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컬버시티의 한 식당에서 지인을 만났다. 나에게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다. '응? 상담은 무슨 상담? 세상에서 가장 팔자 좋고 부러운 사람일텐데?' 그 지인은 작년의 용투더뷔처럼 회사에서 보내주는 1년짜리 LLM 프로그램 중이었다. 그 기간동안 누구는 골프를 처음 배워서 싱글이 되어 돌아가기도 하고, (최선을 다해 수업을 열심히 빼먹으며) 미국 횡단/종단 로드트립을 다녀오기도 한다. 유학생 뿐 아니라 정착해서 사는 한국인까지 포함해서 가장 팔자 좋고 여유로운 사람들이다. 놀기 바쁜 이 시기에 무슨 상담?
식사가 나오고 이야기가 시작되자 분위기가 조금 심각해졌다. 그 지인의 원래 계획은 LLM이 끝나고 변호사 시험인 bar test를 보는 것이라 했다. 조금 의외였지만, 평소에도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겨울동안 방구석에 처박혀 시험공부만 하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현타가 온 것 같았다.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사람들도 좀 만나고, 연애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남들보다 뒤쳐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남들보다 뒤쳐진다라... 내가 언제부터 남들을 신경 안쓰고 살게 되었는지 문득 떠오랐다.
나는 2006년 내 갭이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05년 1학기에 복학한 뒤 나의 상태는 에너지는 뿜뿜, 학점은 쏘쏘, 전공수업에서는 헉헉이었다. 이런 나에게 갓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동아리 선배가 왜 나도 유학을 가야하는지 1시간동안 설명해 주었다. 솔깃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학점도 별로고 영어도 잘 못하는 내가 미국 대학원 원서를 내볼 수는 건지, 합격한다 해도 비벼볼 수나 있을런지 전혀 자신이 없었다. 일단 경험은 해보자는 마음으로 1년간 Study Abroad를 다녀오기로 했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고 수업도 들었다. 영어로 타인과 협동하며 공감하는 연기수업, 영어로 작문하는 수업, 전공수업 등을 들었고 나름의 소득이 있었다. 망해도 된다, 영어 잘 못해도 전공수업은 잘할 수 있다 등의 lesson을 얻었다. 그래고 본격적으로 유학 준비를 했다.
Study Abroad가 끝나고 귀국하기 전 남미 여행을 하다가 만났던 아일랜드 학생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 학생은 갓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 입학 전에 Gap Year 기간을 보내며 세계여행을 하는 중이라 했다. 여행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앞으로 10년간 무엇을 위해 살지 고민중이라 한다. 아일랜드에는 그런 학생이 꽤 많다고 했다. 본인의 생각을 겸손하고 차분한 톤으로 들려주었는데, 삶을 대하는 여유와 자신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조급함은 없었다. 아일랜드 고삐리에게서 삶의 내공을 느꼈다. 그리고 부러웠다.
여유로운 삶과 행복은 큰 상관관계가 있다. 얼마전 유튜브 슈카월드에서는 "OECD 행복지수 최하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콘텐츠가 올라왔다. 대한민국의 행복지수는 객관적인 지표에서는 OECD 중간 정도, 주관적인 지표에서는 OCED 최하위라 한다. 경제적 성공을 강조하고, 그 성공에 올인하는 막대한 노력이 있고, 재산으로 Peer와 비교하는 사회라는 분석이 있었다.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고, 결국 다수는 상대적 실패를 하며 불행해진다. 긴 노동시간도 한 몫 한다. 노동시간당 생산성이 낮아서, 여가시간이 극도로 적다고 한다.
나도 이런 한국 사회에서 자랐고, 성공을 중요시하는 가정에서 자랐다. 하지만, 한 템포 쉬어가며 다른 경험을 해볼 수 있었던 Gap Year 동안 자신감을 얻었고, 무엇보다도 여유를 놓치 않으며 더 의미있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Gap Year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게 현실이다. 내가 영향력이 생긴다면, 누구나 Gap Year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