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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Oct 26. 2024

에필로그

바 주인의 회상

눈이 끊임없이 내리는 오늘, 나는 그 남자를 떠올린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 거리는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고, 제설차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폭설로 인해 바에는 손님 한 명 없이 조용하다. 나는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지만, 자꾸만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가 방문했던 그 날은 지금과는 정반대의 날씨였다.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는 맑은 하늘에 갑자기 번개가 치고, 이어서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마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듯한 그 날, 그 남자가 내 바에 들어섰다.     


그의 눈빛은 깊고 슬펐다. 마치 수천 년을 살아온 듯한 지혜와 고독이 그의 눈에 깃들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가 되어 내 귓가에 맴돌았다.  

   

때로는 처마 끝에 맺힌 빗방울 같았고, 때로는 석양에 물든 버스 창문 같았으며, 어떤 때는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모닥불 같았다. 그의 이야기는 마치 안개 속 도시처럼 아련하고 모호했지만, 동시에 선명하게 내 가슴에 새겨졌다.     


그의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 안에 잠들어 있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보았다. 나 역시 사랑했고, 상처받았으며, 그리워했다. 그의 이야기는 마치 거울처럼 내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다. 부암동에 산다던 그 남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그가 말한대로 어머니가 있는 고성에 가 있을까? 아니면 그가 예감했던 대로 조용히 블랙홀 너머로 떠난 것일까?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어디에 있든 평안하기를 바랄 뿐이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그 남자는 정말 존재했을까? 혹시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는 아니었을까?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생생했지만, 동시에 비현실적이었다. 인터넷에서도, 그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오늘 같은 날, 나는 그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안개 속에서, 번쩍이는 번개 사이로 그가 걸어 나오지 않을까 하고. 꿈결 같은 이 순간, 나는 그와의 재회를 꿈꾼다.     


우리는 어쩌면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날, 우리의 세계는 잠시 겹쳐졌고,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이 꿈이었든 현실이었든, 그와의 만남은 내게 특별한 선물이었다.    

 

사랑과 이별은 시절인연이라 했다. 모든 것은 변하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하지만 그 남자의 이야기는 내 안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인생은 덧없기에 아름답고, 이 모든 것 또한 지나가리라.    

 

그와의 만남 역시,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아름다운 시절인연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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