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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Oct 26. 2024

Opera House

엄마

https://www.youtube.com/watch?v=giEOcBLcnfE


추천 위스키:  Highland Park 18년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장님 같으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글쎄요... 아마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요? 여행을 간다든지...“    

 

나는 담배를 물고 고개를 숙인 채 긴 한숨을 내쉬었다.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는 마치 내 과거의 안개 같았다.  그 안개 속에 묻혀 있는 건 회한과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바 주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머니 생각은 안 나요?”     


나는 미간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 동작은 마치 오래된 시계추처럼 무거웠다.     

"복잡해요. 25년 전, 엄마는 저를 두고 떠났어요.“     


바주인의 눈이 흔들렸다. 


"열네 살 때였어요. 아빠와 엄마가 이혼을 했어요. 우리 가족의 일상에서 갑자기 아빠가 사라졌어요. 엄마와 저는 하숙집을 운영하던 이모집에서 살았죠. 그러던 어느 날, 엄마까지 홀연히 사라졌어요. 마치 아침 안개처럼 조용히, 하지만 완전히 말이에요. 그 후 10년 동안 엄마를 못 봤어요.”     


처음 몇 년간은 분노와 원망이 내 마음을 지배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감정은 서서히 무덤덤함으로 변해갔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이 파도에 씻겨 부드러운 유리구슬이 되듯.     


"사실 아무 기억이 안 나요. 떠나는 그 순간, 왜 떠났는지, 그때의 장면은 통으로 제 기억에서 삭제됐어요.”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빈 술잔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바 주인이 내가 든 빈 잔에 말없이 위스키를 따라주었다.      


"나중에 이모를 통해 알게 됐어요. 엄마가 대학 후배와의 임신으로 떠나게 됐다는 걸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분노, 상처, 배신감이 들고..... 원망스러웠죠. 하지만 조금은.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그랬겠지 애써 이해하려는 마음까지. 여러 가지 색깔 물감이 팔레트에 마구 엉키고 뒤섞인 것처럼. 마음이 너무 복잡했어요“.   

  

바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요?”          


"가출을 했어요. 고시원을 전전하며 살았죠. 좁은 방, 얇은 벽, 그리고 끊임없이 들려오는 타인의 소리들. 그 속에서 저는 점점 더 작아져만 갔어요. 하지만 다행히 학교 선생님, 친구 어머니가 절 도와줬어요. 그 덕에 무탈하게 학창 시절을 보냈죠. 그분들이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셨어요. 마치 깨진 거울의 틈새를 메우는 작은 빛줄기들처럼요.”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하며 나는 내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엄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여전히 직접 마주할 용기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내 첫 독립 영화를 만들면서 무의식중에 엄마와 나의 이야기가 담기기 시작했다. 필름 속 장면들은 흩어진 내 기억들을 모아놓은 것 같았다. 영화가 완성되고 개봉을 앞둔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이 영화는 엄마에게 보내는 나의 편지였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낯설면서도 익숙했죠. 알고 보니 이모가 저의 연락처를 알려준 거였어요. 그 순간,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어요.”     


"엄마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10년 만에 듣는 엄마의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바이닐 레코드처럼 살짝 긁힌 듯했지만, 여전히 따뜻했다.

"..... "

어색함이 공기 중에 떠다녔다. 마치 오래된 집의 먼지처럼 우리 사이를 맴돌았다.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네, 뭐... 그럭저럭요. 엄마는요?"

"나야 뭐... 늙어가지."

침묵이 이어졌다. 할 말은 많았지만,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마치 천 개의 실타래가 엉켜있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은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엄마, 저... 제가 만든 영화가 이번에 개봉해요. 와서 봐주실 수 있으세요?"

잠시 망설임이 느껴졌다.

"그래... 언제지?“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영화관 앞, 나는 초조하게 시계를 확인했다. 시계바늘은 천천히, 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였다. 상영 시작 10분 전. 엄마는 오지 않았다. 5분 전, 여전히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 마음 속 기대와 실망이 시소를 탔다.     

상영이 시작되고 15분이 지났을 때, 문이 살짝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엄마. 엄마였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실루엣만이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래된 사진 속 흐릿한 그림자 같았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다.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순간 내 마음 속은 수천 수만 가지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듯 했다.      



**



우리는 영화관을 나와 근처 카페로 향했다. 테이블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는 또다시 침묵에 빠졌다. 그 침묵은 마치 두꺼운 담요처럼 우리를 감쌌다.   

  

"영화에... 내가 나오더라.“

긴 침묵을 깨고 엄마가  말문을 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눈동자에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 그 눈빛은 마치 흐린 날 창문에 맺힌 빗방울 같았다.

"아니 왜 그 때...?"

말을 끝맺지 못했다. 

엄마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미안해...."     


미,안,해. 엄마 입에서 그 말을 듣는 순간 얼어붙은 듯 입술이 떼어지지 않았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들은 도로 삼켜져 내 기억 속 심해 어딘가로 가라앉았다.      


우리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우리 사이를 맴돌았다. 카페를 나와 각자의 길로 돌아가려는 순간, 엄마가 말했다.


"네 주소 좀 알려줄래? 가끔... 반찬이라도 보내고 싶어서."

"아니에요. 됐어요.“     


그게 엄마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완전한 화해도, 완전한 용서도, 완전한 단절도 아닌 채 시간만 흘러갔다.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그 벽은 잠시 얇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단단했다.  

   

"얼마 전, 사촌 형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이모가 돌아가셨는데 유품을 정리하다 뭔가를 발견했다고요.“     


"그게 뭐였냐면... 엄마가 그동안 보낸 편지들이었어요. 수백 통이나 되는 편지가 쌓여 있더라고요. 이모가 그 편지들을 지금까지 받아두고 계셨던 거죠. 하지만 제가 연락이 안 되니...못 받았던 거죠. 그 편지들은 마치 시간의 무게를 지닌 채 쌓여있는 것 같았어요.”     


"그 편지들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됐어요. 엄마가 그동안 얼마나 저를 그리워하고 미안해했는지를... 하지만 아직도 그 편지들을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아요. 엄마의 마음을 마주하는 게 두려운 거죠.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말이에요.“     


나는 이야기를 마치고 핸드폰을 꺼내 엄마의 사진을 바라보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그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과 함께 영원한 소녀의 미소가 공존하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그 표정 속에서, 나는 잃어버린 시간의 조각들을 발견했다.     


엄마. 우리 엄마. 어머니. 나의 근원. 나의 밭. 나의 시작. 


그 단어들이 내 입술을 스치며 나올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렁거렸다.  수 천년간 잠들어있던 화산이 깨어나는 것처럼.     


한참 나의 이야기를 듣던 바 주인이 무겁게 입을 뗐다. 

"어릴 적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뭐가 생각나요?”  

   

내 목소리는 마치 오래된 LP판의 마지막 음률처럼 희미하게 떨렸다. 

"항상 엄마 코에 제 코를 비볐어요. 그 냄새가 좋았거든요.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냄새를 기억해요. 머리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기억하는 것 같아요.”     

바 주인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냄새로 기억한다라..”     

"따뜻한 햇살 아래 피어난 들꽃 향기 같았어요. 포근하고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나는 눈을 감고 그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억도 이제는 아득해요."     


바 벽면에 걸린 오래된 괘종시계가 12시를 알리는 종소리를 냈다. 그 깊고 무거운 울림이 내 가슴을 두드렸다. 마치 시간이 나를 재촉하는 듯했다. 떠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바 주인은 내 모습을 지켜보다 조용히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따뜻한 걱정과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엄마가 강원도 고성에서 펜션을 운영하신대요. 어쩌면... 그곳에 한 번 가볼까 생각 중이에요.”     


우리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정말 잘 모르겠어요. 기억을 안고 남은 시간을 버텨낼 것인지,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영원히 블랙홀 너머로 떠날 것인지. 제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같아요. 하나는 밝지만 고통스러운 길, 다른 하나는 어둡지만 편안한 길.“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일어섰다.     


"가시게요?" 

 

바주인이 낮게 물었다.  나는 문을 향해 걸어가다 멈춰 섰다. 이 만남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마치 깊은 바다 속에 잠겨있는 것처럼 숨이 막혀왔다. 천천히 돌아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 따뜻한 포옹을 나눴다. 짧은 순간, 위로와 감사, 작별의 아쉬움이 오고 갔다. 그 순간 오랜 시간 쌓아놓았던 해묵은 감정이 그대로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바에서 나와 계단으로 올라가는 어둠 속에서,  발자국 소리만이 고요히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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