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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Apr 07. 2024

마케터가 되기 위한 7년 회고


일을 시작한 지 7년이 지났다. 


내가 했던 일들은 항상 "마케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스스로 마케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전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스스로 "마케터"라고 칭하게 됐다. 왜냐하면 다들 우리를, 서로를 마케터라고 불렀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스스로 마케터라고 여긴 적은 없었던 같다. 그래서 마케터가 되기 위해 지난 7년을 회고해보려고 한다. 




첫 취준

첫 시즌부터 연이은 탈락을 맛보고, 나는 공채 시장에 적합한 인재는 아니라는 걸 느꼈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차라리 일을 배우자는 생각에 작더라도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회사에 지원했다. 



첫 회사. 처음으로 마케팅(?) 비스무리한 것을 시작하다.

첫 회사는 작은 광고 대행사였다. 한창 페이스북 붐이 불 때였다. 크고 작은 브랜드의 SNS 채널 담당자가 되어 콘텐츠를 기획하고 채널을 관리했다. 가끔 바이럴 마케팅도 했고, 작게 광고를 집행하거나, 페이지 기획이나 화보 촬영 등의 업무를 했다. 


"저는 광고를 해요" 혹은 "저는 마케팅을 해요"라고 말할 정도의 깊이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작은 곳이었기에 혼자서 여러 프로젝트를 전담하여 일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프로젝트를 굴리고 클라이언트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기초 능력들을 배울 수 있었다. 나름 별 탈 없이 일처리 잘하는 직원으로 평가받았다. 당시의 업무는 꽤 단순하고 발전이 없는 일이라고 느꼈기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조금 더 큰 광고대행사로 이직했다.



두 번째 회사. 처음으로 사회의 쓴 맛을 맛보다.

그곳은 종합 디지털 마케팅 대행사였다. 경력을 살려 SNS 콘텐츠 마케팅 팀에 입사했다. 사실 더 이상 콘텐츠 마케팅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경력이 그것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콘텐츠 마케팅이 하기 싫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1) 나랑 안 맞는 줄 알았다. 계약된 수량의 콘텐츠를 찍어내기 위해 매월 아이데이션하는 것이 고통스러웠고, 내가 크리에이티브가 없기 때문에 이 일과 안 맞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콘텐츠 마케팅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2) 뭔가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며 (정말 단지 그 이유로) 인하우스 마케터가 되고 싶었는데, SNS 마케팅 경력만으로는 어렵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내가 참 어렸다. 내가 왜 마케팅을 하고 싶은지도, 마케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냥 했다. 아마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직업을 바라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덕분에 어디서든 최선을 다했고 조금씩 성장했다. 의미 없는 경험은 없다고, 사소한 경험들도 다른 일들을 시작할 때 든든한 기초 체력이 되어주었다.


아무튼 (나의 미래를 위해) 무조건 큰 회사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나름 이름 있는 대행사에 들어왔다는 기쁨, 그리고 이곳에서 일하다 보면 소위 "캠페인"이란 걸 할 기회가 오겠지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입사했다. 그리고 정확히 한 달 만에 울면서 퇴사했다. 빠른 판단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살인적인 야근 때문이었다. 입사 후 며칠 후부터 제안 PT를 준비하게 되었고, 14일 연속으로 주말 없이 출근했고, 매일 새벽 4~5시쯤 택시를 타고 울며 퇴근했고, ... 뭐 이런저런 일들을 겪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결정적으로 과장님을 보며 내가 여기서 과장이 되어도 이 일을 해야 한다면 이 경력을 버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작고 화기애애한 회사에 다녔던 나는 이렇게 사회생활의 혹독한 첫 쓴맛을 봤다.



세 번째 회사, 퍼포먼스 마케팅을 시작하다.

콘텐츠 마케팅에 재능이 없는 것 같으니, 숫자를 가지고 일하는 퍼포먼스 마케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퍼포먼스 마케팅 대행사에는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건지, 한 5개월 정도는 세상에서 가장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감사히도 이전 경력을 인정해 주셔서 경력직으로 들어왔지만, 그곳에서 하는 모든 일은 생전 처음 해보는 것들이었다. 미디어 믹스를 짜고, 매체를 세팅하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성과를 개선하는 일들을 했다. 


나는 잠들어도 매체는 잠들지 않아. 


큰 금액을 다루는 광고를 관리하며 오는 압박감. 실수 하나만 해도 큰돈이 왔다 갔다 거렸다. 처음 겪는 문제 상황들을 대처하는 방법을 몰랐고, 그걸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는 곳. (지금은 제법 절친이 된) 나의 리더는 제 새끼들을 벼랑 끝에서 떨어트린 뒤, 죽기 직전에 심폐소생술만 해주고 다시 스스로 이겨내라고 등 떠미는 호랑이 같은 스타일이었다. 그때는 그게 참 야속했는데, 지금은 필요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태생이 쫄보 같은 나는 그 시간들 덕분에 맷집을 키울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쫄보다.) 


그곳에서 엉엉 울며 이 일을 잘 해낼 수 없다고 주저앉기도 했다. 그렇게 고통이 있어야 한 단계 더 성장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곳에서 나는 일도 배웠지만, 고통도 배웠고, 극복도 배웠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자 웬만한 일들은 혼자서도 잘 처리하게 되었다. 클라이언트의 신임도 얻었고, 리더의 신뢰도 얻었다. 그렇게 역할이 점점 커지다 보니 극심한 번아웃이 왔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도 눈물이 흘렀고, 감정이 사라졌고, 일상생활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곳을 떠났다.



네 번째 회사, 핀테크 회사에서 마케팅을 시작하다.

나의 퇴사 소식을 들은 클라이언트는 감사하게도 함께 일하자고 제안해 주었다. 그렇게 인하우스 마케터로서의 새로운 커리어가 시작됐다. 전문성을 기르고 싶다는 일념으로 5년을 달려온 나는, 사실 마케터보다는 오퍼레이터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리고 이곳에서 마케터로서의 사고방식을 기르기 시작했다. 


대행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한다고 해서 모두 나 같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마케팅에 큰 뜻이 없었고, 대행사에서 일을 시작하다 보니 그저 클라이언트의 업무를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잘 처리해 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해결해 주는 것에서 동기부여를 얻었다. 그것이 내 성과였고 내 연봉의 상승을 결정했다. 나름 마케팅이라고 일을 했지만, 내가 했던 일들은 마케팅에서의 좁은 한 분야에만 특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브랜드에 소속된 마케터는 관점부터가 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 배운 것은 크게 두 가지다.


1. 고객 관점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고객에게 줄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어떻게 우리의 가치를 고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여 설득할 수 있을까?


업무 자체는 퍼포먼스 마케팅 대행사에서 해왔던 일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전략을 고민하는 단계, 실행 시 디테일을 챙기는 과정, 실행 후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과 사용하는 데이터가 모두 고객 중심으로 바뀌었다.


2. 비즈니스 관점

투자 시장이 악화되며 회사의 사정도 나빠졌다. 리더가 바뀌며 그간 했던 일을 모두 접고 아예 새로운 업무들을 하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업무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 내가 왜 이걸 해야 하지? 내 커리어는 어떻게 되는 걸까? 불만도, 불안함도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비즈니스의 생존을 위한 마케터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마케팅을 위한 마케팅이 아니라 비즈니스를 위한 마케팅 전략과 실행의 프레임을 배웠다.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을 배운 것 같다.


하지만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얻은 것도 있었지만 잃은 것도 있었다. 배울 점도 있었지만 끝까지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그렇게 마케팅팀 11명 현재 남은 사람은 3명뿐이다. 그리고 이제 나도 그곳을 떠나려 한다.



다섯 번째 회사, 새로운 시작.

아픈 시간을 지나며 몇 가지 기준이 생겼다.


1.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자기 효능감을 느끼며 일하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느껴야 힘들어도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어야 기본적인 감정 상태가 긍정적으로 유지된다. 그런 상태여야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2.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일로 확장하고 싶다.

보통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업무이다. 하지만 하던 일만 계속 반복하면 성장하기 어렵다. 그래서 내 전문 분야에서 나의 가치를 증명하면서도,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나의 역량을 끊임없이 확장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회사를 고르는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위 두 가지ㅡ몇 가지 더 있지만 너무 깊은 이야기는 생략한다ㅡ였다. 겪어보기 전까지 판단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이 기준에 맞다고 생각하는 곳을 만나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 있게 "저는 마케터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지금까지 나의 7년을 회고해 보았다. 

별 것 아닐 줄 알았는데 쓰다보니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글을 쓰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시간 낭비인 알았던 경험이 알고 보니 꽤 소중한 경험이었다. 나름 똑똑하게 해온 알았던 행보가 지금 보니 부실했다. 별로인 알았던 중요했고, 중요한 알았던 나사 하나가 빠져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앞으로를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가 맞는지도 모른 채 어떻게든 어디로든 달려왔다. 여기까지 오면서 참 많이 즐거웠고, 좌절했고, 기뻐했고, 울었다. 모두 필요했던 시간이다. 앞으로도 마냥 장밋빛은 아니겠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극복하고 성장하는 시간이 계속해서 잘 쌓여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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