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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헌 Apr 16. 2016

넋두리

죄책감


그의 마음 속엔 응어리가 있다. 출처가 모호한 슬픔. 알 수 없는 죄책감 같은. 엘리베이터를 탈 때나 만원 버스에서 그는 종종 호흡하는 것에 문제가 생기곤 했다. 쓰러질 정도는 아니다. 다만 공허한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데 그는 염증을 느꼈다. 호흡기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자존감이 낮았고. 그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오래 전에 그는 자신의 문제가 낮은 자존감에 의한 약한 공황장애라고 자가진단을 내렸다. 다만 진단을 내리기엔 의학적 지식이 모자랐다.


인문계고 대신 특성화고로 진학하면서 그는 얼마동안 스스로가 쓸모있다고 느꼈다. 처음 느끼는 감정은 아니었지만 이전에 느낀 감정보다는 더 강력한 것이었다. 고무적인 성취였다. 고등학교에는 자신이 알던 사람 하나 없었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잘 된 것이었다. 한번 쯤  인간관계에 리셋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그였다. 전에 없던 친구도 사귀게 되었고, 열정적으로 뭔가를 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는 공부에도 흥미를 붙였다. 스스로 관심 있고 잘 하는것을 배우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효과적으로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다. 다만 종종 엘리베이터를 타면 숨쉬기가 어려웠는데, 이것은 왜인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는 이 문제를 파헤치지 않고 그대로 묻어두었다.


어느덧 2학년이 되었다. 그는 모 회사 취업반에 가까스로 들어갈 수 있었고, 같은 목적의 친구 7명을 사귀었다. 8명은 자연스레 하나의 그룹이 되었다. 그 무렵 그는 하루키의 책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었다. 책이 술술 읽힌 것은 자신이 속한 그룹과 책 내용이 비슷해서라고 생각했다. 비록 색채는 없었지만서도.


그들 8명은 모두 취업을 위해 수업에서 빠졌고, 같은 강의를 들었으며, 급식도 다른 학생들보다 먼저 먹었다. 그로 인해 그룹 외의 학생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꼈느냐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그는 어쩌면 자신보다 나은 친구를 운 좋게 이기고 그룹에 속하진 않았나 하는 생각에 묘한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다만 티는 내지 않았다.


그의 그룹은 여름방학 때도 학교에서 취업 준비를 했고, 그들이 다른 학생과 마주칠 일은 없었기에 그룹은 단단해졌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느꼈다. 방학이 끝나고 그들은 필기시험을 쳤고, 면접을 준비했다. 그 무렵 수학여행이 있었지만, 그룹은 홀로 학교에 남아 공부를 지속했다. 기숙사에 들어갈 때면 외로움에 파묻혔다.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갔을 금요일, 필기시험의 결과가 나왔고, 마지막으로 결과를 확인한 친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합격을 확인했지만, 안타까운 마음과 은근한 죄책감에 합격의 기쁨은 씻은 듯 사라졌다. 떨어진 그녀에 대한 미안함, 혹은 동정이 빈 감정을 채울 뿐이었다.


면접이 다가오자 죄책감은 막연한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분명 완벽히 준비했지만 찜찜한 기분이었다. 면접 전날 미리 올라가 비즈니스 호텔에서 묵고는, 다음날 아침 한 시간 일찍 면접장으로 갔다. 그는 청심환을 챙겨 먹었지만 면접 시간을 헷갈려 그닥 효과를 본 것 같진 않다고 후에 생각했다. 개인 면접이 끝나고 토론 면접이 있었는데, 아무도 진행자를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그가 나섰는데, 이는 꽤나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는 긴장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 탓에 줄곧 이런 자리를 피해왔다. 그런 그가 선뜻 진행자 역할을 맡은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조원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면접장이 아닌 자리에서 만났다면 좋은 친구가 됐겠다 싶은 사람도 많았으며, 실제로 몇 명은 그렇게 되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긴장한 탓이었는지 그들 대부분은 면접 자리에서 실수를 하고 말았고, 결과적으로 그를 포함한 두 명만이 합격 통지를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그 해 잔인했던 여름이 지나고부터는 더 이상 숨이 막히지 않았다. 취업에 성공했다는 자부심은 처음에는 크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그에게 여유를 주었다. 그는 오랫만에 집안의 자랑거리가 되었고, 그는 어느 정도 자존감을 회복했다. 다만 외로움이 밀려올 때면 스스로가 마치 위선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모든 사람이 완벽한 것은 아니며, 그것도 자신의 불완전한 부분이라 생각하고는 덮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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