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그 밤이 꿈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듯이 반짝이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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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나는 위스키 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바 주인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
"칸이라면 영화제로 유명한 거기?”
나는 잔을 천천히 돌리며 미소 지었다.
"네, 몇 년 전 출장으로 갔었던 일이에요. 지금도 기억나요. 잊을 수 없는 밤이었어요. 우리는 영화제 행사장에서 만났어요.”
테라스에서 바라 본 칸의 해변은 꿈결 같은 풍경이었다. 지중해의 짙은 푸른빛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햇살은 파도 위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야자수들은 부드러운 저녁 바람에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크루아제트 거리의 불빛들은 마치 별들이 땅으로 내려온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어요. 너무나 아름다워서, 현실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죠. 그때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저를 현실로 끌어당겼어요.”
그랬다. 영화를 한다는 내게 진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 분이시죠? 담배 불 좀 빌려주실래요?”
검은 시폰 드레스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빛의 춤사위, 달빛에 물든 듯한 등선의 은은한 광채, 그리고 백조의 우아함을 닮은 목선. 배우 니콜 키드먼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눈빛은 날카로움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묘한 매력을 풍겼다. 미소 지을 때마다 깊어지는 눈가의 주름은 세월이 빚어낸 우아한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영화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그녀가 하품을 했다.
"솔직히 좀 따분하네요. 이런 자리 말이에요.”
그 말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낄낄 댔다.
"우리 나갈까요?"
그녀는 장난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도 영화계 사람이었나요?"
바주인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물었다.
"네, 그녀는 대형 기획사의 임원이었고, 저는 그저 작은 영화 수입사의 평직원이었죠. 우리는 위스키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고, 명함도 교환했어요. 하지만 감히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았죠.”
바 주인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영화제의 마지막 밤,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어요. '산책할래요?' 라고요.“
"우리는 밤바다를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리고...”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회상에 잠겼다.
"그녀의 호텔로 돌아왔어요. 간단히 씻고 침대에 누웠죠. 처음엔 서로 등을 돌리고 있었어요. 방 안은 고요했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죠. 그때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그녀가 몸을 돌려 제 이마에 키스했어요.”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하나가 되기 시작했죠. 절정에 이르렀을 때, 저는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걸 느꼈어요.”
바 주인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끌어안은 채 잠들었어요. 그런데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어요. 다만 침대 옆 협탁에 그녀의 샤넬 귀걸이 한 쪽이 남아있더라고요. 마치 그 밤이 꿈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듯이 반짝이고 있었죠.“
바 주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영화 같은 이야기네요. 그 후로 그분을 다시 만나셨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다시 만나지 못했어요. 귀걸이를 돌려주려고 연락도 해봤지만, 받지 않더라고요.“
바 주인은 동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귀걸이는 아직도 갖고 계신가요?" 바 주인이 물었다.
"네, 아직 갖고 있어요. 가끔 꺼내볼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저 느낌만 남아있죠.”
바 주인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쩌면 그게 더 좋은 걸지도 모르겠어요. 완벽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거죠.“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가끔은 궁금해요. 그녀에게도 그날이 특별했을까? 아니면 그저 스쳐 지나간 하룻밤일 뿐이었을까...”
바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한 참 지난 지금, 그날의 기억은 어때요?”
"달콤하면서도 쓸쓸해요. 마치 잡을 수 없는 안개 같죠."
칸의 밤은 꿈 같았다. 세계적 무대에서의 화려함과 낯선 그녀의 존재가 나를 완벽하게 압도했다. 평소였다면 감히 닿지 못할 사람과의 만남이, 그곳에서는 마치 운명처럼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진정한 '살아있음'을 느꼈다. 영화제, 그녀, 그리고 나.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그 기억은 지금도 내 가슴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마치 오래된 필름의 한 장면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나는 그날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