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쳐도 될 것과 안될 것을 아는 분별력 아닐까?
사람들이 다른 여행지에 끌리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여행지마다 내 삶의 권역과 다른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여행을 떠나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 그리고 그 첫 방문에 얻은 인상은 그 여행지를 다시 찾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찾은 여행지가 첫 이미지와 거리가 많다고 하면 대부분은 다시 가지 않게 된다. 여행자의 호기심을 이끄는 다른 선택지는 많기 때문이다.
2016년 겨울에 찾은 치앙마이를 2여년 정도가 지난 올 가을 추석연휴를 즈음에 다시 찾았다. 남들 다가는 여름 휴가도 없이 보낸 보상이랄까? 호기심보다는 편안함을 주는 여행지를 생각하니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치앙마이였을 정도로 그해 방문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었나 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일 때문에 2번 정도 짧게 가본적도 있지만 여행은 역시 일 때문에 가기보다 개인적으로 비용을 지불하면서 가야만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란 존재는 어떻게 보면 참 둔감하고 무뎌서 만물의 영장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여행지의 변화는 그 속에 사는 사람들보다 가끔 찾는 여행자가 더 크게 느낄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치앙마이처럼 관광지 제주에 사는 사람이라 더 크게 그리 느낄 때가 많다.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해는 지역에 살면 그 지역에 대해 더 잘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일상생활권일때는 그 믿음이 맞지만 제주라는 더 큰 지역으로 확대하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생활인으로서 지역민이 가는 곳은 뻔하고 대체로 그곳이 그곳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주에 살고, 여행과 관련된 글과 강의로 먹고 산다는 이유로 한동안 주변에서 한달살기와 관련한 질문과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은 적이 있다. 제주에 대한 로망이 사라져서일까? 몇년사이 용암처럼 뜨겁던 제주 한달살기와 관련한 이야기가 거짓말처럼 쏙 들어갔다. 대신 들리는 이야기는 치앙마이 한달살기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최소한 나는 수긍이 갔던 것이 각종 과잉 개발로 잃어버린 몇년전의 제주의 모습이나 제주에서 그렸던 로망이 치앙마이에 오롯이 있기 때문임을 몇번의 치앙마이 여행에서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치앙마이에 대한 이야기를 바다 제주섬으로 실려오는 바람을 통해서 들었기 때문일까? 추석 연휴 치앙마이 여행에 대한 기대는 높아져만 갔다.
최근 섬사람 제주사는 여행자의 해외 나들이에 희소식이 가득하다. 각국마다 경쟁적으로 취항해 넘쳐나는 LCC(저비용항공사)들로 인해 지방기점 직항노선들이 많이 확충되었기 때문이다. 방콕으로 정기노선이 취항하고 있는 것은 이번 여행을 치앙마이로 가기로 선택한 거의 결정적인 이유이다. 섬사람이 인천이나 김포, 김해 등을 거쳐 해외로 가는 것은 몸과 마음을 피곤하게 한다. 기본적으로 비행기를 두번 이상 타야되는 번거로움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점에서 집에서 약 20분이면 공항에 도착해서 출발하며, 돌아오자 마자 거의 같은 시간에 집으로 와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다는 것은 비록 인천 등에서 취항하는 항공운임보다 10여만원 비싸다는 것은 비싸지 않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제주-방콕을 취항하는 이스타항공을 타니 생각보다 승객이 많음에 놀라고, 승객의 대부분이 태국사람인 것에 두번 놀란다. 이를 뒤로 하고 5시간여를 날아 새벽에 도착한 방콕, 공항근처 싼 무료 픽업서비스를 제공하는 숙소(600바트)를 찾아 들어 갔고, 날이 밝자 다시 공항으로 무료로 와서 약 4만원에 끊은 태국 국내선 치앙마이 행 비엣젯 항공 타이랜드에 몸을 실으니 오후에 치앙마이 입성이다. 제주에서 치앙마이까지 방콕 경우해 도착한 시간이 15시간 정도이니 투자비용에 비해 나름 성공한 이동을 한 셈이다.
한창 나이일 때는 한국돈 몇만원이면 태국에서 며칠 더 지낼 수 있는 돈이라며 남는 것은 시간이란 생각에 몸 고생을 했을법도 한데, 중년 나이많은 혼행족이 된 지금은 편안함이 몇 만원 아끼는 것보다 더 좋아진 세월이 흘렀다. 내 여행자로서의 세월도 퇴적층처럼 그렇게 켜켜이 몇십겹으로 쌓일만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래서인지 손과 어깨에 익은 배낭은 어느새 멀끔한 캐리어로 바뀌어 있었다. 시챗말로 현타(?)가 온 것이다.
예전의 여행에서 받은 치앙마이의 인상은 태국 고유의 문화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곳이란 이미지이다. 지하철 등이 생겨나 편해졌지만 번거롭고 세계도시화 되어 가는 태국 방콕이 잃어버린 여행지로서의 낭만과 정체성을 가진 곳이라고 하면 그럴 듯한 설명인 듯하다. 여기에 더해 마치 제주와 같이 도심에서 10여분이면 닿을 수 있는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방콕이 가지고 있지 못한 치앙마이만의 매력 어필 요소이다.
2여년이란 짧다면 짧은 시간, 도시는 얼마만큼 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정관념은 내가 사는 제주에서 많이 바뀌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사는 삶과 시간의 속도는 산업주의 시대보다 2-3배 빠른 시대가 되었다. 치앙마이도 그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은 치앙마이 공항을 빠져 나와 소위 미터택시라고 부르는 택시를 타는 과정까지 유효했다. 순전히 미터택시란 말을 믿은 내가 바보다. 송태우로 외국인 할증 프리미엄을 붙여도 태국사람과 함께 였다면 50바트면 충분했을 교통비가 미리 치앙마이 시내 지역 어디까지는 얼마라는 가격이 결정되어 있는 말만 미터택시를 타고 시내로 갈 때까지 말이다. 물론 방콕 수완나폼 공항에서도 공항택시를 타면 서비스료로 50바트 정도 기사에게 더 주게 되어 있는 것이 관례이긴 하다. 하지만 150바트 정도 더 받는 것은 비록 한국돈으로 약 4000원 안되는 돈이지만 기분이 나쁜 것도 사실이다. 실제가격이 얼마인지 아는 나와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태국여행에서 그런 사소한 일에 너무 기분 나빠하면 여행 자체를 망치고 만다. 태국인이 가장 많이 한다는 말 '마이 뺀 라이', 즉 괜찮아요 정신으로 무장하는 것은 태국 여행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팁 아닌 팁이다. '나를 뭘로 보고..', 한국에서나 통할 말이다.
숙소를 어느 지역에 정하느냐 하는 것은 여행지를 찾는 모든 여행자들에게는 중요한 과제이다. 치앙마이에서 약 5일을 묵을 예정이라 전통적인 치앙마이 여행자들의 성지 타패 게이트안 올드타운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핫한 동네 님만해민 쪽을 선택할 것이냐 하는 고민이 그것이다. 결론은 님만해민 2일, 올드타운 외곽 핑강가 3박으로 정했다. 마침 치앙마이에 묵는 시기가 추석기간이라 님만해민 이틀은 한인 호스텔 중 부킹사이트 리뷰를 고려하여 최근에 오픈해 비교적 깔끔한 외관과 간선도로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빵집 게스트하우스로 정했다. 8인실이 아닌 4인실 도미토리 230바트, 조식포함가니 뭐 나같은 중년 혼행족 아저씨에게 너무 부담없는 가격이랄까 그렇다. 비록 실패한 선택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추석맞이 투숙객들과 고기만두도 만드는 시간을 갖고 이역만리 먼 타국에서 그래도 같은 한 민족의 핏줄을 가진 사람들과 손수만든 만두를 쪄 희희낙낙 한국말 하며 나눠먹는 것 등을 포함하면 꽤나 훌륭한 선택이었다. 다행스럽게도 4인실을 하루는 두사람만, 하루는 단독으로 쓴 횡재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틀동안 샅샅이 그리고 나머지 기간동안 가끔씩 다시 들려 살펴본 님만해민 메인도로 주변은 2년전에 비해 많이 번화해졌다. 건물도 더욱 많이 들어서고 가게와 교통은 더욱 많아졌다. 한마디로 도시화되었고 세련되어진 듯해 보인다. 본 브런치에 지난 번 치앙마이 여행과 관련한 스페셜티커피여행 이야기(https://brunch.co.kr/@jasonsungilkang/40)에서 소개한 몇곳의 카페를 시간나는대로 가 지난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고 같은 메뉴를 시켜보니, 가게와 인테리어는 같은데 커피에서 그리고 서비스에서 더욱 진화한 느낌적인 느낌을 갖게 만든다. 손님은 예전보다 더욱 많아졌다. 스페셜티 커피가격이 그때나 지금이나 약 150바트로 같았으나 이전에는 블로그 글을 쓰면서 몇시간 있어봐도 찾는 손님의 수가 적었으나 이번에는 꽤나 많은 객들이 들락날락 한다. 내 소개글들을 봤나? 카페의 이런 미묘한 변화와 비슷하게 치앙마이도 변화했고 제주와 마찬가지로 임대료와 지대는 비례해 상승했다. 건물도 더 들어셨으나 거기까지이다.
내가 그렸던 치앙마이는 내 눈앞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변화란 것도 치앙마이스러운 변화라 많이 변화했다란 생각보다 세련되어졌다라는 생각을 갖게 했는지도 모른다. 변화는 하되 제주와 같이 모든 것을 여행자에게 맞추고 제주스런 풍경과의 조화란 있을 수 없고 최대이익을 내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건축물만이 바닷가에 점령한 그런 모습의 변화는 적어도 아니다. 교외는 주변환경과의 조화로움 속에 현대적이고 모던한 새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 꽤나 많은 시간이 흘러 다시 방문한 여행자에게 이전과 같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준다. 이런 면을 본다는 치앙마이 사람들의 관광과 관련한 생각은 매우 진보되고 어떤 것이 관광객과 자신들을 더욱 오랫동안 지속가능한 발전을 담보하게 하는 지에 대해 아는 듯하다. 현명한 선택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뭔가 제주다움를 잃어감에 따라 실망한 사람들이 왜 치앙마이를 한달살기의 대안지로 선택하는지를 몸으로 느끼게 해 준다.
볼 것을 보고, 이해할 것을 이해하게 한 치앙마이 이틀, 나머지 3일은 말 그대로 치앙망이의 정신, 태국의 정신에 충실하기로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바로 '마이 뺀 라이' 투어이다. 낮엔 에어컨 나오는 호텔룸과 수영장에서 최대한 느릿느릿하고 게으르게, 해떨어진 저녁은 길거리 음식말고 제대로된 파인 전통레스토랑에서 풍성한 한끼라는 모토 속에서 말이다.
속으로는 '이게 치앙마이 라이프지~!"라는 말과 함께 지극히 만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그렇게 믿게 만드는 그게 치앙마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