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우연"과 "계획된 우연"의 조합으로 스미토모 상사에 입사하다.
"3,650일..."
정확히 오늘, 종합상사맨이 된 지 10년째 되는 날이다.
2010년 10월 1일, 우여곡절 끝에 스미토모 상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오늘, 2020년 10월 1일, 나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업무용 PC에 쌓아둔 10여 년간의 출장사진, 동료들과의 즐거웠던 순간의 사진을 보며, 쥐포와 과자 뿌스러기를 안주삼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호주산 "19 crimes"라는 레드와인을 마시며 혼자서 조용히 자축하고 있다. 와이프랑 딸내미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처가에서 코로나 피신중)
"사랑해요~ 사랑해요~ LG~"
불과 6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게 LG는 특별했다. 지금도 내 친정 같이 느껴지는 사랑했던 LG를 떠나 일본으로 2번째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2008년.
남들도 다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 MBA 학위를 받기 위해서였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다시 LG로 돌아오리라 생각하면서...
만 서른넷의 적지 않은 나이로, 일본 문부성 장학생으로 일본 히토츠바시대학(一橋大学) 대학원 "국제기업전략 연구과 (International Corporate Strategy, ICS)"에서 2년간 경영학 수업을 받았다.
히토츠바시는, 동경대, 쿄토대에 이어, 일본 최고의 명문 국립대학의 하나로, 히토츠바시 MBA 학위만 있어도 일본이든 한국이든 어디든 다시 입사할 수 있다고 행복한 착각(?)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우선, 착각 그 첫 번째...
히토츠바시 대학은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명문대지만, 한국에서는 오히려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
나는 2000년부터 일본과 여러모로 인연을 맺고 있어서, 히토츠바시는 한국인도 모두 아는 유명대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히토츠바시에 입학하고 나니, 한국 친구들 반응이...
그때서야 알았다. 졸업 후에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일본에 오신 분들은 한국에서 제일 먹히는 브랜드인 "와세다(早稲田)"로 모두 간다는 것을... 이건 비단 한국인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동경대"에 맞먹는, 심지어 일본에서는 동경대와 동급인 쿄토대를 능가하는 브랜드 인지도를 가진 대학이 "와세다"이다. 속된 말로 "와~쎄다!" 더라...
두 번째 착각... 이라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이니 어쩔 수 없었지만...
대학원 입학식 첫날, 학장님이시던 타케우치 교수님 (현재 하버드 MBA 교수)이 하시던 말씀...
오우~ 한국에서는 그리 인지도가 높지 않은 대학이지만, 하긴 일본에서는 끝빨나는 대학이고, 그것도 MBA이니, 날 모셔가겠지...라고 우리 클래스 친구들 모두 흥분했다. 사실 난 졸업하면 LG로 돌아가고 싶다는 게 희망이어서 (다시 받아 줄지는 몰라도) 입학 당시에는 오히려 "와~쎄다!"대학을 선택하지 않은 것을 내심 후회하고 있었다. 암튼, 날 고베 비프로 만들어준다네... 최고급 소고기로...
그런데, 느닷없이 "리먼 쇼크"가 터졌다. 학부 졸업할 때는 "911 테러"가 터져 취업에 무지하게 고생했는데, 대학원 때는 왜 또 "리먼 쇼크"가... 내가 뭐 좀 하려 하면, 미국에서 뭐가 터진다...
Class of 2008 인 우리 동기는 약 55명, 그중 일본인이 7명 정도, 나머지는 한국, 대만, 중국, 동남아, 미국, 유럽 등 각국에서 온 친구들이었는데, 코베 비프가 되어 일본에서 발가락으로 코 후비듯이 쉽게 취업하리라 믿었던 친구들이 얼어 붙은 취업전선에서 "고베"비프가 아닌 쓰디쓴 "고배"를 마시고, 하나둘씩 본국으로 돌아갔다.
졸업하면 LG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나는, 대학원의 같은 클래스에서 만난 미쯔이물산의 "마사토"와 "야스시" 이 두 친구들에 매료되어, 일본 종합상사에 취업하기로 마음을 바꿔먹은 상태였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따로 글 한편 쓸 생각임... 요롷게 글 한편 더 늘이기 작전...)
사실, 내가 정말로 가고 싶었던 회사는, 미쯔이 물산이었다.
"마사토"와 "야스시"는, 55명의 클래스원 중에서도 "성적 최고" "리더십 최고" "놀기도 최고"인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고, 그런 인재들이 한 반에 둘이나 있는 미쯔이 물산에 너무 흥미가 갔다. 그래서, 도대체 어떤 회사길래 이런 멋진 친구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지 알고 싶어, 대학원에 미쯔이 물산에서 꼭 인턴을 해 보고 싶다고 요청을 했더니, 대학원 측이 직접 미쯔이 물산에 알아봐 줘서, 부동산 리츠 (REITS)를 주요 비즈니스로 하는 Asset Management 부라는 곳에서 3개월간 인턴을 했다.
역시, 마사토, 야스시처럼 멋진 분들이 많았다. 일도 열심히, 놀기도 열심히, 그러나 인간관계는 겸손하게... 상사의 비즈니스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이내믹하고 매력적이었다.
인턴기간이 끝나 갈 즈음, 미쯔이 물산 인사부에 찾아가 "정식으로 입사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인턴 하는 동안 열심히 해 주고, 평판도 좋았지만, 정식 입사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정해진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필기시험도 치고, 면접을 시작했다. 2010년 6월경부터 시작한 면접은 8월까지 총 5차 면접까지 있었다.
스미토모 상사와의 인연은 "진짜 우연"과 "계획된 우연"의 조합이었다.
6월경으로 기억하는데, 학교에 서류를 때러 갔다가, 담배나 한 대 피려고 담배방에 들렀다.
마침, 낮에는 연구하시고 학생들 가르치시다가, 밤에는 가발 쓰고 "Bluedogs"라는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치시는, "스토리 경영학"으로 유명한 쿠스노키 교수님이(지금 생각해 보면, 완벽한 부캐임)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교수님: "제이 (나의 클래스명)는 요즘 취업활동 어떤가?"
나: "미쯔이 물산 서류전형 통과하고, 곧 면접하기로 했습니다"
교수님: "오우! 정말 잘 됐네. 잘 되길 바래"
"그런데 말이야, 미쯔이 물산도 정말 좋은 회사지만, 스미토모 상사도 정말 괜찮은 회사야"
"요즘 거기 임원이랑 여러 가지 기획하고 있는 게, 내가 다리 한번 놔줄까?"
교수님 말씀인즉슨, 내일 아침에 스미토모 상사의 경영기획을 담당하시는 임원분과 미팅이 있으니, 우연인 척 연구실 앞을 지나가다가, 임원분이 나가실 때, 교수님이 "오~ 제이 이 시간에 웬일이야? 저 친구 미쯔이물산에서 인턴 마치고, 이제 미쯔이 물산 입사전형 준비 중인 친구입니다"라고 스미토모 상사 임원에게 한 마디만 해 줄 테니, 그다음은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미쯔이 물산 외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교수님 성의도 있고, 곧 첫애도 태어나는데 보험 하나 있어서 나쁠 것 같지는 않아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아침 8시경이었던 것 같다. 그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아~ 가지 말까?'라고 고민하다가, '에이 밑져야 본전인데'라는 심정으로, 교수님과 짠 대로, 연구실 앞 소파에서 퍼질러 누워 대기하고 있었다. 드디어 교수님 연구실 문이 열리길래,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연구실 앞을 무덤덤한 표정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교수님이 어제 약속한 멘트를 날려 주셨다...
그다음부터는, 세상에 없는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하지메 마시테 (처음 뵙겠습니다)"로 시작해, 명함을 내밀고, 왜 LG를 다니다가 관두고 여기 대학원에서 공부하는지, 왜 종합상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등등, 선채로 면접할 때 질문 들어오면 대답하는 스토리들을 스스로 슬그머니 건넸다. 아주 자연스럽게...
지금 생각해 보면, 영화 "기생충"의 기우, 기정 남매의 뻔뻔한 연기보다 더 뻔뻔한 연기였던 것 같다.
며칠 후, 그런 나를 재미있게 봐주셨는지, 아니면 교수님 채면을 세워드리고 싶었는지, 그 임원분 부하 직원으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진짜 우연(담배방에서의 교수님과의 대화)"과 "계획된 우연(타이밍 맞춰서 교수님 연구실 앞을 스쳐지나가기)"의 조합으로 시작된 스미토모 상사와의 입사 면접은, 2010년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5차 면접까지 진행됐다.
미쯔이 물산과 스미토모 상사의 면접을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면접 일정이 겹치는 날도 있었다. 면접 때, 회사 이름 서로 혼돈해서 미쯔이 물산 가서 스미토모 상사라고 하고, 스미토모 상사 가서 미쯔이 물산이라고 할까 봐 정신 바짝 차렸다. 여자친구를 다른 여자 이름으로 잘 못 부르면 그날로 "빠이~빠이~"인 건 상식이니까...
7월에 나의 보물 1호, 우리 딸내미가 태어났는데, 면접일정이랑 출산일이 겹쳐서, 우리 딸내미 태어나는 순간에 와이프 옆에서 지켜봐 주지도 못했다.
이 지점에서, 미쯔이 물산의 마사토가 흥분했다.
같은 대학원을 나온 미쯔이 물산 선배들까지 불러, 술집에서 축하파티를 했다.
나는 마사토에게 5차 임원면접, 즉 표경방문에서도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몸소 증명한 사람이다...
1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미쯔이 물산 5차 면접에서 왜 내가 떨어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만, 그게 미쯔이 물산과의 마지막 인연인가 보다.
9월에 마지막으로 남은 스미토모 5차 면접...
일본의 전설적인 게임 중에 "Final Fantasy"라는 게임이 있다. 수도 없는 게임을 개발해도 다 실패로 돌아가, "이번 게임만 다시 해 보고, 안되면 해산하자"라고 만든 게임이라, 제목이 "Final Fantasy"란다.
3달간 두 회사에서 10번의 면접을 보고 나니, 내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Final Fantasy"라는 단어가 스며들었다.
8월에는 이미 졸업식을 한 상태... 스미토모에 입사하지 못하면,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한국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긴, 원래 계획이 그랬으니, 그렇게 절박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LG에 재입사가 가능할지는 두려움이 앞섰다.
2010년 9월, 3개월간 이어진 "Final Fantasy"인 5번째 면접을 보러, 스미토모 상사의 본사로 향했다.
마지막 5차 면접은 부사장과의 면접... 영화배우처럼 겁나게 잘 생기신 부사장님이 하신 말씀...
단 한순간의 짧은 말씀이셨지만,
~라고 3.65 초만에 생각을 정리하고...
~라고 진심으로 공감하고, 기쁘게 대답했다.
그렇게 Final Fantasy 마지막 보스판을 마치고 나니,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
아직 떨어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미쯔이 물산 5차에서 멋지게(?) 떨어지고 나니 자신감도 같이 떨어져 있었고, 우리 딸내미 기저귀 값은 어떻게 벌어야 할지도 걱정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LG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고... 오만가지... 아니 육만 가지 잡념으로 참 심란한 2010년 9월이었다...
그러던 9월의 어느 날... 스미토모 상사 인사부에서 이메일 하나가 날아왔다.
이게 제목이었다...
이메일 내용을 읽기도 전에 순간적으로 직감했다...
'아~ 스미토모도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구나...'
와이프랑 같이 서로 손을 맞잡고 덜덜 떨면서, 메일을 열었다.
인사부 여러분, 메일 제목 좀 신경 써 주세요~... 깐딱이야~...
그렇게, 2010년 10월 1일, 나의 신입 종합상사맨으로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동료들에게도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어, 그들도 궁금했나 보다...
나는 당당하게 그리고 진실된 마음으로 이야기한다...
연인, 배우자와의 인연은 소중하다.
하지만, 일본 최고의 프로야구팀인 토쿄 자이언츠에서 그렇게 행복한 선수생활을 보내지 못한 이승엽 선수처럼, "프로 샐러리맨"에 있어서도 자기에게 맞는 회사, 자기에게 맞지 않는 회사가 있고, 그것은 "운명" 혹은 "인연"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아침 7~8시에 집을 나서서 출근, 밤 8~9시에 퇴근하고, 동료들과 술 한잔 하면 밤 11~12시도 일상적인 우리네 샐러리맨에 있어서, 회사와 내가 상성(相性)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행복의 중요한 척도 중 하나이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는 나의 동료들... 그들을 신뢰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직장은 그야말로 지옥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가끔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미쯔이 물산에 입사하게 됐어도, 똑같은 이야기를 지금쯤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나는 아직도 LG 디스플레이 시절이 그립다. 그때의 동료들과도 SNS를 통해 아직 함께 즐거웠던 날들, 고생한 날들의 추억을 나눈다.
원효대사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던 도중, 잠결에 목이 말라 어둠속에서 주변에 있는 웬 물 바가지 물을 마시고는, 맛있다고 생각하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해골바가지에 담긴 썩은 물이었다는, 믿지 못할 일화가 전해진다.
어쩌면 "해골바가지" 물도 나는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체질인지도 모르고, 아니면 정말 LG에서도 스미토모에서도 최고로 맛있는 물이 가득한 오아시스에서 생활하는 복 받은 인간인지도 모르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스스로 행복한지 불행한지를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30년 10월 1일, 내 나이 만 56세... 정년퇴직을 4년 앞둔 시기이다.
그날도, 오늘처럼 추억을 안주삼아, "19 Crimes"를 마시며, 행복한 10년을 추억하고 있었으면 좋겠다...