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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영 Nov 19. 2024

Affection

내가 오빠 마음에 다가갈 수 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5soixb2U6xM


출처: 민병헌 작가


추천 위스키: Redbreast 12y



"애인 있는 여자를 만나본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몰랐죠. 하지만 그녀가 숨기고 있던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났을 때는 너무 늦어버렸어요.”      


나는 레드브레스트 12년의 부드러운 향을 음미하며 잔을 들었다. 과일 향과 스파이시한 맛이 입안에 퍼지는 걸 느끼며 입을 열었다.     


바 주인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경험이 있으시군요. 어떤 분이었나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오미는... 마치 재즈 선율 같은 여자였어요.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고, 때로는 속을 알 수 없었죠.”     


나오미는 평창동이라는 안개속에서 걸어나온 듯한 여자였다. 하지만  완벽한 외면 아래에는 깊은 심연이 숨겨져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나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보았다. 황금 새장 속에서, 그녀의 영혼은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완벽한 삶이었지만, 그녀의 심장은 늘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방랑자였다.     


"처음 만났을 때 있잖아요. 우리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바 주인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이 좀 남았거든요. 제가 그걸 봉지에 싸달라고 했어요. 그때 나오미가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더라고요."  

"아, 그래요?"     

"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그런 걸 본 적이 없었대요. 남은 음식을 싸가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나 봐요. 그건 별거 아닌 행동이 관심을 끌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좀 웃기네요.“     


바 주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오미는 제 소박한 생활 방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매료됐어요. 그녀에겐 새로운 세계처럼 느껴졌대요. 화려한 삶 속에서 늘 뭔가 부족함을 느꼈던 그녀에게, 저와의 만남은 신선한 충격이었던 거죠. 제가 읽은 책들과 그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나누는 대화는 그녀에게 새로운 자유를 선사했어요."     

우리의 만남은 은밀하고 격정적이었다. 나오미는 나에게서 잃어버린 자유를 찾은 듯했고, 나는 그녀의 다양한 얼굴에 매료되었다.      


"나오미는 늘 두 개의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어요. 가족의 기대와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요. 그녀의 캐릭터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 있었는데...“     

바 주인이 물었다. “그게 뭐에요?”   

“나오미의 화려한 명품 옷 아래에는 등 전체를 덮는 거대한 타투가 있었어요.”    

 

그 타투는 커다란 나비였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화려한 나비가 아니었다. 나비의 날개는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끝은 흩어진 깃털처럼 부서져 있었다. 마치 어디론가 날아가려 하지만 그 날개가 찢겨져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몸 위에서 나비는 날개를 펴지 못하고 영원히 그 자리에 갇혀 있었다. 그 타투는 그녀의 고백이자, 세상에 대한 침묵의 반항이었다.     


“안 쓰럽네요. 나오미씨...역시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있어요. 사람은 겉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어요.”      

바 주인의 말에 나는 위스키 잔에 남은 위스키를 천천히 돌리며, 나오미와 헤어지게 된 계기를 말했다.   

   

"나오미의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안 건 한참 후였어요. 의사라더군요. 강남 유명 병원장의 아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녀의 영혼을 채워주진 못했나 봐요.“     


바 주인은 동정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그걸 알고 나서 어떻게 하셨나요?“   

  

"기분이 더러웠죠. 그리고 곧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 '너 남자친구 있었니?'라고 물었죠. 손가락이 떨렸어요. 그녀의 대답은 없었어요. 대신 며칠 후 새벽, 갑자기 죽고 싶다는 문자가 왔어요. 그 순간 저는 화가 나면서도 동시에 걱정됐어요.”     


그날 밤, 집 근처 차도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맨발로 방황하는 그녀를 발견했다. 집으로 데려와 재운 후, 아침에 우리는 마지막 섹스를 했다.     


"오빠, 정말 이게 마지막이야?"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 너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 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하지만 내 안의 혼란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목을 조르며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다. 분노와 슬픔, 욕망이 뒤섞인 채 우리는 서로를 탐했다.     


그녀의 눈에서는 공포와 쾌감이 교차했다.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붙잡고 깊숙이 밀어 넣을 때마다 그녀는 신음을 토해냈다. 내 안의 모든 분노와 배신감을 쏟아내듯 그녀의 몸을 거칠게 다뤘다.     


우리의 몸은 땀으로 젖어 서로 미끄러졌고, 방 안은 숨소리와 신음소리로 가득 찼다. 그녀의 손톱이 내 등을 할퀴었고, 나는 그녀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절정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마치 세상의 끝에 선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빛났다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배 위에다 거칠게 사정 후, 나는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제 가. 다시는 연락하지 마." 

나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미안해, 오빠. 정말 미안해. 잘 지내."     


다음 날,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문구와 함께.     

바 주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어쩌면 손님과의 짧은 시간이 그녀에게 용기를 줬을지도 모르죠. 자신의 삶을 직면하고 선택할 수 있는 힘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만남은 비밥 재즈 같았어요. 즉흥적이고,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재밌었던 거죠."     


바 주인은 미소 지으며 새 잔에 위스키를 따랐다. "그럼 이 한 잔으로 재즈 같은 인생에 건배할까요?”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바 밖으로 새어 나오는 재즈 선율이 밤공기를 감싸 안았다. 그 순간, 나는 나오미의 미소를 떠올렸다. 이상하지만 찰나의 아름다운, 우리의 짧았던 애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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