리는 부분을 묻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너무 기초적인 질문 같아서 민망했다. 하지만 모르는 걸 어떡하겠는가. 질문이라도 해야 뭐라도 남는다.


그렇게 회의 중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저기… X밴드랑 C밴드가 정확히 뭐가 다른 거예요?”

“SAR 영상이 광학 영상이랑 뭐가 다른 건가요?”

“기하보정은 왜 하는 건데요? 안 하면 안 돼요?”

“정사영상이랑 일반 영상은 뭐가 달라요?”

“NDVI가 식생지수라는 건 알겠는데, 이걸 왜 계산해야 하는 건가요?”


질문을 던지는 순간, 회의실 분위기가 잠깐 멈췄다.

‘저것도 모르나?’라는 표정을 마주할까 봐 걱정했는데, 의외로 반응은 달랐다.


엔지니어들은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런데 설명은 처음과 달랐다. 기술 그 자체를 설명하기보다는, 왜 이런 처리가 필요한지, 이게 전체 시스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질문이 회의의 흐름을 바꿨다


그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내 질문이 회의를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가 회의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지점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대기보정을 하면 영상 품질이 좋아진다는 건 알겠는데, 그럼 처리 시간은 얼마나 더 걸려요?”

“이 방식으로 전처리를 하면, 나중에 다른 센서 데이터가 들어와도 쓸 수 있어요?”

“이 스펙트럼 밴드 조합으로 가면, 다음 단계 분석에는 어떤 영향이 있나요?”


질문이 바뀌었다.

단순히 용어를 묻는 질문에서, 결정의 영향을 묻는 질문으로.


그러자 엔지니어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기술 설명만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전체 프로젝트 흐름에서 이 기술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회의가 끝나면 따로 공부했다


물론 질문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회의가 끝나면 따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회의에서 나온 용어들을 하나씩 검색했다.


X밴드, C밴드, L밴드가 무엇인지

SAR(합성개구레이더)가 어떤 원리인지

기하보정과 정사보정의 차이

다중분광과 초분광의 차이

NDVI, NDWI 같은 지수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논문도 찾아봤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다. 두 번째 읽으면 조금 보였고, 세 번째 읽으면 ‘아, 이래서 이렇게 처리하는구나’ 싶었다. 점심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직원들을 찾아가 원격탐사 기초 개념에 대해 계속 물어봤다.


설명을 들으면서, 회의에서 들었던 말들이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긴 변화


몇 달이 지나자, 회의에서 들리는 말들이 전부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느 부분이 핵심이고, 어느 부분이 세부 설명인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질문도 조금씩 달라졌다.


“이게 기술적인 한계인지, 아니면 아직 선택의 문제인지 궁금합니다.”

“이 전처리 방식으로 가면, 다른 위성 데이터가 들어왔을 때도 호환되나요?”

“DEM 해상도를 높이면 정확도는 올라가는데, 그럼 용량이랑 처리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완벽하게 이해한 건 아니었다. 여전히 모르는 게 더 많았다. 하지만 최소한 회의에서 ‘투명인간’은 아니게 됐다.


문과생이 기술 회의에서 살아남는 방법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선택한 방법은 단순했다.


첫째, 모르는 걸 숨기지 않았다.

엔지니어처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문과생의 눈으로 보이는 것을 그대로 물었다.


둘째, 질문을 전략으로 만들었다.

단순 용어 질문에서 맥락 질문으로, 다시 영향 질문으로 단계를 높였다.


셋째, 회의 밖에서 따로 공부했다.

회의에서 나온 용어를 검색하고, 논문을 읽고, 강의를 찾아봤다.


넷째, 완벽하게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영상처리 전문가만큼 깊이 알 필요는 없다. 전체 흐름에서 이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만 알면 된다.


여전히 모르는 게 더 많다


지금도 회의에서는 처음 듣는 말이 계속 나온다.


“LiDAR 포인트 클라우드 데이터랑 SAR 영상을 융합하면…”

“딥러닝 기반 객체 탐지 모델을 위성영상에 적용하려면 전처리를…”


처음엔 또 모르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묻는다.


“그거 무슨 뜻이에요?”


예전에는 부끄러웠지만, 지금은 아니다.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게 더 위험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우주산업에서, 문과생으로, 기술 회의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조금 늦게, 하지만 분명히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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