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묻지마

난 NPC니까...

by 썬피쉬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여느때처럼 메일함을 열었다.

신입사원 자기소개 메일이 와 있었다.

제목: [신입사원 인사] 안녕하세요! ○○팀 배치받은 김○○입니다 :)

본문을 열었는데... 어?

자기소개 중간에 "제 꿈은 이 분야 최고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선배님들과 함께 성장하며 회사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메일에 꿈을 쓰다니.

나도 예전엔 그랬다. 진짜로. 꿈이 뭐냐고 물으면 A4 용지 세 장은 채울 수 있었다. 세계를 무대로, 업계를 선도하는, 혁신적인... 뭐 그런 말들로 가득했지.

그런데 지금 내 꿈이 뭐냐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들...

신입사원때는 전혀 생각한 적이 없었던 혈압 정상 수치 유지, 허리 안 아프기, 무릎 안 아프기, 통풍 안걸리기, 다음 건강검진에서 재검 안 뜨기. 두통 없이 살기, 별탈없이 정년은퇴 등등이 떠오른다.


신입사원 때는 몰랐다. 꿈을 물어보는 게 얼마나 폭력적인 질문인지. 뭐 할건데? 너 뭐가 되고 싶어?이 질문과 비슷한 결의 기분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훈계하듯이 물어보는 느낌이다.

다행이 요즘엔 나이가 들어서 선배(?)가 줄어들어인지? 나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모르지만 "꿈이 뭐야?"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 고맙게도.

대신 이렇게 묻는다.

"이거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보고서 어떻게 작성할까요?"
"주말에 출해야 할것 같은데 시간 되세요?"

아니 거의 말조차 걸지 않을때도 많다.

그래서 나는 NPC다.

게임 속 NPC들 봐라. 마을 입구에서 "안녕하세요, 모험가님!" 하는 NPC한테 누가 꿈이 뭐냐고 물어보나. 안 물어본다. 그냥 정해진 대사만 하면 된다.

나도 그렇다.

"네, 검토해볼게요"
"네, 알겠어요"
"네. 어렵겠는데요"

이게 내 대사다. 오랜 시간 레벨업한 나의 스킬 트리.

오늘 퇴근하면서 문득 생각했다.

내 꿈이 뭐냐고 물어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오히려 고민거리일 것 같다는 생각.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진짜 모르겠거든.

"음... 제 꿈은... 일찍 퇴근하기?"

너무 솔직한가.

"제 꿈은... 월요일이 빨리 금요일이 되기?"

너무 현실적인가.

그래서 결론은 이거다.

내 꿈은 꿈이 뭐냐고 질문받지 않는 것.

이게 NPC의 축복이다. 아무도 우리한테 꿈 따윈 묻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정해진 루트대로 출근하고, 정해진 업무 하고, 정해진 시간에 회의하면 된다.

꿈이 있어야 좌절도 있고, 좌절이 있어야 번아웃도 온다.

꿈이 없으면? 그냥 하루하루가 평온하다.

오늘도 무사히.

내일도 무사히.

이게 부장의 유일한 소망이자, 꿈이라면 꿈이다.

"부장님, 꿈이 뭐예요?"

제발 이런 거 묻지 마. 나 NPC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