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초등교사가 크리스천 학부모님과 선생님들께
“하나님,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입니다. 어떤 내용으로 학부모님과 선생님들을 위한 글을 써야 할까요?”
이렇게 기도하고 일주일쯤 지난 토요일 큐티에서 <마태복음> 21장 2~3절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새끼 나귀를 타실 때 어미 나귀도 같이 있었나?’ 성경을 읽다 보면 유독 낯설게 다가오는 구절이 있는데, 그날 말씀이 그랬습니다.
성경 앱으로 찾아보니 이 장면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모두 묘사되어 있지만, 어미 나귀가 함께 있다고 기록한 건 <마태복음>뿐이었습니다. 관련 이미지를 찾아보니 30여 장 가운데 단 한 장에만 어미 나귀와 새끼 나귀가 함께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새끼 나귀만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미 나귀는 어디에 있었을까?’ 본문을 더 읽어 보았지만, 어미 나귀에 대한 기록이 더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의 유난한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그래서 나귀에 대한 정보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나귀는 말보다 지구력과 자생력이 뛰어나고 비교적 영리하지만, 한 번 가본 길만 가려는 습성이 있어서 낯선 길을 가려면 매우 고집을 부린다고 합니다. 또한 수명이 길어서 오랜 시간 주인과 함께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이제야 예수님이 새끼 나귀만이 아니라 어미 나귀도 함께 끌고 오라고 하신 이유가 이해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주변은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나뭇가지를 길에 펴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라고 외쳤습니다. 온 성이 소동했습니다. 이렇게 소란스럽고 낯선 길을 새끼 나귀 혼자였다면 온순히 갈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미 나귀가 앞서갔기 때문에 그 뒤를 따라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현장에서 오랜 시간 아이들을 만나며 교사로서 느끼는 게 있습니다. 부모와 교사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너는 안전해. 내가 널 지켜줄 거야’라는 안정감입니다. 무엇을 더 많이 해주는 것보다 안정감이 우선입니다. 부모님의 이혼 과정에서 불안을 겪은 어떤 아이는 목소리도 크고 들뜬 채 뛰어다니지만, 눈빛이 심하게 흔들립니다. 예민하고 불안한 아이들은 얼굴 근육을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는 틱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 아이들은 빽빽한 학원 일정 때문에 공부는 잘하지만, 밝게 웃질 못합니다. 바쁜 부모님이 쥐여주신 용돈으로 친구들에게 간식이나 학용품을 사주며 관계를 맺으려는 아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귄 친구들은 곧 떠나갑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부모를 기다리는 한 시간조차 두렵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부모님의 정서적 부재와 불안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그러면 아이는 눈치를 보며 ‘나’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생존을 위해 ‘부모’의 기대에 들기 위해 노력하며 살게 됩니다. 이런 아이들은 학교생활이나 공부에 집중할 에너지를 잃어버립니다. 돌이켜보면 저 역시 그랬습니다. 부모로서 더 많이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분주하게 움직였고, 그 과정에서 아이를 혼자 두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편안히 곁에 있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릴 때 내 아이는 자연스레 안정감을 느낄 것입니다. 가족이 ‘하하호호’ 웃는 가정에서 자란 안정감 있는 아이가 건강한 학교생활을 합니다. 이건 수년간 봐온 일입니다.
그저 새끼 나귀가 따라오도록 앞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어미 나귀처럼, 아이 곁을 지켜주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이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물러나 줄 수 있는 우리의 모습도 함께 생각해 봅니다.
/ 최민혜 교사(부천온누리교회, 석천초등학교, <야누시 코르차크 아이들을 편한 길이 아닌 아름다운 길로 이끌기를> 저자)
출처: 온누리신문(2026/03/28, 온누리 신문 - [크리스천 학부모님과 선생님들께] 어미 나귀와 새끼 나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