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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념테이프 Dec 22. 2023

유머와 위트에 저항하지 않을 것

우아함과 냉소적인 것은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


어린 시절, 주말 저녁에 온 식구가 나란히 앉아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고 있으면 할머니는 무표정으로 나에게 물어보셨다. 그게 재미있느냐고. “네, 웃기잖아요.” 라며 대답하면 할머니는 “좋겠다, 웃을 수 있어서.”라는 말을 한숨과 동시에 고개를 돌리며 내뱉으셨다. 그때는 할머니도 웃으면 되지 왜 안 웃으실까 싶었다. 할머니가 웃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보니까 남들은 다 웃어도 할머니 혼자 무표정으로 앉아계신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너그럽고 편안하게 가지면 같이 웃으면서 즐길 수 있을 텐데 어린 나이에 바라보는 할머니는 너무 냉소적이면서도 한편으로 짠했다. 그런데 얼마전, 유머나 개그에 저항하고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 역시 타인의 개그나 유머에 너그럽게 웃기보다는 쉽게 웃으면 내가 유치해지는 것 같다는 저항감에 우아한 척 앉아있으려고 했던 것 같아서 화들짝 놀랐다.



영어 수업을 줌으로 들으면서 노트북 화면 속 내 얼굴을 거울처럼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내 얼굴이 참 무표정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때에도 다른 사람들은 다 치아가 보이도록 밝게 웃는데, 치아에 콤플렉스를 가진 나는 한 번도 입을 벌리고 웃는 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다. 입을 다문채로 최대한 웃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어보지만, 결과적으로는 억지로 웃는 사람의 표정 같다. 요즘 들어 그런 나의 사진을 많이 발견하고는, 신랑에게 물었더니 그는 “응, 너 잘 안 웃어.”하고 대답했다. 아, 내가 그랬구나. 내가 그렇게 냉소적인 사람이었나. 신랑과 같이 있을 때는 신랑의 유머가 너무 유치하고 올드하게 느껴져서 나와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너그럽게 웃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졌다.



올해,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1년을 보낸 지금, 나는 유머와 위트가 우리 삶에서 생각보다 훨씬 더 의미 있고 중요하다는 것을 비로소 이제야 깨달았다. 퍽퍽한 하루를 보내고 반쯤 넋이 나가있는 저녁, 신랑의 어이없는 유머가 예고 없이 터져 나오면 나는 저항하지 않고 기꺼이 웃는다. 그리고 내가 더 웃겨주겠다고 작정하듯 배틀을 건다. 예전 같으면 유머코드가 나와는 맞지 않는다며 고개를 돌리곤 했는데 내가 왜 개그맨도 아닌 신랑의 유머를 평가하며 웃어주지 않는 것인지 나도 참 나빴구나. 그래, 저항하지 말자. 그동안 냉소적으로 저항했던 신랑의 유머를 내 취향이니 아니라며 선을 그리지 말자. 기꺼이 내 목젖을 보이며 껄껄껄 웃어주리라.



유머의 에너지는 생각보다 강력하다.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에게 유머를 던지며 같이 웃는 것도, 창피해서 숨고 싶을 상황에도 주변 사람들의 유머는 우리를 잠시 고통에서 잊게 해 준다. 돌덩이처럼 무거운 마음의 짐을 웃으면서 작게 쪼개버릴 힘을 유머는 알고 있다. 그렇게 웃고 나면 ‘그래, 뭐 별거 있냐. 그럴 수도 있지’ 하고는 마음의 여유를 넓혀주는 것도 유머의 힘이다. 그리고 ‘힘내’라는 말보다 오히려 효과적이기도 한다. 유머도 다정함과 삶에 대한 애착이 있어야 가능 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남을 깎아내리며 혼자만 유쾌한 농담을 가장한 비난이 아니라면, 나는 이제 마음의 문을 좀 더 열고 기꺼이 신랑의 개그를 받아줄 작정이다. 그리고 세상에 숨어있는 위트를 보물찾기 하듯 발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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