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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OL Apr 27. 2017

조금 불쌍한 집

브런치 × 볼드저널


조금 불쌍한 집


집에 대한 생각을 해볼 기회가 생겼다. 참으로 감사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막연히 집은 나만의 공간, 나 자신에 대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솔직해질수 있는 공간, 고단한 하루를 시작하기도, 마무리하기도 하는 곳 정도로 생각했다. 그 이상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고 딱 잘라 버리기도 했다. 집에 대한 특별한 생각이라는 문구를 봤을 때 나랑은 맞지 않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고 이번 프로젝트는 참여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대부분 글에 주제가 중복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접하고 뇌리에 가장 먼저 스쳐지나간 집이 하나 있다. 그 집은 여행을 통해 살아본 집도 아니었고, 내가 살고 있는 집 또한 아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조금 불쌍한 집?'이다.


@이태원에 이사오는 한 남성

경북 예천 용궁에 위치한 그 집은 외할머니가 두 달간 살았던 집이다. 외할머니의 대한 기억은 점차 옅어져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인자하셨던 분, 미소가 따뜻했던 분, 나를 안아주며 사랑해주셨던 분, 지금은 그런 따뜻한 느낌만 남아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서둘러 시골에 내려갔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소풍에서 돌아와 혼자 있던 집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던 것 같다. 끝없이 울리던 전화 벨소리가 마침내 끝나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괜찮아 할머니 하늘나라 가셨어. 아픔없는 편안한 곳에 계실거야 더 좋은 곳으로 가셨어. 우리 동진이 항상 지켜주실거야

엄마의 목소리는 수화기와 본체를 연결하는 전선처럼 심하게 꼬불꼬불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몇 분이고 갑자기 오열했다. 엄마도 따라 울었다. 아이들에게 강한 모습만 보이시려는 부모님이셨는데 내 서러운 울음소리는 강한 부모라는 갑옷을 무장해제 시키기에 충분했나보다. 우리 가족이 그 집을 꺼려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집이 완공된 후 외할머니는 그 집에서 두 달간 살고 돌아가셨다.

@지금 살고 있는 네덜란드 집 테라스

그 집은 다 쓰러져 가는 외할머니의 초가집(정말 옛날 초가집) 대신 2년간 외삼촌이 혼자 건축과 설비, 인테리어, 운반 등 모든 것을 다 혼자서 만든 집이다. 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땅을 사고 그 땅에서 집을 짓는 2년간 삼촌은 시골에 머물며 외할머니와 함께 밥을 먹고 그 외의 시간에는 집을 만들었다. 집은 정말 심플하다. 그 당시만 해도 트렌디한 집은 아니었고(지금은 더더욱 아닌) 투박하고 삼촌의 향이 배어 있는 집이다. 시멘트로 된 큰 마루가 있고 현관으로 들어가면 바로 큰 주방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아주 큰 방이 하나 있다. 큰방은 50명도 잘 수 있는 크기에 짧은 벽 한 면을 채우는 농 하나가 전부였고 농 안에는 수두룩한 이불들이 있었다. 왼쪽으로는 작은방 하나가 있다. 작은 방은 TV가 있었고 여러 가지 혼자 생활하기에 딱 안성맞춤인 방이었다. 집이 완공되고 이사를 마친 후 두달간은 꽤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그 집의 황금기였다. 거실에서 어른들은 화투놀이를 하고 다른 쪽에서는 엄마와 여자들이 과일과 함께 수다를 떨고 아이들은 밖에서도 안에서도 놀고 있었다. 나는 화투판 옆에 앉아 삼촌이 따주는 콩고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투가 끝나고 주머니가 두둑해지면 개구리 소리가 들렸다. 나는 빈 페트병을 챙겨나가 벽면에 붙어있는 청개구리들을 잡아 괴롭혔다. 신기하게 개구리들이 집 외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때 보낸 개구리만 수십 마리는 될 테지.... 놀다 지쳐 쓰러질 때면 시멘트 마루에 대자로 누워 밤하늘을 보았다. 방금 받은 콩고물로 내일 아이스크림 사먹을 생각에 행복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며 눈을 감는다. 별이 어찌나 많은지 눈을 감고 있어도 별이 새어질 정도로 많았다. 늦은 저녁이 되면 잘 사람은 큰 방에 널브러져 행복하게 잠이 들었다. 지금에서야 든 생각이지만 아마 삼촌은 집을 만드는 2년간 이런 모습을 상상했을 거라는 강한 확신이 든다.

@지금 살고 있는 네덜란드집 주변거리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집은 여름휴가용으로 이용되었다. 나와 우리 누나 그리고 남동생 외에도 또래 친척들이 가끔 모이는 곳이 되었다. 그마저도 삼촌이 돌아가시면서 집을 찾는 이는 작은삼촌 외에는 아무도 없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은 왕래가 없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집도 그렇다. 다행스럽게도 근처 어르신들이 집을 가끔씩 와서 봐주신다고 했다. 나는 향수에 젖어 요 근래 엄마에게 가자고 하지만 어쩐지 엄마는 가고 싶지 않은 눈치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놓은 것처럼 잊혀지지 않는 분명한 기억들이 있는데 그곳에는 분명 엄마가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그곳에는 엄마만 있다.

@우리엄마

이유야 어찌 되었든 뜬금없이 이 집이 생각났다. 내 집 장만하기가 어려운 시대인 만큼 집에 대한 애착을 가지기가 어려운 시기다. 주거형태야 다양하지만 마음까지 둘 수 없게 만든건 누구의 잘못일까.


나는 지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거주하고 있다. 10평 정도에 화장실도 적당하고 침대도 있다. 여행을 목적으로 한 달간 살게 될 곳이다. 이보다 근사한 집은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만족스럽다. 아침에는 햇살이 날 깨우고 저녁에는 운하에 비친 야경이 눈이 부셔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시차에 적응해야 하는데 정신만 맑아진다. 함께 사는 동생과 보내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앞으로 동생은 네덜란드에서 살게 될 거고 나는 여행이 끝나면 한국으로 돌아가 우리가 교차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생존신고
@한국집 놀이터 앞 아이들이 놀고 간 흔적들

집이란 삼촌이 집을 짓는 마음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살아가며 생각이 궁극적을 도달하는 곳이며 절대적인 장소도 없다. 집은 사람에 따라 따라오는 것이지 욕망에 의해서 지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과시욕에 수단이 되는 순간 집의 의미는 퇴색되고 말것이다. '함께'라는 욕심이 부각되고 집에 대해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이 보여지는 집이 많아질거라는 믿음이 든다. 아직 선진국은 멀었지만 과도기적인 단계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주거형태들이 옛날과 다르게 본모습을 조금씩 갖추어가는 기사나 따뜻한 소식을 접할 때면 희망이 생긴다. 우선 이번 주 주말 헤이그에 가서 재외국민 투표자 신분으로 투표를 해야겠다.


Authorling  |  JaoL

Photograph|  JaoL


첫번째 사진 : 이태원

나머지 사진 : 네덜란드 집 근처

마지막사진 : 집 앞 놀이터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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