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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Nov 14. 2024

Nothing gonna hurt you baby

죽음의 공포와 욕망은 비례해

https://www.youtube.com/watch?v=QI8VrXkffcg




추천 위스키:  Glenmorangie Quinta Ruban



"레바논에서의 경험이 있으시다고요?" 


바 주인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나는 잔을 들어 글렌모린지 퀸타 루반을 마시고 대답했다. "네, 베이루트에 갔었어요. '중동의 파리'라 불리는 그곳에서의 경험은... 충격적이면서도 특별했죠.“     


"어떤 점에서요?" 바 주인이 물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베이루트는 놀라운 도시예요. 지중해의 푸른 물결과 현대적인 고층 건물들, 그리고 오래된 유적들이 공존하는 곳이죠. 하지만 제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폭탄 테러가 있었어요. 도시 전체가 혼란에 빠졌죠."  


바 주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정말 위험했겠어요."


"네, 정말 그랬어요. 하지만 그 속에서 레바논 사람들의 놀라운 면을 보게 됐죠."

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레바논 친구 카림을 떠올렸다. 그는 테러 다음 날, 나에게 의외의 제안을 했다.   

"너 레바논에 클럽이 있다는 거 알아?" 카림이 물었다.

"클럽? 여기에?" 내가 놀라서 물었다.     

카림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도 즐길 줄 알아. 어쩌면 너희보다 더.“   

  

그날 밤, 나는 카림을 따라 클럽으로 갔다. 폭탄 테러의 흔적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를 지나, 우리는 한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카림을 따라 우리는 모스크처럼 보이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외관은 전형적인 아라빅 건축 양식을 따랐지만, 카림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뒷문으로 나를 안내했다.     


좁은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클럽 안은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였다. 은은한 조명 아래, 향신료와 정욕의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감각을 자극했다. 벽면에는 아랍어와 영어로 된 관능적인 문구들이 그래피티처럼 새겨져 있었고, 곳곳에 설치된 벨벳 커튼 뒤로 은밀한 공간들이 보였다. 

    

중앙 무대에서는 반라의 남녀가 몽환적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고, 주변의 사람들은 마치 종교 의식을 치르듯 그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몸을 흔들었다. 바에서는 세계 각국의 주류와 함께 이국적인 약물들이 은밀히 거래되고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클럽을 넘어, 욕망과 해방의 성지 같았다. 춤추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광기와 자유가 동시에 느껴졌고, 어두운 구석에서는 여러 명이 뒤엉켜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 혼돈과 열정의 한가운데서 나는 사비나를 만났다.     


"사비나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바 주인이 물었다.

"그녀는... 놀라웠어요. 강인하면서도 아름다웠죠. 올리브빛 피부에 깊고 검은 눈동자, 그리고 야생화처럼 자유로운 곱슬머리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녀의 눈에는 슬픔과 열정이 공존하고 있었어요.“     


사비나는 나에게 레바논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살아요. 그래서 오늘을 더 강렬하게 살아가려고 해요. 여기 베이루트에는 무슬림, 기독교, 드루즈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존해요.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이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웠죠.“   

  

"개방적인 태도가 놀라웠어요." 내가 말을 이었다. "중동 국가라고 생각하면 보수적일 거라 여겼는데, 레바논은 성에 대해 매우 자유로웠죠."     

바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의 공포와 삶에 대한 열정이 맞닿아 있는 거군요."     

"맞아요. 사비나가 말했어요. '죽음의 공포와 섹스에 대한 욕망은 비례한다'고.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점점 그 의미를 알게 됐죠."


클럽의 한 구석에서 우리는 키스를 나누었고, 곧 사비나의 아파트로 향했다.    

 

그녀의 집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 포격 소리가 들려왔다. 사비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경 쓰지 마요. 우리의 일상이에요."     


섹스는 격렬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탐하고 탐했다. 멀리서 들리는 포격 소리와 대조적으로, 방 안은 사랑으로 가득 찼다. 사비나의 숨결, 그녀의 피부의 향기, 그리고 그녀의 열정적인 움직임은 내 모든 감각을 깨웠다.     


"베이루트를 떠날 때, 사비나가 말했어요. '우리는 전쟁 속에서 사랑을 배웠어. 당신의 평화로운 나라에서도 그 사랑을 잊지 마." 


나는 술을 마시며 이어 말했다. 


"사바나를 만난 다음부터 삶을 바라보는 제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고, 사랑의 의미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죠. " 

"어떻게요?"

"레바논에서의 경험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가끔,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할 때면 베이루트의 그 클럽을 떠올려요. 폭탄 테러 후의 혼돈 속에서도 삶을 향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그들처럼, 저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바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경험이 손님을 더 강하고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 같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한 모금을 마셨다. 레바논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했다. 베이루트의 아름다움과 위험, 사비나의 눈동자, 그리고 그곳에서 배운 삶과 사랑에 대한 교훈은 내 안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다음 이야기도 들려주실 수 있나요?" 바 주인이 기대에 찬 눈으로 물었다.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 궁금해지네요.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랑과 관계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나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바 주인의 진심 어린 관심이 마음이 따뜻해졌다.


"물론이죠. 사실 또 다른 특별한 만남이 있었는데... 이번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예요. 사비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죠."    


바 주인은 자리를 고쳐 앉으며 귀를 기울였다. 그녀의 눈에는 호기심과 기대가 가득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바의 은은한 불빛 아래에서, 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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