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 문화센터 여러 곳에 출강하는 관계로 현대백화점에서 열리는 팝업이나 전시의 경우 대부분 가볼 수 있다. 간 김에 들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의 경우 행사가 많은 편인데, 10층의 문화홀의 경우 다양한 팝업과 전시가 꾸준히 열리고 있는 곳이다.
이번에는 "Here I am"이라는 푯말이 붙어있어서 뭔가 했더니 미술전시였다. 이 곳에서의 전시는 소규모라 대대적 홍보는 하지 않지만 이 때까지 이 곳에서의 전시 퀄리티는 좋은 편이었다. 매번 블로그에 포스팅하면서 근처에 가시면 둘러보시라 권해오곤 했다. 이번 전시도 흥미로워서 만약 주변에 가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가보시라고 권할만하다.
Here I Am,
현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
2025.1.11~2.2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10층 문화홀
푯말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있었다. 전시의 의도를 알 수 있는 문구다. 새해를 맞이해서 예술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찾는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2025년, 새로운 해를 맞이하여 현대를 살고 있는 나에게 선물하는 위로와 성찰
4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과 함께하는 현대미술 전시
넓다면 넓지만 그래도 그렇게 넓은 공간은 아닌데도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신진 내지 젊은 작가들인듯 했다. 작품 옆에는 영상이 함께 있어서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의도를 밝히거나 작업 장면을 함께 볼 수 있도록 해두어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국내 작가 뿐 아니라 해외 작가들의 작품들도 많이 있었다. 각 작가들이 치열하게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나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것 같은 전시라서 흥미로웠다.
김현우 작가의 작품은 추상 작품 위에 수학식을 써놓는 식의 작업방식을 택했다. 수알못인 나로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수식들이었지만 그 자체로 작품에 조형미를 보태었기에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작품의 제목인 '헤르마프로디토스'의 경우 신화속 자웅동체의 인물인데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는 모르겠다.
조영각 작가의 작품은 식물인간 (?)의 사진 작품들이다. 설명에 따르면, "'밀착 취재: 식물인간' 프로젝트는 식물과 융합된 인간들이 서울의 현재 트렌디한 지역 (성수, 연남, 해방촌, 을지로)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밀착취재2: 그린 인플루언서 - 모란 (작약) 10>의 경우, 을지로에 등장한 작약 인간의 사진이다. 정확히 어떤 식의 작업인지 알 수 없지만, 라벨에 디지털 프린테에 아크릴이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봐서 회화 작업도 겸한 것 같다. 합성 이미지인지 얼굴쪽에 꽃형태의 가면을 쓴 것인지는 모르지만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일본의 괴기스러운 SF드라마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동화속 상상력을 발휘한 것 같기도 하다.
NUA라는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이번 전시에는 비현실적인 형광색으로 채색된 것에 비해서는 사실적으로 묘사된 초상화 2점과 함께 역시 다채로운 형광색을 사용한 추상을 선보였다. 이 색상들이 작가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는 것은 뭐 개인적인 성향이라 차치하고서라도 예술 치유와 예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는 설명문에 대한 내용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는데, 이 때문인지 패션업계랑 콜라보도 많이 하는 작가라고 한다.
멀리서 봤을 때엔 전통적인 화법으로 소나무를 그린 그림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나뭇가지 사이사이에 하리보 모양의 곰돌이들이 얹혀져 있다. 실제 젤리는 아니고 그 젤리 모양의 형상이 입체적으로 붙여져 있는 것이다. 라벨의 제목을 확인해보니, <하리보도>이다. '하리보 그림'이라는 뜻이다. 유희적 터치가 있는 작품이라 재미있었지만 설명문에 나온 의미까지는 스스로는 도달하지 못했다.
강태구몬 작가의 작품은 왠지 모르게 남미 계열 작가들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가명임이 분명한 강태구몬은 인터뷰 영상을 봐서는 틀림없는 한국 작가였는데 말이다. 아쉽게도 8-90년도 생도 아니고 게임도 안하는 스타일이라 그의 필명으로 연상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일상을 묘사한 것 같지만 왠지 이국적인 화풍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우국원 작가는 아트페어나 경매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유명한 작가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의 이름은 <I'm Too Late to be a Vegan>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해석해보자면 '난 비건이 되긴 너무 늦었어'라는 의미일 것 같고, 그 제목의 작품 속에 통통한 핑크빛 돼지가 그려져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비건이 되기엔 태생적으로 불가능한가 싶기도 하고. 영어 표현이 틀리게 된 것도 화자가 이 돼지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정민제 작가의 경우, 페브릭으로 작업한 것인가 했더니 자투리 실로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환경미술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해야하나? 남긴 실들로 작업을 했다고는 하나 색채의 배합에 세심하게 신경을 쓴 듯했다.
이태수 작가의 작품은 거대한 바위가 얇디 얇은 유리판 위에 얹혀진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도 그 유리판 아래는 유리컵들을 받침대처럼 세워두었다. 황금색 바위를 유리판과 유리컵들이 받치고 있는 형상은 얼핏 보기엔 위태위태하다. 물론 진짜 바위는 아니고 알루미늄 호일같은 것으로 만든 바위 형상의 조형물이라 실제로는 안전하겠지만 말이다. 보이는 것과 실재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인듯하다.
동심을 표현한 작품들이 많은 가운데 진미나 작가의 <어느날 - 구축된 풍경 1>은 예전에 접했던 알렉스 카츠의 풍경화를 연상시키면서 조형적인 것에 더 신경을 많이 쓴 듯해서 인상적이었다.
핑크색 스티로폼같은 재질로 현대 생활에서 필요하거나 자주 접하는 것들을 만든 조각상들도 있었다.
그 밖에도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았다. 설명문에 따르면 40여명의 작가들이 참가하는 전시라고 하니까 작품 수도 꽤 많았고 새로운 시도의 작품들도 많았다. 직접 봐야 의미나 조형미를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 많으니까 관심있으시면 직접 가서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