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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재스민 Dec 02. 2019

내가 엄마의 일부였던 시절...

  나는 엄마의 첫 아이였다. 그것도 5년간 아이를 낳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생긴 귀한 아이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서류 정리를 하다보니, 부모님의 결혼 신고 후에 출생신고까지는 3년이었다. 왜 엄마는 늘 5년이라고 했을까.) 나를 낳을 때만 해도 아들인지 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로 딸을 줄줄이 셋만 낳은 엄마에게 딸은 더 이상 귀한 존재가 아니었다. 엄마는 딸을 줄줄이 셋을 낳은 후로,  이번에는 아들을 낳지 못해 애를 태웠다. 그리고 그 뒤로 귀한 첫 아들을 얻었고, 막내인 둘째 아들까지 낳았다.

  한 명도 낳지 못해서 눈물 짓던 엄마는 순식간에 다섯 명의 자식을 두게 됐고 그 뒤로는 가지 많은 나무가 되어 늘 힘들어했다. 그리고 밤에 아버지와 고개를 모우고 "자식은 절대로 많이 낳는 게 아니야."라고 하셨다. 그 말은 내 귀에 분명히 들렸고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탄생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늦게 결혼해서 늦게 아이를 본 아버지는 둘째 아이까지만 신기해했다. 세째부터는 관심이 없어졌다. 아버지는 기질적으로 조용히 혼자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사는 것이 낙인 분이었다. 아버지는 머리 나쁘고 무식한 사람을 가장 경멸했다. 알고 깨우치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에 속했다. 아버지는 늘 책과 신문, 일본어로 된 월간책자를 손에 끼고 사셨다. 그러니 맨날 싸우고 시끄러운 아이들은 그냥 방해물이자, 고문일 뿐이었다. (나도 아버지의 기질을 약간 닮아서 지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버지의 책장 속에는 신동아 정도의 잡지였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어로 된 월간책자가 책장 속에 쭉 나열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만화도 들어 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말풍선 속의 내용이 너무 궁금했지만 일본어로 되어있어서 알 수 없었다. 동생들에게는 가짜로 지어서 읽어줬다. 난 동생들에게 인기있는 대장이 되고 싶었지만 인기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어린 아이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 매우 서툴다. 그냥 대장이 되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를 좋아하는 동생들이 없었다. 인형극도 해주고 가짜로 일본만화도 읽어줬지만 즐거움을 주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서 곧 포기했다. 나는 그냥 혼자 놀기로 했다. 혼자 노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누구랑 싸울 일도 없었으니까.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나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다. 그 당시에는 공부하는 애란 없었다. 모두 놀기에 바빴다. 노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사회성의 시작이었으니까. 그런데 나는 그 나이에 중요하지도 않는 성적 올리기에 열을 내야했다. 그것은 엄마가 원하는 일이었다. 엄마는 자신이 처음 학교에 입학한 기분으로 사는 것 같았다. 나를 공부시키고 성적이 나오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맞출 수 있는 문제를 한개씩 틀려오면 엄마는 안달을 했다. 반대로 나는 점점 공부가 지겨워졌다. 애들과 놀지 못하게 하니까 놀고 싶은 욕망이 점점 강해졌다.


  방학이 끝나면 숙제를 전시해놓고 상을 줬다. 나는 다른 아이들은 하지도 않는, 식물채집, 조개 채집 , 옷감채집 같은 걸 해서 예쁘게 꾸며서 냈다. 모두 엄마의 작품이었다. 엄마는 손재주가 많은 분이었다. 숙제하는 것에 흥미를 붙인 사람은 내가 아닌 엄마였다. 그래서 나는 상을 받아도 기쁘지 않았다. 내가 한 게 아니니까. 왜 학교에서는 엄마에게 상을 주지 않고 내이름이 적힌 상장을 주는 걸까, 이상할 뿐이었다. 내가 직접 만들지 않는 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나 역시 자신에 대한 애착이 강한 아이였으니까.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애착, 혹은 인정에 대한 욕망이 그 뒤로도 그렇게나 오랜 세월동안 나를 힘들게 할 줄 몰랐다. 그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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