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해봅시다.
어느 기업의 CTO가 지난 13화를 읽고 각성했습니다. Cloud CoE를 구성하고 명확한 전략을 세웠으며, 적정한 예산을 확보했습니다. 저가 경쟁에 뛰어들지 않고 제대로 된 품질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프로젝트는 성공할까요?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고객이 아무리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도, 그 전략을 실행해야 할 생태계의 핵심 공급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클라우드 생태계는 '협력을 통한 분업'이 아니라 '책임 회피의 연쇄 작용'처럼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화에서는 생태계의 핵심 공급자들인 CSP, MSP, 컨설팅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와 그것이 왜 고객의 실패로 이어지는지 들여다보겠습니다.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자(CSP), 즉 AWS, Azure, GCP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이 생태계의 기반을 제공하는 플랫폼 사업자입니다. 그들은 분명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지만, 동시에 생태계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CSP가 스스로를 '고객 성공을 위한 파트너'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기술을 파는 공급자'의 역할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CSP의 수익 모델이 근본적으로 더 많은 사용량을 발생시키는 구조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객이 더 많은 인스턴스를 띄우고, 더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며, 더 많은 서비스를 사용할수록 CSP의 매출은 증가합니다. 이 구조 하에서 CSP의 최우선 목표는 고객의 성공이 아니라 자사 플랫폼 사용량의 증가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둘이 항상 상충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딜레마가 생기는 순간이 있습니다.
만약 고객이 과도하게 리소스를 사용하고 있고, FinOps 최적화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객의 성공을 진정으로 우선시한다면 CSP는 "당신은 지금 필요 이상으로 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사의 매출이 줄어듭니다.
CSP는 MSP를 관리하기 위해 파트너 등급 제도를 운영합니다.
골드, 플래티넘, 프리미어 같은 등급이 있고, 교육 프로그램과 기술 인증을 통해 MSP의 역량을 검증합니다.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파트너 등급은 대부분 '얼마나 많이 팔았는가'를 기준으로 산정됩니다. 기술 인증 요건도 있지만, 핵심 지표는 매출입니다.
예를 들어 연간 100만 달러를 판 MSP는 골드가 되고, 500만 달러를 판 MSP는 플래티넘이 됩니다. 여기서 빠진 것은 '딜리버리 품질'입니다. 고객에게 제대로 된 아키텍처를 설계해줬는가, 비용 최적화를 책임감 있게 수행했는가, 고객이 실제로 성공했는가 같은 질문들은 등급 산정에 거의 반영되지 않습니다.
결과는 예상 가능합니다. MSP는 '더 많이 파는 것'에 집중하게 되고, CSP는 MSP가 저가 수주로 품질 낮은 서비스를 제공해도 이를 직접 통제하지 않습니다. 그 책임은 고스란히 고객과 MSP에게 전가됩니다.
클라우드 전환과 운영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MSP(Managed Service Provider)는 생태계의 허리입니다. 하지만 지금 많은 MSP는 '전략 파트너'가 아닌 '기술 하청업체'의 굴레에 갇혀 있습니다.
13화에서 우리는 저가 수주 경쟁의 악순환을 봤습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MSP가 고객의 비즈니스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고객사가 MSP에게 "우리 회사에 쿠버네티스가 필요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MSP는 "가능합니다. 저희가 구축해드리겠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대화입니다.
MSP가 먼저 물어야 했던 것은 "당신 회사의 서비스 배포 주기는 어떻게 되나요?", "개발팀 규모는 얼마나 되나요?", "마이크로서비스로 분리할 만큼 복잡한 시스템인가요?" 같은 질문들입니다.
고객의 비즈니스 구조와 목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수행하는 프로젝트는 결국 '공허한 기술'만 남깁니다. 쿠버네티스 클러스터는 돌아가지만 아무도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비용만 증가하며 복잡도만 늘어납니다. 많은 MSP가 수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저희가 다 해드립니다"라고 말합니다.
고객은 안심하고 프로젝트가 시작되지만, 막상 진행하다 보면 불가능한 요구사항이 나오고, 예산은 부족하며, 일정은 촉박합니다. MSP는 품질을 낮추거나 범위를 줄이는 것으로 대응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초기 단계에서 'No'라고 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전략 파트너라면 "이 방식은 당신의 비즈니스에 맞지 않습니다", "이 예산으로는 이 범위를 제대로 구현할 수 없습니다", "더 단순한 대안을 먼저 고려해봅시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가 경쟁 구조에서 'No'는 수주 탈락을 의미하기에, MSP는 모든 것에 'Yes'라고 답하고 나중에 문제를 수습하려 합니다.
MSP가 진정한 전략 파트너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첫째는 고객의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역량입니다. 기술만 아는 게 아니라, 그 기술이 왜 필요한지, 어떤 비즈니스 가치를 만드는지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책임감 있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모든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것보다,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만 선택하는 것이 더 건강한 전략입니다.
셋째는 딜리버리 품질에 대한 자부심입니다. 싸게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만들어서 고객을 성공시키는 것이 진짜 경쟁력입니다.
생태계의 또 다른 축인 컨설팅 펌은 클라우드 전략, 거버넌스, 재무 구조 설계를 전문으로 합니다.
그들은 멋진 PPT와 상세한 로드맵을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실행을 모르는 전략'만을 제시하고 사라집니다.
컨설팅 펌이 그려주는 청사진은 이상적입니다.
"3년 내 클라우드 네이티브 전환 완료", "MSA 기반 재구축으로 민첩성 200% 향상", "멀티 클라우드 전략으로 벤더 종속성 탈피" 같은 목표들이 보기 좋게 정리됩니다. 임원진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실행 단계에서 문제가 터집니다.
MSP는 "3년 안에 이걸 다 할 인력이 없습니다", "MSA로 전환하려면 애플리케이션을 완전히 뜯어고쳐야 하는데 개발팀이 동의하지 않습니다", "멀티 클라우드 운영에 필요한 CMP 도입 비용이 예산에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컨설팅은 "그건 실행의 문제입니다. 전략은 맞습니다"라고 답합니다.
문제는 컨설팅과 MSP 간의 협업 구조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컨설팅은 전략을 설계하고 떠나고, MSP는 그 전략을 받아 실행합니다. 중간에 소통은 거의 없습니다. 그 결과 컨설팅이 설계한 아키텍처는 MSP가 구현하기 어렵고, 컨설팅이 제안한 일정은 현실적이지 않으며, 컨설팅이 상정한 예산은 실제 필요 비용과 맞지 않습니다.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면 컨설팅은 "전략은 맞았으나 실행이 잘못됐다"고 말하고, MSP는 "애초에 불가능한 전략이었다"고 항변합니다. 고객만 손해를 봅니다.
컨설팅이 진정한 가치를 제공하려면 현장의 기술적 제약을 이해해야 합니다.
PPT 속의 이상만이 아니라 실제 구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전략을 설계해야 합니다. 또한 MSP와 초기부터 협업해야 합니다. 전략 수립 단계에서부터 MSP를 참여시켜 실행 가능성을 검증하고 현실적인 로드맵을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략 수립 후에도 실행을 지원해야 합니다.
전략을 던져주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실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필요하면 전략을 조정하는 역할까지 해야 합니다.
컨설팅은 이제 PPT 속의 전략가가 아니라, MSP와 협력하여 전략과 실행을 연결하는 '실전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본 그림을 종합해봅시다.
CSP는 "우리는 플랫폼만 제공합니다. MSP가 제대로 구축해야죠"라고 말하고, MSP는 "우리는 컨설팅이 설계한 대로 했습니다. 전략이 잘못됐어요"라고 말하며, 컨설팅은 "우리 전략은 완벽했습니다. MSP가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네요"라고 말합니다.
세 주체가 서로를 가리키며 누구도 고객의 성공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한국 클라우드 생태계의 현실입니다. 물론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외국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의 생태계는 '역할'은 나누어져 있지만 '책임'은 공유되지 않는 구조입니다.
CSP는 기술만 팔고, MSP는 실행만 하며, 컨설팅은 계획만 합니다. 문제가 터지면 모두가 서로를 탓할 뿐입니다.
이 고장 난 생태계가 정상화되려면 세 주체가 '기능 중심의 분업'에서 벗어나 '고객의 성공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한 책임'의 구조로 바뀌어야 합니다.
CSP는 단순히 플랫폼을 판매를 넘어 파트너의 딜리버리 품질을 관리하고 고객 성공을 지표로 삼아야 합니다.
MSP는 기술 하청을 넘어 고객의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책임감 있는 전략 파트너가 되어야 합니다.
컨설팅은 PPT 전략가를 넘어 MSP와 협력하여 실행 가능한 전략을 만드는 실전 설계자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